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성 / 서울특별시명예청년시장

[‘20대 개새끼’부터 ‘N포’까지, 세대론 10년 ④ 불리는 ‘세대’, 말하는 ‘세대’]

지난 10년 동안 ‘청년’은 “88만원”“3포”“달관”이 그렇듯 주로 ‘경제적 약자’로서 그려졌다. 물론, 정치적 차원에서도 보수정권 집권의 원인을 귀책하거나(“20대 개새끼론”), 리버럴의 당선(‘청년의 승리’)을 예찬하기 위해 ‘청년’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세대로 설명됐다. 이 같은 세대 개념의 남용이 지닌 위험성과, 그럼에도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유용성은 무엇인지, 지난 10년간의 세대론이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금 톺아보자.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계급’을 지우는 청년세대론 ② ‘젠더’를 지우는 청년세대론 ③ ‘청년논객’ 담론 갈무리 ④ 불리는 ‘세대’, 말하는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을 말한다

김희성 / 서울특별시 청년명예시장

  조국 근대화의 기수, 경제발전의 역군, 민주화의 주역, 그리고 N포세대 까지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소위 ‘청년’이라는 집단을 호명할 때 연상하거나 기대(혹은 요구)하는 청년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청년에 대한 이미지가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로 청년실업 문제가 한국 사회에 대두되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취를 강조하며 무한경쟁과 자기계발의 길로 청년들을 인도했다. ‘취업’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설계되고 규정됐다. 청년은 더 이상 사회변화를 이끌어가는 문제해결의 주역이 아니었다. 수동적인 청년의 등장. 실업이라는 재앙에 놓인 해결해야 할 ‘문제’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가 크게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하게도 청년운동의 모습 또한 달라지게 만들었다. 이제 ‘군사정권’이라는 거악에 맞서 ‘민주주의’라는 것을 지키기 위한 거대한 전투와 같았던 과거의 청년운동은 스크린에서나 간접적으로 접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2000년대 새로운 청년/청년운동의 등장

  취업난과 저성장이라는 현실에서 지금의 청년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적은 임금을 받고, 고용 형태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자리 개수의 확대와 실업률을 낮추는 양적 수치에 혈안이 된 정책들은 당사자들이 마주하는 문제인 노동 현장의 질적 조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IMF를 겪으며 대량해고와 실직을 가정 내에서 경험한 지금의 청년 세대는 사회가 시민의 삶을 적절히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했지만, 이후의 정책들도 역시 청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삶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정년이 보장된 공기업/공사, 공무원 시험으로 눈길을 돌린다는 담론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청년들에게 사회는 ‘눈이 높다’ ‘패기가 없다’ ‘이기적이다’는 질타를 던졌다. 어디 이 뿐만 이겠는가, 멘토의 조언 또는 위로, 그리고 이들을 규정하고자 하는 수많은 ‘세대론’까지 봇물 터지 듯 쏟아졌다. 그러던 와중, 2010년 ‘청년유니온’이 등장한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서, 청년유니온은 출범 이후부터 연일 화제가 됐다. 청년유니온은 현재 청년세대가 마주한 문제들이 청년들에 의한 것이 아니며, 사회‘구조’에 기인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그간 호명되지 못했던 ‘청년노동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한 ‘당사자 운동’의 큰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더욱더 노력해 성공할 것을 채찍질 하거나, 청년을 긍휼히 여겨 이들에게 연민을 보내는 관점 모두를 거부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과 ‘이슈파이팅’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거버넌스를 하는 ‘청년’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삶은 빠르게 악화돼가고 있었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실업 이외의 주거, 건강, 부채 등 여러 분야와 얽혀 더욱 심화돼 갔다. 취업을 한다고 일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근 10여 년간 전가의 보도처럼 이어진 ‘청년문제는 실업문제’라는 청년정책의 대전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청년정책은 굳건했다. 청년에 관한 유일한 법률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전부였고, 이 법은 청년을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만 명확히 규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가 시작된 곳이 지방정부였던 서울특별시였다. 기업별 노조도, 산업별 노조도 아니었던 ‘청년유니온’은 2012년, 서울시와 ‘사회적 교섭’을 통해 청년일자리 정책협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시작된 지방정부와의 거버넌스(Governance)는 2013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가 출범하면서 본격화된다. 이때의 거버넌스란 그동안의 정부 주도적인 문제 해결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정부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각 분야별 현장의 시민의견을 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시와 시민의 가교 역할”을 하는 명예시장들, 특히 청년 명예시장 역시 거버넌스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서울청정넷의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사례다. 청년이라는 세대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기에는 다양한 경험과 조건을 가진 매우 비균질적이다. 또한 어떤 대규모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미조직돼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하나의 신념을 강하게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하나의 단결된 조직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기존의 운동 방식과는 또 다른 운동 방식으로 나타난다.

청년정책네트워크와 당사자주의

  서울청정넷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19-39세 사이의 청년들이 참여해 다양한 정책의제들을 주제로 너른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모니터링과 제안을 통해 시정에 참여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강조됐던 것이 바로 ‘당사자주의’다. 물론, 당사자주의에는 일련의 함정이 있다. ‘청년’ 당사자들 내부는 각각의 이질적 주체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주장이 필요한 것은 현재 문제해결을 위해 당사자의 참여와 나아가 문제해결을 직접 하기 위한 권한이 그동안 보장돼 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앞으로는 청년이 되찾아야 할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아래, 지난 2015년 서울시는 청년정책 5개년 기본계획인 ‘서울형 청년보장 2020’을 발표한다. 일자리를 포함해 살자리(청년주거 및 생활안정), 설자리(사회참여 및 역량강화), 놀자리(청년활동 및 정책기반 확대)라는 ‘패키지’ 정책인 서울형 청년보장은 그동안 일자리에만 국한돼있던 청년정책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방향전환을 이뤄냈다.

  앞서서 계속 언급했듯이, 서울청정넷과 서울시의 거버넌스 사례와 이를 지속시키며 만들어내는 변화들은 기존의 청년운동과는 다른 지점이 많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마주한 청년들의 현실에 발맞추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토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반응하며 전략도, 운동방식도 발맞춰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청년‘세대론’이 의미를 가질 때는 언제일까

  여러 가지 논란과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라는 담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균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청년‘세대’의 내부에서 공통으로 감각하고 있는 지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높은 주거비, 실업률, 가치관 갈등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 성평등, 마음건강까지 지금의 청년들이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개별화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응집하기 위해, 그리고 조명 받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세대’가 사용될 때,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지점으로서 세대론과 세대운동 또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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