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 나의 권리

 

   ‘낙태’라는 단어는 태아를 떼어낸다는 뜻으로, 단순히 없앤다는 의미를 넘어 ‘윤락’이나 ‘타락’과 같은 맥락의 ‘낙(落)’과 결을 같이 한다. 이 단어들은 윤리를 땅에 떨어뜨린다는 개념인데 행위를 저지른 개인을 비난하려는 의도를 담고 탄생해 지금껏 유지됐다. 어휘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일은 이 문제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고립시키고 사회·구조적인 배경을 지움으로써 문제가 위치한 맥락을 탈각한다. 그러므로 일부 단체에서는 ‘낙태’ 대신 인공임신중절이나 임신중단 등을 대체 단어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낙태가 가진 부정적 의미는 ‘죄’와 결합해 여성의 몸이 가진 권리를 지워버린다. 수술을 통해 태아 세포를 없앤 여성은 죄를 지었다는 인식이 ‘낙태죄’라는 단어에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여성혐오적 단어에 해당한다. 그래서 낙태죄에 문제를 제기하고 법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으며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1973년에 해당 조항을 법에서 삭제했다. 한국 역시 1953년부터 임신중절 합법화를 위한 정부안이 등장했으나 국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고 2012년 8월에는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같은 해 12월에 한 10대 여성이 불법으로 규정된 임신중절 수술을 시도하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배경엔 합헌 결정 이후 병원들이 수술을 거부해 환자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을 감수해야 했던 상황이 존재했다. 이후 2016년 10월부터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의제를 전면에 내건 운동이 등장했고, 2019년 4월에 이르러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는 10월 7일에 낙태죄를 전면폐지하지 않고 존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상황이다.

    이제는 낙태를 ‘죄’라고 인식하지 말자는 움직임을 넘어 어떻게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뛰는 중이다. 제자리에서 뛰는 사이에 여전히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부담과 불안을 감당해야 하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성들의 사적인 이야기 자리에서 사후피임약의 부작용을 걱정하거나 임신중절을 고민한 경험이 있던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음에도 우리 사회는 임신중절을 여전히 낙태‘죄’라고 칭한다. 여성들은 손쉽게 죄인이 되고 그 과정에서 정자의 주인인 남성이나, 비윤리적·비위생적 수술공간을 강제한 국가의 책임은 지워진다. 4월에 이뤄진 헌법불합치에서 더 이상 퇴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문화된 모자보건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허용한계를 논하는 것을 넘어 임신중절 수술에 안전한 의약품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나의 몸이 나의 권리가 될 수 있는 국가를 꿈꾸는 여성들에겐 ‘죄’가 없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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