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채 / 前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한국 사회와 죽음] ④ 웰다잉-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무척 철학적이고 심오한 문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삶의 한 부분이기에 이 질문을 계속 회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지면에서는 죽음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자살의 사회적 이해와 예방책 ② 미디어 속 죽음 ③ 과로사회와 과로사 ④ 웰다잉-어떻게 죽을 것인가

 

웰다잉, 아름다운 죽음 맞이하기

 

정현채 / 前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미국의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E.Smith)가 1951년에 스페인의 한 마을에서 찍은 <후안 라라의 장례식 전야>라는 작품에는, 한 노인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방 침상에 누워 있고 그 옆에 가족, 친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소 염려하는 표정들로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순간이 포착돼 있다. 60여 년 전이면 스페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비슷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삶의 마지막을 보살폈고, 죽음이 일상사에 자연스럽게 포함돼 있었다.

  그러다가 과학이 발달하고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이 아닌 낯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의료진들도 죽음을 삶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치료의 실패나 의료의 패배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됐다. 또한 응급 환자에 적용돼야 할 치료법이 임종이 며칠 남지 않은 말기 환자에까지 적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져서, 이제는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편안하게 죽기도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말았다.

 

■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1915, 캔버스에 유채
■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1915, 캔버스에 유채

 

  어느 일간 신문의 수년 전 기사에 의하면, 어느 재벌 그룹의 명예 회장이 고령의 나이에 임종이 임박해 오자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비서들과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고 한다. 후속기사가 없어 이 분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려면 평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T.Cicero)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라고 했다.

  죽음 준비의 핵심은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으로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죽음은 사라지는 것,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구스타브 융(G.Jung)은 그의 수제자였던 폰 프란츠(V.Franz)의 입을 통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근사체험, 죽음 그 너머

  그런데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1970년대 중반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는 현대 과학과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비과학적인 영역’이 베일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발전하면서, 심장과 호흡이 멎고 동공 반사가 소실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생겼고,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이 죽어 있던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근사체험’ 혹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체외이탈을 해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도 중요한 체험요소 중 하나다. 인간의 의식은 반드시 뇌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현상인데, 현재는 세계적으로 수천 건 이상의 근사체험 사례들이 축적돼 있다.

  근사체험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 근사체험은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여러 병원에서 근사체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2001년에 의학학술지 <Lancet>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했더니 18%인 62명이 근사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근사체험의 열 가지 요소는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50%) ▲긍정적인 감정(56%) ▲체외이탈 경험(24%) ▲터널을 통과함(31%) ▲밝은 빛과의 교신(23%) ▲색깔을 관찰함(23%) ▲천상의 풍경을 관찰함(29%)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와 만남(32%) ▲자신의 생을 회고함(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이다. 또한 8년간 관찰결과, 근사체험자는 다른 사람에게 더 잘 공감하고,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며, 죽음을 적게 두려워하며, 사후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더 많이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퀴블러 로스(Q.Ross) 박사는 어린이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정신과 의사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애벌레 모양인데 뒤집으면 날개가 달린 나비로 변하는 헝겊인형을 보여주면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는 “인간의 육신은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불과해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고 일관되게 얘기했다. 많은 환자들이 임종이 임박해 겪은 삶의 종말체험과 근사체험을 관찰하고 이를 연구해 도달한 결론이었다.

 

또 다른 세상을 위한 준비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전공하기도 했던 프랑스의 샤르댕(T.Chardin) 신부는 “우리는 영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체가 다가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차원에 걸쳐져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영적인 존재라면 가까운 내 옆의 사람도,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도 모두 다 영적인 존재다. 죽을 날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히말라야를 등반한다든지 크루즈 유람선을 탄다든지 하는 평소에 실행하지 못했던 체험을 하는 것만이 죽음 준비인 것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무한한 우주에 자신이 연결돼 있다는 걸 알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죽음 준비다.

  우리가 여행을 가기 전에는 집안 정리를 하고 가족들에게 이런 저런 당부도 하며, 여행 갈 곳에 대한 지도와 정보를 구하고 여행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어떠했는지 경험을 물어보기도 한다. 하물며 기나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갖는 감정은 무관심과 부정, 외면 그리고 혐오다. 젊고 건강할 때 유언장을 써 보기도 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놔야 하는데,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조차도 싫어한다. 그러다가 암 등의 불치병 진단이라도 받게 되면 정작 그때는 주위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기도 한다. 열심히 삶을 살아 왔으나 삶의 마무리는 전혀 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마무리를 잘 하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다 편안한 상태에서 떠날 수 있으려면 평소 죽음을 직시하고 자주 성찰하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서로 얘기 나누는 게 필요하다.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일본 영화 <이키루>(1952)의 주인공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자, 죽기 전에 꼭 한 가지는 해놓고 떠나자는 결심을 하고서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어렵게 추진해 나간다. 그러나 주위의 냉대와 푸대접을 받게 되는데, 한 직원이 “사람들이 밉지도 않느냐?”고 묻자 “나는 누구를 미워할 수가 없다네. 그럴 시간이 없어.”라고 대답한다. 또 퇴근길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네.”라며 발길을 재촉한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삶의 유한성을 매일같이 깨달으면서, 내게 주어진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면서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이 값지게 쓴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어느 완화의료전문의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얘기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고맙다고 말하기,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기, 작별인사를 잘 남기기.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게 좋은 죽음일 것이다. 영화 <이키루>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을사람들을 위해 어린이 공원을 완성해 나가듯,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도 좋은 죽음의 한 요소다.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예측 불허성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구체화시켜 간다면, 그것이 좋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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