한상우 /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함께 공부한다는 것

 

 학부 2학년 수업 시간에 난생처음 비평을 썼다. 강성은 시인의 시집을 대상 텍스트로 한 글이었는데,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하루 반나절 동안 줄곧 앉아서 초고를 완성했다. 비평 쓰기는 마치 미로 같은 정원을 걷다가 그곳에 거주하는 낯설고 매혹적인 시의 옆모습을 목격하는 일과 같았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황홀한 감정에 휩싸여 히죽히죽 웃으면서 목적지 없이 길을 걷기도 했다. 비록 완성도나 수준이 높은 글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나의 글을 꽤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 같다.

 이 당시 내가 나의 글을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생님과 학우들의 피드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게 ‘계속 써도 괜찮다’는 격려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특히 누구보다도 내 글을 정성스레 살펴주시던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선생님의 애정 어린 눈빛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생님은 나무의 눈동자를 그리던 화가이기도 했다.

 함께 글을 쓰고 공부하는 일의 소중함을 졸업하고서야 비로소 실감했던 것 같다.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활전선에 뛰어들기 바빴다.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꾸준히 쓰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그리 많지 않았다. 모처럼 무엇인가를 써도 보여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내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기 점차 어려워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위축됐다.


 학부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 일을 시작한 첫 달, 나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뗏목처럼 위태로웠다. 업무에 관해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나의 무지로 모든 것을 망칠까봐 무섭기도 했다. 나는 여기 있어도 괜찮은 사람일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었더라면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일을 관둬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다행히 바로 다음 달에 함께 근무할 직원 선생님이 오셨다.


 그분께 검토를 받으며 관련 자료를 공부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큰 도움이 됐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토록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위안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때때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지치기도 했지만 ‘수고했어요’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 말은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지표가 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됐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대학원 진학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할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커진 탓에 잔뜩 쪼그라들었고 결정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문학의 언어가 마냥 어렵고 낯설어지기도 했다. 똑똑하고 성실한 선배들의 말에 압도당해 쉽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기도 하는 요즘이지만, 그럴 때면 그 옛날 선생님의 눈빛을 애써 떠올려보곤 한다. 언젠가 나무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잎사귀들은 정말로 그런 눈빛 같아서, 내게 쏟아지는 괜찮다는 무수한 말들 같아서, 나는 내심 용기를 얻는다.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이곳에서 나는 지치지 않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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