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보라 외 5명. arte. 2019

 [책잡기]

 
 

남들이 조금은 이상하다고 여기는 당신에게

《벌새》. 김보라 외 5명. arte. 2019

  우리 모두에게는 때때로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섣부르게 드러내던 시기가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한낮의 시간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짓인지 춤인지 모르게 발을 구르는 열네 살 은희처럼, “나 성격 안 나빠. 나한테 이상하다고 제발 그러지 좀 마”라는 서투른 말로밖에 자신을 변호할 방법을 모르는 은희처럼.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가 일어난 1994년, 중학생 은희의 일상과 상실의 경험을 통해 시대적 재난이 개인에게 미친 균열을 드러낸다. 연이은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영화에 이목이 집중된 시점, 잔잔한 흥행에 힘입어 시나리오 집 《벌새》가 발간됐다. 대본이 영화가 되는 과정을 역순으로 되돌려 다시 영화를 ‘읽는’ 경험은 새롭다. 글자로 새겨진 대사와 섬세하게 묘사된 지문이 기억 속 장면을 다시금 해석하게 한다. 책에는 소설가 최은영, 여성학자 정희진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과 분석을 담은 글과 엘리슨 벡델(A.Bechdel)·김보라 감독의 대담이 함께 수록돼 〈벌새〉의 다각적 해석을 가늠케 한다.

  감독은 한 20대 여성관객으로부터 “내 상처에 언어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때 ‘은희’였던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그때의 상처에 붙일 이름을 찾지 못했다. 책을 덮고 나면,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했던 당시의 나에게 ‘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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