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전시’의 대상에서 ‘전복’의 주체로 ② ‘386세대’와 ‘2030세대’의 현주소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걸고 ‘청년 중심 정치’라는 이미지만을 취할 뿐, 정작 청년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청년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담론 및 언어의 부재, 타자화된 청년의 위치, 몰이해가 빚어낸 부정적 낙인 등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기에 청년 정치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실질적 변화를 향한 노력까지,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해당 이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 정치, 그 의미에 대하여  ② ‘386세대’와 ‘2030세대’의 현주소 ③ 청년 정치의 첫 걸음, 18세 선거권 ④ 청년의 일상 속 ‘정치학교’


분권의 역설

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2030세대 청년들은 진보적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전에는 대체로 그랬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사실상 1대1로 맞붙었던 제18대 대선의 경우,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 기준으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투표한 20대와 30대는 각각 33.7%, 33.1%였다. 반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그 두 배에 달하는 65.8%, 66.5%를 득표했다. 40대에서 좁혀진 격차는 5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뒤집혔다. 2012년 대선에서 청년층은 문재인 후보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던데 반해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강한 반대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세대갈등이 주된 화두였던 때도 이 시기였다.
  제19대 대선도 방향은 비슷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보수 세력이 크게 위축된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문재인과 심상정 두 후보의 득표율 합은 20대와 30대 모두에서 60%를 넘겼다. 반면 60대와 70대 이상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각각 45.8%와 50.9%를 득표하며 다른 주요 후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가져갔다. 문재인 정부에게 청년층이 처음부터 골칫거리는 아니었다.
 
동계올림픽과 조국 사태가 드러낸 의제의 충돌

  현 집권 세력과 청년세대 간 갈등이 가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초에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부터다.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을 꾸리는 문제를 두고 청년층은 크게 반발했다. 감독∙선수들과 상의 없이 올림픽을 앞두고 부랴부랴 단일팀을 추진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태는 감독이 단일팀 구성에 적당히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그에 대한 앙금은 남았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의 반공교육 때문에 청년층이 여권의 대북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남북단일팀 논란은 단순히 선수단 구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곧 남북평화와 공정이라는, 현 집권여당의 주축인 386세대와 2030세대 각자가 중시하는 가치 간의 충돌이기도 했다.
  한편 공정이라는 가치는 지난해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각종 의혹으로 말미암은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다시 한번 화두에 올랐다. 특히 자녀의 대학 및 의전원 부정입학 의혹에 청년층은 거세게 비판했다. 사건이 전개되며 프레임은 검찰개혁으로 옮겨갔지만, 기성세대가 외쳤던 ‘조국만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메시지는 청년세대에게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2030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 이어진 검찰과의 악연이 아니라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기준들이 공명정대하게 적용되고 있는가였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작지 않았다. 때마침 ‘386세대론’을 다루거나 공정을 소재로 하는 책들이 쏟아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포스트 386은 누구냐’는 데로 뻗어갔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청년정치와 제21대 총선에 도전할 청년 후보들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공천 경쟁에서 결국 살아남은 청년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가 구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청년들이 스스로 자생할 수 없는 정치 환경에 기인한다.
 
 
 
386세대의 정치적 자원 독점

  근래에 이른바 386세대로 일컬어지는 그룹만큼 정치적 자원을 장기간에 걸쳐 독과점한 집단은 없었다. 386세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부터였다. 이 선거에서 여야의 ‘새 피 수혈’ 바람 아래 14명의 386세대가 국회에 진입했다. 4년 뒤 총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불면서 무려 68명에 이르는 386 정치인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국회에 가지 못한 이들 역시 청와대나 지방의회, 정부 기관에 포진하며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리고 이는 2016년 총선에서 무려 132명이 국회로 진출하며 어마어마한 위력을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치권 내 386세대의 규모와 다양성은 반비례했다. 특정 세대가, 그것도 학생운동을 함께한 특정 그룹이 정치적으로 과대 대표되면서 선뜻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당내 30대, 40대들은 386그룹에 붙는 전략을 취하면서 386세대가 중요시하는 정치적 의제들인 남북화해나 검찰개혁과 같은 것들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됐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는 실종됐고 청년이 당의 입장을 전달하는 식의 정치만 남은 것이다.
 
결국 공천이 문제다

  386세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등의 시혜에 힘입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때는 당 총재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시절이었기에 대대적인 인재 영입과 더불어 이른바 물갈이가 가능했다.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30대 신진세력을 지역구에 대거 공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정당 내에서도 큰 폭의 분권이 이뤄지면서 환경이 바뀌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 아래 중앙당의 권력을 지역으로 나눴다. 바로 경선이다. 커다란 권력을 해체하자 작은 단위의 권력 집중이 이뤄졌다. 해체된 중앙권력은 대체로 현역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시민단체 등 조직을 확보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언뜻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조직이 없고서는 덤빌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386세대가 장기간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고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 양당은 서로 얼마나 더 민주적인지를 대결이라도 하듯 지방의원 선거까지도 당원 경선을 도입했는데, 일반인들 대부분은 우리 동네 구의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런 선거를 경선에 붙이면 권리당원의 표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면 현역 정치인들에게 잘 보여 조직을 물려받지 않고는 당 공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국회의원은 공천을 주고 지방의원은 당원을 관리하며 탄탄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카르텔은 2004년 탄핵 소추와 같은 외부충격이 있더라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며 386세대가 선거를 몇 번은 더 치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386그룹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비단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정체성을 함께하는 특정세대 내 특정그룹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파생되는 의제의 획일화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386세대를 지탄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공천권이다. 중앙당이 책임지고 투명한 절차와 합리적인 기준을 고안해 사람을 뽑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국민의 다양한,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청년정치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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