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1.9 토 14:19
기획사회
[건축] 회고를 넘어 전망의 터로, 민주인권기념관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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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승인 2019.09.03  20: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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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람·건축 ① 민주주의의 상흔과 성취,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도시·사람·건축. 다시 말해 도시에서 사람과 삶이 바라는 건축의 양태는 어떤 것일까. 기술적으로 높아지는 도시의 빌딩 숲 사이에서도 사람들과 삶의 필요로 인해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를 지니고 새로이, 혹은 다시 태어나는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구산동 도서관마을, 마곡 서울식물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주제로, 각 건축공간이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가치와 의미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민주주의의 상흔과 성취,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② 도서관이 된 마을, 구산동 도서관마을 ③ 도심 속 녹색공간, 마곡 서울식물원 ④ 문화와 예술의 광장,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 민주인권기념관 본관 정면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_사진 서영걸

회고를 넘어 전망의 터로, 민주인권기념관

최호근 / 고려대 사학과 교수

  ‘좋은 건축물’이란 어떤 것일까. 일반적인 경우, 발주자의 뜻이 잘 반영되면 좋은 건축물로 간주한다. 훌륭한 건축가는 발주자의 다소 모호한 표현 속에서도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해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일 테다. 몇 년 전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위해 서울 남부구치소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갖고 있던 소지품을 모두 데스크에 맡기고 마주한 격벽과도 같은 거대한 문이 열리자,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에 발을 딛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좋은 감옥’이란 어떤 곳일까. 재소자들이 지내기에 안락한 곳이어야 할까. 아니면, 재소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한눈에 들어오는 파놉티콘(Panopticon) 같은 곳이어야 할까.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좋은 공공건물’은 어떤 것일까.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국가권력의 대리인을 흡족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면, 그 공공 건축물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시대에 따라 상이한 ‘좋은 건축물’의 정의

  이러한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건축물이 서울 남영역 가까운 곳에 있다. 영화 〈1987〉(2017)을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구(舊) 경찰청 대공분실, 바로 그곳이다. 아직도 철조망에 덥힌 높은 담장, 2톤이 넘는 육중한 철문, 검은 벽돌의 7층 건물, 다른 층과는 달리 세로 방향의 좁고 긴 5층의 유리창들, 5층 취조실까지 이어지는 후면부의 원형 계단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기이한 공간의 설계자가 바로 한국 건축사의 주요한 한 장을 차지하는 김수근이다. 한국 건축계를 대표했던 고(故) 김수근 선생은 이 건물 때문에 언제부턴가 치욕의 콘텍스트 속에서 호명되고 있다.
  과거 아주 탁월한 감옥으로 사용됐으며, 그 어떤 소리도 새 나가지 않던 취조의 공간이 이제는 국민이라는 본래의 주인을 찾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국가 권력에 대한 ‘좋은 감옥’에서 비로소 국민에 대한 ‘좋은 공공 건축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는 시대와 사람이 공간을 바꾼 결과다.

   
▲ 민주인권기념관(회전계단)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_사진 서영걸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1976년 본래 5층으로 완공된 이 건물은 독재와 국가폭력의 산증인이다. 완공 이후 1987년 민주항쟁이 발발하기까지 바로 이곳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 연행과 강제구금, 구타와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고문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본권 보장을 요구한 사람들, 온전한 민주주의를 염원한 사람들이 간첩이나 용공사범으로 ‘제조’됐다. 여기를 거쳐 간 피해자들 중 인적사항이 밝혀진 사람만 모두 393명이다. 대표적인 이가 김근태와 박종철이다. 이곳에서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시위 도중 사망한 이한열의 죽음과 더불어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대공분실은 민주의 물결을 가로막는 댐이었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개인들의 몸과 양심을 산산조각 내버린 거대한 파쇄기였다. 1987년 국민의 항쟁을 통해 폭압적 기능을 상실한 이 공간은 지난해 말이 돼서야 비로소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독재와 테러의 상징인 이곳을 국민적 기억의 터로 바꾸려는 시민사회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 공간은 여전히 경찰청 소유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청종한 현 정부의 전격적 결정을 시작으로 우리 국민에게는 이곳을 온전한 민주인권의 전당으로 개조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 엄중한 역사의 터를 어디까지 보존하고, 어떻게 탈바꿈시켜야 할까.
  기념관은 한 사회 구성원들이 소유한 역사의식의 결정체다. 역사의식은 회고와 전망 사이의 부단한 확장을 통해 형성돼 간다. 남영동 일대에 저장된 과거의 기억들 가운데 우리가 우선적으로 회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구조화되고 일상화된 ‘악(惡)’이다. 수도의 한복판 2천 평의 부지에 공안 기구의 한 축을 신설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인사들의 결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970년대 국가권력의 작동방식을 생각하면, 머릿돌에 새겨진 ‘내무부장관 김치열’은 대공분실 신설에 앞서 그보다 윗선의 이해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최중심(最中心)의 기획을 통해 구조화된 폭력은 수뇌부의 관심과 격려, 보상과 질책을 직접적으로 받는 기능적 관료들을 통해 일상화된다. 조사 대상자들의 확신이나 동조가 없다면, 그 어떤 폭압적 국가기구도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희생자들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조명이다. 연령과 직업, 성별과 학교 교육에서 각기 이질적이었던 사람들이 남영동에 끌려온 이유는 두 가지다. 생존권·노동권에 대한 열망과 민주화를 위한 염원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의심으로 가득한 공안 당국의 시선이었다. 그 일방적 시선이 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결정하고 변조했다. 외부와의 소통과 변호인의 조력이 차단된 상태에서 가해지는 물고문과 전기고문 앞에서 개인들은 무력화됐다. 끌려온 이들은 굴욕감과 자괴감으로 말할 수 없이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영동을 거쳐 간 사람들 대부분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이어갔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를 염원한 개인들과 구질서의 수호자들이 절대적 비대칭 관계 속에서 충돌한 현장이다. 그러므로 인권 유린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적 콘텍스트 속에서 이해되고 재현돼야 한다. 남영동을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로선 ‘국군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과 ‘남산 중앙정보부’와 같은 국가폭력의 거의 모든 현장이 유실되거나 원형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 민주인권기념관(5층 창문)_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_사진 서영걸

‘민주’와 ‘인권’을 향해

  이렇게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득 품은 기억의 터를 기념의 공간으로 개조하는 과정은 국민적 축제여야 한다. 남영동으로 대표되는 저항과 희생, 성취의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기본적 권리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새로 세워질 민주인권기념관이 과거에 대한 회고와 상찬에서 끝나면 안 된다.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회고적 기억과 전망적 기억이 균형을 이루는 역사적 공간의 가공이 가능할까.
  첫째, 복원 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7층 건물을 포함한 경관 전체를 ‘그때 그 시절’에 가깝게 복원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역사적 공간의 아우라(Aura)에 대한 맹신이다. ‘그때’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거기’도 그때의 그곳이 아니다. 생태계가 변화하듯, 공간 자체도 그 주변과 함께 변해가는 것이 숙명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주변의 경관은 이미 크게 바뀌었고, 마천루 같은 고층 아파트들이 신축되는 몇 년 후면 그 경관은 훨씬 더 달라질 것이다. 공간의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신자에 맞게 번역될 뿐이다.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번역의 힘은 앞으로의 교육에서 비롯된다.
  둘째, 남영동의 진정성은 민주화운동과 인권유린의 증언 및 기록을 통해 좀 더 생생하게 체감될 수 있다. 다양한 영상과 기록 자료들을 선별해 전시장 내에 배치하고, 교육에 직접 활용하면 어떨까. 과거의 기록을 손으로 만져보고 탐색하는 아날로그적 경험은 체험을 결여한 후세대에게 진정성에 대한 확신과 증인으로서의 책무의식을 갖게 해줄 것이다.
  셋째, 남영동의 접근성을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에서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곳에 세워질 민주인권기념관은 모든 종류의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더 나아가 장소적 한계도 넘어설 수 있도록 온라인 접근성을 대폭 증대시켜야 한다. 충실한 온라인 전시가 그 시작이라면, 그 끝은 국내외의 모든 수요자들이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허브 플랫폼의 설치와 운영이지 않을까.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에 관한 정보가 온라인 백과사전과 애니메이티드 맵(Animated map)을 통해 제공되고, 유엔 주요 언어로 지원돼 세계의 모든 사용자가 자료를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지구적 소통의 플랫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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