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0.1 화 22:53
기획학술
[토론문] 참여시의 김수영과 참여하는 시대의 민중들최원 / 시인
최은영 편집위원  |  rio.flane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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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승인 2019.06.04  19: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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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참여시의 김수영과 참여하는 시대의 민중들

최원 / 시인

  내 스스로, 문단 내 권력의 카르텔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시인’이라 생각하기에, 연구논문을 읽고 평가하는 것에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연구논문을 가까이하지도 않을뿐더러 연구논문을 작성할 계획 역시 없기에, 논문의 형식과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상한 대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다만 읽어가며, 논문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찾으며 밝혀진 사실의 나열이 아닌, 정해진 결론에 대해 근거를 제시해 나가는 작업이라는 것’임을 어렴풋이 생각해봤다.

  김수영은 대한민국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일 것이다. 문종필의 논문 인용 출처에서 알 수 있듯이, 김수영은 이미 여러 학자의 연구대상이 됐고, 그의 시론을 탐구한 논문도 수없이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는 김수영이 ‘참여시’를 쓰며 남긴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현시대의 시인에게도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삶과 시는 다양한 각도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작품임을 후속 세대에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본 논문에서 문종필은 김수영의 ‘진정한 참여시’에 대해 논한다. 김수영은 산문 〈참여시의 정리〉에서 프로이트의 ‘증인부재 도식’을 참고로 하고 있다. ‘증인부재 도식’이라는 의식의 그림자는, 몸체인 ‘무의식보다 시의 문으로 먼저 나올 수 없’고 ‘나중에 나올 수도 없’다. 다시 말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한편 예술가 ‘개인의 자율성이 사회와 연결’돼야 한다는 아도르노적 참여시와 ‘직접적인 사회변혁’을 주장한 사르트르적 참여시를 비교 대상에 두고 중재한다. 결국 진정한 참여시란 예술성이 최우선이 아닌 건전한 사고, 정치, 사회적 목표를 가진 시라고 말한다.

  문종필은 김수영의 시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진정한 참여시’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나, 기실 이는 이 시대의 시인들에게 묻고 있는 것과 같다. 김수영을 존경하는 현대의 시인들은 과연 얼마나 참여적인 시를 쓰고 있는가. 진정한 참여시를 쓰고 있는가. 온몸으로 쓰고 있는가. 혹시 김수영 정신은 한쪽에 밀어두고 그저 그대들만의 시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람되지만, 나는 우선 현시대의 시를 읽는 독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는 시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김수영의 시대와 다르게 지금의 대중은 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시’를 사랑하기에는 그보다 먼저 ‘정보’가 도달하는 사회다. 지금의 대중에게는 이념이나 철학 또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며, 그 매체들 안에는 ‘김수영 시대’의 진보보다 더 진보적인 정보(때때로 후퇴된 정보)가 널려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바로 ‘참여’의 개념이다. 김수영 시대의 대중은 인간의 사회참여로서의 도덕과 윤리적인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은 현재의 대중보다 치열했을지라도, 지식정보에 있어선 지금의 대중이 앞서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바꿔 말하면, 당시에 비해 지금의 독자는 다양하고 앞선 방식의 미디어를 통해 훨씬 ‘참여적’이다. 실제로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 정치·사회적 단체들이 대한민국의 운영에 매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여러 측면에서 진보하는 사이 김수영의 참여시는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김수영의 삶과 문학을 다룬 글을 하나 읽었다. 몇 편의 시가 부분 또는 전문으로 인용되며 연관된 시인의 실제 삶을 다루고 있었다. 그 글에 ‘참여’한 댓글을 읽었다. 대부분의 글 내용이 김수영에 대한 비난이었다. ‘진정한 참여시’를 주장한 김수영은 현재의 참여자에게는 기존 남성 권력 카르텔 속에서 성전에 오른 남성 작가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김수영 시에 드러난 ‘여성에 대한 폭력성’ 때문이었으리라.

  그 글이 게재된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이 줄곧 문제 되고 있었고, 이것이 아마도 현시대의 시대정신일 것이다. 물론 그 글에 댓글을 쓰거나 참여한 이들이 대중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현재의 시대정신이 시인 김수영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문학은 현시대의 대중을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들의 참여가 김수영이 일컬은 ‘진정한 참여’가 아니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김수영은 ‘진정한 참여시’를 주장했다. 그리고 그 ‘참여’의 뿌리는 수많은 난관의 암석을 쪼개고 나와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현재 대중의 삶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이라 본다. ‘자신의 폭력행위를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시인의 ‘처절한 고뇌’는 특정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꺼지지 않는 참여를 일으킨다.

  잠든 김수영을 고이 두라. 그의 ‘참여시’가 시대를 관통하며 ‘진정한 참여시’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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