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도시·사람·건축 ③ 도심 속 녹색공간, 마곡 서울식물원

도시·사람·건축. 다시 말해 도시에서 사람과 삶이 바라는 건축의 양태는 어떤 것일까. 기술적으로 높아지는 도시의 빌딩 숲 사이에서도 사람들과 삶의 필요로 인해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를 지니고 새로이, 혹은 다시 태어나는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구산동 도서관마을, 마곡 서울식물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주제로, 각 건축공간이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가치와 의미들을 연재를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민주주의의 상흔과 성취,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② 도서관이 된 마을, 구산동 도서관마을 ③ 도심 속 녹색공간, 마곡 서울식물원 ④ 문화와 예술의 광장,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식물, 도시의 문화가 되다

조경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19년 5월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식물원’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작년 10월에 임시 개장한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400만 명이 방문했을 만큼 식물원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서울식물원의 영문 명칭은 ‘Seoul Botanic Park’다. 일반적으로 식물원을 의미하는 Botanic Garden이 아닌 Botanic Park로 명명한 데에는 서울식물원의 탄생과 관련된 배경이 있다. 서울의 마지막 미개발지인 마곡 산업단지는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7년, 서울시는 서울식물원의 구(舊) 명칭인 ‘마곡중앙공원’을 한강과 연결된 워터프론트(Waterfront)로 개발하고자 국제공모를 거쳐 당선작을 선정했다. 그러나 해당 구상은 경제적 타당성과 재해 위험성이 문제시되면서 초기 개발 콘셉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후 여러 논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마곡지역의 공원으로서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식물원이 결합된 새로운 성격의 공간으로 서울식물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울식물원에 가보면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주제원과 온실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지만, 나머지 공간은 24시간 개방된 공원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특수 조건이 오히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공공 공간을 만들어냈다. 활짝 핀 꽃 모양을 형상화한 온실은 단연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고, 오래된 배수 펌프장을 리모델링한 마곡문화관도 이 지역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 공사 중인 LG아트센터가 완성되면 온실과 함께 식물원의 랜드마크 공간이 될 것이다. 넓은 잔디밭의 열린 숲,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호수, 한강으로 이어지는 습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12개 도시의 식물 문화를 전시한 온실과 한국의 자연을 재현한 야외 주제원이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에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필자는 2013년 4월부터 MP(Master Planner)로서 이 프로젝트의 계획·설계를 총괄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본격적인 식물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새삼 놀랐다. 해외의 경우 중소 규모의 도시라 하더라도 식물원이 하나씩은 있고, 대도시에는 2~3개 정도 있는 곳도 많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1909년에 창경궁을 개조해 창경원을 만들면서 온실을 세우고, 여기에 식물원을 만들었던 바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창경궁을 원(原)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식물원 기능은 사실상 소멸됐다. 서울시는 1968년 남산에 온실을 만들어 시립식물원으로 운영했지만, 2006년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된 역사가 있다.
  구한말 시대의 개화사상가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에서 근대 도시에 대해 말하며, 시민교화와 복리증진을 위한 박물관·식물원·동물원·공원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이 가운데 식물원의 경우, 100년도 지나 가장 늦게서야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야말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왜 다른 문화공간보다 식물원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을까. 그 이유에는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된다. 개인적 견해로는 조선시대가 유교적 도덕 가치에 의존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우세했다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조선 후기 실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관념과 명분을 중시하는 풍토는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해왔다. 이러한 연장선으로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심과 지식, 즉 에코 리터러시(Eco-Literacy)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미진하다.
  에코 리터러시는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노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2019년 9월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조경가협회(IFLA) 회의에서 77개 회원국들이 ‘기후변화 비상대응 행동(Emergency Action)’이 필요하다는데 서명했다. 세계 많은 도시들이 2050년 탄소중립, 즉 ‘네트제로(Net Zero)’를 약속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실상 기후위기는 내일이 아닌 지금, 당장의 행동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나는 오슬로에 한 주 정도 머물며 환경에 대한 인식에 있어 한국과 오슬로의 많은 차이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오슬로는 2019년 유럽녹색수도로 선정됐는데,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걷고, 자전거를 이용하며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생활화돼 있었다. 이러한 녹색 교통 수단의 분담률이 70%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우연히 오페라 공연을 보게 됐을 때도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파를 보고 놀랐다. 관람객 대부분이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자가용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모든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는 시민 각자가 기후변화를 얼마나 민감하게 느끼는지와 관련돼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환경 감수성이 둔감한 데에는, 식물원 문화의 부재에서 일정 부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식물원의 계획을 진행하면서 여러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식물원을 들렀다. 모든 도시의 식물원은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소박하더라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브루클린식물원의 어린이정원 프로그램은 1914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살 영유아부터 17세 청소년에게까지 흙을 직접 만지며 식물을 키우는 교육을 진행한다. 당시의 식물교육 큐레이터인 엘렌 에디 쇼우(E.Shaw)는 “내가 브루클린에 왔을 때, 이곳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 정원을 가꾸기를 원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이정원 프로그램은 독립된 동창회모임이 활성화돼 있어 사회교육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뉴욕식물원이 있다. 온실의 긴 복도에는 식물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연구 관련 내용이 전시돼 있다. 아마존 밀림의 생태를 연구하는 생태학자와 열대우림의 야자수를 연구하는 식물학자 등 그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식물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키울까. 어린이정원을 거닐며 식물원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몇몇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데 크게 영향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서울식물원_사진제공 조경진

우리의 삶에 식물원이 있다면

  도시에 식물원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술가인 페이톤 스킵위스(P.Skipwith)는 대영박물관과 큐가든이야말로 런던 최고의 장소이고, 값싸게 휴일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말한다. 큐가든은 1759년 오거스타 공주가 설립한 이후, 1770년대 조셉 뱅크스(J.Banks) 원장이 전 세계의 식물을 모아서 식물원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후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큐가든은 오늘날까지 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스킵위스는 큐가든에 대해 잠시 들렀을 때 영혼이 정화되는 장소로서, 육체는 노곤해지더라도 정신은 채워지는 곳이라 강조한다. 큐가든과 같은 식물원은 시민들 생활 속의 여가의 일부이자, 교육의 장이면서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런던 풍경을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린 에드워드 보든(E.Bawden)은 청년시절에 《A General Guide to the Royal Botanic Gardens Kew》(1923)과 《Adam and Evelyn at Kew》(1930)를 출간했다. 전자는 큐가든의 역사과 공간을 설명하는 책이고, 후자는 큐가든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든의 삽화는 작품성에 있어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편 1921년 출간된 버니지아 울프(V.Woolf)의 〈Kew Gardens〉라는 단편이 있다. 이 소설은 큐가든에서 일상 순간을 보내는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는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두 남녀 ‘사이먼’과 ‘엘레노어’가 지난 날 큐가든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사이먼은 사랑했던 ‘릴리’를, 엘러노어는 젊은 날의 첫 키스를 회상한다. 소환된 기억들은 모두 식물원에서 한 때를 보내던 순간이다. 이처럼 식물원의 존재는 한 도시의 문화적 저력이 된다.
  오랜 세월과 함께 큐가든이 런던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함께해 왔듯이 우리의 식물원, 서울식물원도 시간이 지나서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예술가들의 작업에도 영감을 주어, 우리에게도 식물원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이 탄생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생활 속 식물원이 가지는 중요성은 사람들이 식물을 직접 만져보면서 자연의 의존성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식물원은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우리의 일상을 잠시 떠나서 몸의 감각을 되찾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서울식물원이 우리의 삶을 ‘녹색 라이프 스타일’로 변화시키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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