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배 /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혁신기술과 경제]  ① 경제적 가치와 우려, 혁신기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생활의 많은 영역이 편리해진 만큼 이러한 혁신기술들이 가지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커지고 있지만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혁명과 성장인지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져봐야 한다. 혁신 기술들이 국가와 개개인의 경제 상황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함께 살펴보며,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혁신기술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경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경제적 가치와 우려, 혁신기술 ② ‘사물인터넷’의 경제적 파급효과 ③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 ④ 혁신기술과 시장점유율, 그리고 기업가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빛과 그림자

 

염명배 /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매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y Forum)의 클라우스 슈밥(K.Schwab) 의장이 혁명의 시작을 공식 선언한 이후, 이는 학계뿐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계, 기업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추세에 부응해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창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국회에서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어서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이와 관련된 4차 산업혁명 관련 추진위원회 및 특별보좌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어디서나 쓰이는 하나의 유행어와도 같이 자리를 잡은 셈이다. 따라서 본 글에선 실제로 새로운 혁명이 진행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이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속도(Velocity), 범위와 깊이(Breadth and Depth), 시스템 충격(System Impact) 세 측면에서 이전의 1·2·3차 산업혁명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부를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 초지능(Superintelligence), 초융합(Superfusion) 세 가지의 결합체로 표현된다. 인공지능과 200억 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클라우드,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드론, 가상화폐, 블록체인 등이 새로운 기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G 통신기술이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또한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이 진화를 거듭함으로써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 정보혁명과는 전혀 다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을 통한 초융합·초연결 ‘지능 정보화’가 인간의 삶을 한층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듦과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활반경을 무한히 넓히는 신세계로 인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우린 직접 밖에 돌아다니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고 공연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골라 볼 수 있으며, 운전을 할 줄 모르고 가는 길을 몰라도 자율주행차가 알아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또한 재해로 교통수단이 완전히 끊겨버린 상황에서도 드론을 통해 필요 물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상상 속의 세상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경제·사회에 예상치 못한 불안 요인을 제공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던지는, ‘야누스의 두 얼굴’과도 같은 복합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욱더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경제활동 패턴이 인력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등장이 고용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직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기술을 활용한 생산방식의 변화와 온라인 거래 등을 활용한 비대면 소비패턴의 변화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급속하게 빼앗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무인(無人)·자동화 생산 시스템과 점포가 필요 없는 온라인 직거래, 점원이 필요 없는 무인매장,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생산과 거래·소비패턴이 무인환경으로 급변함에 따라 고용이 급감하고 대량실업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게 대표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로봇과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인간노동을 대체해 필연적으로 ‘노동의 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로 인해 ‘대량실업’과 ‘고용붕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처음에는 단순·반복직 비숙련 육체노동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하다가 점차 고도의 숙련된 전문 지식노동자들까지 몰아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발전과 일자리에 대해 칼 베네딕트 프레이(C.B.Frey)와 마이클 오스본(M.Osborne)은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또한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Stiegler)와 아리엘 키루(A.Kyrou)는 “자동화 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향후 20년 안에 임금제 고용에 기초한 사회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관련성에 대해선 대니얼 서스킨드(D.Susskind)가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잠식함으로써 사람이 일할 기회가 크게 줄어드는 시대가 분명히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 CEO 엘런 머스크(E.R.Musk)는 “미래는 인공지능의 상용화로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되고 80%의 근로자가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20:80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미래상까지 제시했다.
   대량실업 관련 또 하나의 경제·사회적 문제는 소득 양극화의 확대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등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에 따라 소득과 부가 첨단 생산장비를 소유한 자본가 집단이나 첨단장비와 프로그램을 운영할 줄 아는 소수의 첨단 기술자 및 경영자 집단으로 집중되는 반면, 대부분의 나머지 노동자는 일자리를 빼앗겨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이들 집단 간의 소득 격차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정부 대응책


   그렇다면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경제패러다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들은 ‘일자리 창출’에 최대 역점을 둬 왔다. 당분간은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정책목표가 될 수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는 시점에서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정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실로 ‘혁명’적인 시스템 충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소멸을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고 대비 가능한 방안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는 다음 두 가지 정책을 동시에 구사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 및 과학기술지식의 확산을 촉진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진흥정책’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 변화에 부합하기 위한 ‘보완정책’이다. 진흥정책은 효율성(Efficiency) 제고 정책인 반면 보완정책은 형평성(Equity) 제고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진흥정책의 경우 과학기술 발전 및 과학기술지식 확산을 통한 혁신성장을 돕기 위해서 각종 산업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하고 자유로운 혁신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슘페터(J.A.Schumpeter)식 생산혁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방형 혁신창업과 창조적 기업을 적극 지원함과 동시에 과학기술 개발과 전파·확산·유통에 장애가 되는 법·제도적 요인들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사업화를 장려하며 기술확산과 신산업발전을 위한 산업경제정책을 적극 수행할 필요가 있다.
   한편, 보완정책으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소멸’ 또는 ‘고용붕괴’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혁명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첨단직종을 적극 발굴하고 미래지향적 직무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 동시에 대량실업으로 인해 생기는 여유시간을 보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선용(善用)할 수 있도록 각종 인간중심의 여가활용 프로그램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근로소득 감소로 부족해진 개인소득을 적절하게 보전할 수 있는 정책방안, 예를 들면 기본소득제와 같은 제도를 신중하게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소득 양극화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실시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노동의 소멸을 막고 일자리를 확보하겠다는 방어적 정책을 고수하기보다 이를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접근법의 전향적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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