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식 / 유럽문화학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

[교수칼럼]

진리를 향한 배움의 에움길

김한식 / 유럽문화학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

 

  이번 학기 처음으로 문화연구학과 강의를 맡아 ‘문학비평과 이론’을 진행하고 있다. 수강생이 많지 않지만 요즘은 시들해진 문학이론에 아직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들의 눈빛에서 길을 찾아 헤매던 나의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학원에서 처음 문학연구 방법론을 배우면서 바르트(R.Barthes)와 주네트(G.Genette)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구조주의를 접하게 됐다. ‘문학의 문학성’을 찾아내기 위한 정교한 구조 분석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러한 분석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해결되지 않은 물음들을 안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리쾨르(P.Ricoeur)의 해석학을 공부하며 ‘문학의 쓸모 있음’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60년대의 이론전쟁은 전통적인 거대 담론에 반기를 들며 시작했지만, 90년대 후반 냉전이 종식되고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자 강단에서 급격히 쇠락했다. 이후 현실과 유리된 이론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론 이후’의 삶으로 복귀하는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리쾨르에 따르면 문학 텍스트는 언어의 창조성, 즉 다양한 의미 생성을 보여주는 ‘의미론적 혁신’을 통해 현실을 다시 기술함으로써 우리가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요컨대 문학텍스트의 허구적 경험이라는 에움길을 통해 진리와 주체 물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처럼 보편철학으로서의 리쾨르의 해석학은 선험적 주체에 토대를 둔 칸트(I.Kant)의 인식론이나 하이데거(M.Heidegger)의 직접 이해의 존재론을 넘어, 기호의 체득이라는 에움길을 거친 자기 이해와 이를 통한 실천적 전환을 추구한다. 자기 이해의 목적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 즉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리쾨르가 즐겨 인용하는 프루스트(M.Proust)의 말대로 “콩브레의 안경사가 손님에게 내미는 것과 같은 일종의 돋보기 안경알”인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읽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삶을 더 잘 버티고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해석학은 ‘앎’과 ‘의미 이해’에 관한 학문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대상과 조건은 어떤 것인지, 올바른 이해는 어떻게 이뤄지고 이는 실천적 영역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을 따져 묻는 것이다. 비단 해석학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길에서 어느 한 곳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떤 근본적인 것과 만나게 된다. 결국 진리는 넓은 곳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있으리라.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꽃이 봄비에 젖고 물고기가 헤엄치듯 자연스레 진리를 체득하는 길로 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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