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6.11 목 16:51
기획예술
[예술] 몸에 그리는 자아부경환 /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아시아의 타투》 편저자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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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승인 2020.06.09  12: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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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아름다움’ ④ 일탈과 자유의 경계에 선 타투
 
우리는 보통 예술에 대해 논할 때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함께 쓰곤 한다. 그만큼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업이자 대상 그 자체로 인식되며 이때 아름다움이란 외적인 균형과 조화를 충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오늘날은 전통적 미의 해체와 전복이 이뤄지면서 미적 개념 적용의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아름다움’이 가지는 유동적 정체성에 대해 조명하고 사회구조 및 문화와 결탁해 생성된 미학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시대를 횡단한 ‘아름다움’  ② 그로테스크의 미학 ③ 지워진 여성의 ‘흔적’ ④ 일탈과 자유의 경계에 선 타투
 

몸에 그리는 자아
 

부경환 /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아시아의 타투》 편저자
 
  얼마 전 미용실에서 인턴 팔뚝 안쪽에 있는 타투가 눈에 띄었다. 사실 그다지 멋있지 않고 뭔가 부족해 보여서 더 눈길이 갔는데, 잠깐 이것저것 물어보니 어릴 때 충동적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지우기도 어렵거니와 커버업(Cover-Up)을 하자니 지금보다 크기도 커지고 어두운색으로 덮일 모양새라 서비스업 특성상 싫어하는 손님도 있을 것 같아 선뜻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민하는 그에게 무얼 선택하든 천천히 잘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영양가 없는 조언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대화는 짧게 끝났지만, 여기에 내포된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다. 타투가 그저 최근 몇 년 사이에 불어온 유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문화적 행위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훨씬 길다.
 
   

마오리족 추장. 사진 Arthur James Iles.
출처 Customs of the World (1912)

인류의 오래된 사회적 기호


  학자들은 인류 문신 문화의 기원이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직접적이고 명징한 증거물인 미라 중에서 문신의 흔적이 확인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제4천년기에 생성된 것들이다. 알프스산맥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미라, 일명 외치(Otzi)의 경우 허리와 관절 부위를 위주로 단선 형태의 문신 61개가 발견됐다. 학자들은 외치의 건강 상태를 토대로 해당 문신이 당시 의술의 일종으로서 사용됐다고 추정한다. 몇 년 전 대영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던 이집트 미라를 재조사하는 과정 중 남녀 미라 두 구에서 문신의 흔적을 새로 발견했다. 이들의 문신은 단순한 외치의 문신과 달리 야생 황소, 양과 같은 동물 문양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선왕조 시대 예술에서 흔히 사용하던 상징 요소였다. 의료적·기능적 행위뿐만 아니라 사회적·예술적 행위로서의 문신이 지금으로부터 최소 5천 년 전에도 행해졌던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몸에 글씨와 그림을 새겼다. 예로부터 문신은 정치적·종교적 권력을 체현하거나 계급과 지위, 가문과 소속을 나타내는 사회적 표지로서 기능했다. 알타이 지역 파지리크 고분, 페루 엘브루호 유적 등 세계 여러 곳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화려하게 수 놓인 미라들이 출토된 바 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통치 계급이 여러 형태의 도구나 상징물뿐만 아니라 신체 그 자체를 통해서도 자신의 권능을 드러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화려한 외양으로 널리 알려진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문신 ‘타모코(Ta moko)’는 본디 가문과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를 담은 것이다. 특히 마오리 남성은 얼굴을 8개 구역으로 나눠 사회 내에서 지니는 다양한 속성과 영예를 세세하고 정교하게 ‘기록’했다. 어떤 사회에서는 문신이 권력층만의 전유물이었다면, 또 다른 사회에서는 노예나 죄수를 특정하는 낙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문신이 지니는 고유의 특성은 인간 집단 내에서 필요한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문신을 새기는 일은 필연적으로 피부에 상처를 내고 이것이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시술 도구와 방법, 신체 부위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문신을 받는 이는 문신 작업이 끝날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한다. 즉, 문신을 완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강인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는 곧 성인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하거나 결혼할 준비가 됐다고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따라서 많은 문화권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거나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로서 문신을 활용했다.
  문신은 한번 새기면 죽을 때까지 평생 지속된다. 아니, 숨을 거두고 난 이후에도 육신에는 문신이 남아있다. 이러한 불가역성과 불멸성으로 인해 많은 토착 신앙 체계는 문신이 사후 세계에서 망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거나, 또는 조상들이 문신을 통해 후손을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대다수 전통 사회의 문신은 종교적·주술적 의례나 기복(祈福) 행위 그 자체로서 행해지기도 한다. 잃어버릴 리 없는 부적을 몸에 항상 지니는 셈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동기와 목적이 존재하지만 결국 문신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몸에 시각적 흔적을 드러내 사회적으로 공유된 기호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행위이자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문신이 곧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는 것이다.

 

   
 

‘문신’에서 ‘타투’로


  과거 우리나라에도 문신 전통이 있었다. 한반도 지역 문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에 등장한다. 이후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문신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가 돼서야 다시 등장한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고려사》 등의 문헌을 종합해 보면, 당시 고려인들은 문신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오랑캐의 습속으로 간주하고 멸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죄를 저지른 자는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을 내렸는데, 이러한 인식과 제도는 조선 시대까지 유지된다. 물론 이는 유교를 기반으로 한 중국 한족의 사상과 통치이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다. 다만 실록을 비롯한 여러 기록을 통해 연정이나 우정을 표시하는 용도로서 민중들 사이 암암리에 문신이 행해졌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제도적으로 공식화된 형벌 문신과 다른 층위에서 하위문화의 일종으로 문신이 유통되고 소비됐던 것이다.
  한국 사회는 최근까지도 문신에 대한 부정적 담론에 강하게 억눌려왔다. 이 같은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데에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돼온 형벌 문신의 관습이 크게 작용했다. 이와 더불어 TV 보급이 확산되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문신은 조폭, 깡패, 양아치 등 공동체의 평안을 해치는 불온하고 위협적인 존재의 상징이자 하나의 클리셰로 끊임없이 재현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랑머리, 피어싱, 배꼽티 등은 저항의 상징이자 젊음의 특권으로 인식되고 주류 대중문화에서 소비됐지만, 유독 문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문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점차 변화한다. 월드컵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유럽축구를 비롯한 해외 스포츠 중계 및 소비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스포츠 스타들의 문신이 안방으로 전달됐다. 또한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하고 해외여행이 빈번해지면서 전 세계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따라 한국의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 역시 하나둘씩 문신을 새겼고 이는 미디어와 대중에게 우연히, 때론 의도적으로 노출됐다. 특히 이들의 문신은 아내나 가족에 대한 사랑, 혹은 종교적 신앙심을 표현한 작은 이미지와 레터링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특별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워너비의 대상이 됐다.
  이로써 한국 사회에서 문신은 과거 음습했던 외피를 벗어던지고 트렌디한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문신’이 아닌 ‘타투’라는 용어가 더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문신이라는 표현엔 근과거의 기억과 경험으로 인해 범죄와 결부된 부정적 선입견이 먼저 자리하기 때문에 두 단어의 사전적 뜻은 동일하지만 실제 화자들의 의미 영역과 사회적 쓰임새에는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를 표현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 본래 유일성과 비가역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타투가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자 자기 표출에 무엇보다 적합한 도구가 됐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은 인체라는 캔버스 위에 보다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가능하게 해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타투 인구와 시장은 매해 커졌고, 외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타투 컨벤션도 간간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SNS의 등장은 각종 타투 도안과 정보, 문화가 손쉽게 공유되고 소비되는 데 일조했다.
  타투가 대중화됐다고 해서 음지의 문화가 온전히 양지로 올라온 것은 아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기성적 사회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타투는 선망과 혐오, 옳은 것과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등 긍정적 인식과 부정적 인식이 끊임없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장이다. 그야말로 다중적·다층적 인식의 대상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여전히 확실하고 유효한 것은 타투가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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