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석 / 사회학과 교수

[교수칼럼]

닫힌 연대에서 열린 연대로

서찬석 / 사회학과 교수


   “Chinese, Japanese, Dirty Knees, look at these!” 어린 시절 몇몇 백인친구들이 눈을 손으로 찢으면서 종종 해주던 노래였다. 그들의 눈에 나는 노동을 통해 무릎이 지저분해진 동양인 집단(Dirty Knees)이었다. 동양인으로서 받은 백인사회에서의 가시적, 비가시적 차별은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새겨져있다. 그리고는 초등학교 때 건너온 한국에서 나는 색다른 차별에 직면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들어맞지 않을 때마다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내 정체성을 향해 다각도의 공격을 해왔다. ‘정상성(Normality)’에 기반을 둔 다수자들의 억압이 계속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대해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며 연대했고 구조적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맞서왔다. 노동자는 노동운동으로부터, 흑인은 민권운동으로부터, 여성은 여성운동으로부터, 성소수자는 LGBT운동으로부터 그들의 차별이 개인적 경험이 아닌 집단적 경험이었음을 깨달았고 이는 함께 바꿔 나가려는 집합행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같은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는 특정 정체성이라는 이유로 오랜 기간 차별받았던 이들을 한데 모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결코 단층적이지 않은 차별과 혐오의 구조는 곧 개인이 지닌 정체성 역시 다차원적임을 시사한다. 너무나도 쉽게 우리는 혐오의 대상이 혐오의 주체가 되는 역설(Paradox), 즉 여성이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흑인이 동양인을 차별하고 노동자가 노동하지 않는 실업자를 혐오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나아가, 차별과 혐오는 ‘성별’과 ‘인종’과 ‘계급’의 경계를 중심으로만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식성, 외모, 출신지역, 심지어 주거지의 전염병 확산 여부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정상성’의 범주를 벗어난 모든 정체성들이 차별의 대상이 된다.
   나와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과의 ‘닫힌 연대’는 중요하다. 하지만 소수자들이 또 다른 혐오로 맞설 때, 그렇게 흘러넘치는 혐오는 너무도 쉽게 새로운 피해자들을 낳는다. 이럴수록 더욱 ‘열린 연대’의 가치에, 또 그 출발점으로서 서로의 아픈 경험에 대한 ‘동감(Sympathy)’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다. 사회운동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성소수자들에 동감하고 연대하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 또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의 차별의 경험이라고 한다. 중층적인 구조의 현대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됐던 다양한 이들 사이의 ‘열린 연대’, 그로부터 평등하고 자유로운 질서가 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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