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11.7 수 13:35
기획문화
[문화] 주문하신 ‘백년가게’ 나왔습니다
임해솔 편집위원  |  tuddldos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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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승인 2018.11.07  03: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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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백년가게’ 나왔습니다

-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서 본 백년가게의 현실 -


최요한 / 시사평론가


  <미스터 션샤인>은 예능프로그램 전문방송국인 TVN에서 지난 7월 7일부터 9월 30일까지 24부작으로 방영된 역사 드라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이 시대가 동양과 서양이, 추문과 스캔들이, ‘공자 왈 맹자 왈’과 ‘똘스또이’가 공존하던 “맹랑한 시대”이자,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이 노서아 가비(커피)를 마시고 구락부에서 ‘딴스’를 추던 “명랑한 시대”였으며, 잉글리쉬(English)를 익혀 ‘초콜렛또’를 건네며 ‘LOVE’를 고백하던 달콤 쌉싸름한 “낭만의 시대”였으나, 그 속에서 누군가는, 조국을 빼앗겨 이름을 빼앗겨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죽어가던, “상실의 시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두 다 죽어나가던, 죽음이 시대를 강제했듯(아니던가? 시대가 죽음을 강제했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큰 상실은 사람이자, 사람의 시간이자, 시간의 파편으로서 기억들일게다. 여기서 이미 싹이 잘린, 될성부른 백년의 가능성을 가졌던 가게들을 톺아보자.


<미스터 션샤인>의 가게들


  ▲미망인 쿠도 히나(工藤 陽花)의 ‘호텔 글로리’ - 조선의 모든 권력은 사내들에게 있었으나 그 사내들은 언제나 호텔 ‘글로리’에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한성 바닥에서 젊고 아름다운 미망인’으로서 쿠도 히나가 있었다. 그러나 ‘호텔 글로리’는 백년은커녕 십 수 년을 버티지 못하고 독립운동의 별처럼, 일본군 순사들을 끌어안고 ‘펑’하고 산화했다.
  ▲도공 황은산의 ‘가마터’ - 일본, 청나라, 러시아 등 모두가 탐내는 작품을 만드는 조선 최고의 도공인 황은산에게 백자 쪼가리라도 얻으려는 뭇 사람들이 석 달이고 넉 달이고 나루터에서 하릴없이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다는 이야기만 남았다. 그가 도공일 때는 그런 연유로 버텼던 ‘가마터’는 그가 의병대장으로 정체성이 드러난 순간, 함께 몰락했다.
  ▲룸펜 김희성의 ‘오얏꽃 신문사’ - 신문사에 이름도 없다. 그저 오얏꽃이 달랑 현판 대신 달려 있어 오얏꽃 신문사다. 그 신문사는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어울렁더울렁 기사를 냈으면 좋으련만, 해산돼 저항하는 대한제국 군인들의 모습을 호외로 발행하며 김희성과 함께 역사의 시간 속에 파묻혔다.
  ▲일식이, 춘식이의 전당포 ‘해드리오’ - 젊은 시절 추노꾼으로 살아왔기에 이들은 갑오개혁을 맞아 순식간에 노비제 폐지로 실직했으나, 전당포이자 심부름센터이며 오얏꽃 신문사에 세를 내주기도 한 건물주로 변모하기도 했다. 그들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의병으로 멀리 떠났고 ‘해드리오’는 간 곳이 없다.
  ▲전직 궁녀, 현직 주모인 홍파의 ‘삼계탕집’ - 팔이 제 안으로 굽는 것이 당연지사다만, 유진 초이에게는 홍파가 장포수에게 내 준 삼계탕 닭의 크기가 섭섭하기만 하다. 물론 이는 나중에 저들이 서로 한 통속임을 알려주는 복선이다. 홍파는 죽어서야 경위원 총관 장승구의 ‘안 사람’이 되면서 역사 속 그 역할이 끝남을 알려준다. 삼계탕 집은 닭의 크기와 애국의 크기는 비례한다고만 알려줬지 정작 그 닭 맛(?)은 알려주지 않고 막 내렸다.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우리 눈에 비친 저 호텔과 가마터와 전당포 등은 허구일 수 없다. 우리의 삶이었고 역사였으며 켜켜이 묵혀둔 아픔들이었다. 백년 가게를 넘어 백년의 거친 숨결이었고, 백년의 고단한 삶이었고, 백년의 슬픈 결말이었던 것이다.

 

   
▲ 출처: tvN <미스터션샤인>


백년가게 거죽으로 읽기(Transcendent)


  그 외에 숱하게 등장하는 불란서 빵집, 제빵소 눈깔 사탕집, 진고개 선술집 등은 그 시대의 그 엄청난 역사의 격변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당당하게 그들의 문패를 걸고 있을까. 식민지와 무장 독립항쟁을 겪으며 글로리 호텔은 버텼을까. 느닷없는 해방과 그 무서운 한반도 전쟁을 겪으며 가마터와 ‘해드리오’는 배겨낼 수 있었을까. 군부독재와 장기집권, 쿠데타와 민주항쟁을 거치며 ‘오얏꽃 신문사’는 혹시라도 검열과 통제 속에 질식해 시들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백년가게가 빛나는 이유를 ‘시간’이라는 세정제로 반짝반짝 닦아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이 백년가게 구성원들의 DNA가 전통과 자부심, 고지식한 고집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고 표현한다. 부(富)를 따라가지 않고, 가장 기본을 지켰기에 현재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평가가 가득하다.
  다 맞는 소리이나 그래도 아쉽다. 이는 거죽으로 백년의 세월을 본 것이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현실로 인해 우리나라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내부의 권력에 변동이 있든, 세습이 이뤄지든, 아니면 하다못해 민란이라도 일어나면 주변국들의 간섭과 개입이 끊이지 않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백년가게는 90여 개에 불과(?)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2만 2천여 개에 이른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천만에! 이런 피눈물 나는 역사적 배경에서 90여 개 씩이나(!) 존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우리네 할아버지의 아버지뻘 어르신들이 일궜던, 맹랑하고 명랑했으며 낭만이 가득한 시대는 결과적으로는 외력에 의해 상실했고 그 상실의 속도와 함께 백년가게가 될 수 있었던 될 성부른 떡잎들은 몰락했다. 아니,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년가게 톺아서 보기(Immanent)


  요즘말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자.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백년가게를 선정해서 번쩍번쩍 하는 현판을 달아주면서 가게에 대해 ‘보증’을 한단다. 일명 ‘백년가게 육성방안’. 이제는 순대국밥만 잘 해도 자부심 ‘뿜뿜’하고, 소상공인이라고 금융권은 괄시를 하거나 차별하지 않을까?
  “삼성전자를 다닙니다. 대출해주세요.”와 “이 동네에서 20년 동안 맛있는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대출해주세요.” 어느 쪽이 은행으로부터 대우를 받을까?
  다시 <미스터 션샤인> 최종회 첫 장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대신들이 용상(龍床)에 줄 맞춰 앉는다. 무언가 또 나라 팔아먹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양이다. 을사오적 이지용, 이완용, 정미칠적 이병무와 송병준이 다 모였다. 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한성판윤을 지낸 김현석 대감의 손자 희성이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한 마디 한다.


  “김현석 대감? 그 집안 자손이 어찌 이런 잡일을…. 사내대장부가 업적을 남겨야지, 지하에 계신 대감께서 눈을 감으시겠나?”

  백년가게가 버텨내기 어려웠던 외재적 요소가 슬픈 우리 역사의 격변에 있었다면 백년가게가 이어지기 어려웠던 내재적 요소는 저 차별의식에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찌든 낡은 사고, 보수(保守)가 아닌 퇴행적 수구(守舊)가 헤게모니(Hegemony)를 쥐고 있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상징적이지만, 희성은 이들을 기록했다. “대대로 기억 되셔야지요.”라면서 매국노들의 사진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겼다.
  과문해 ‘백년가게’에 대해 외국의 사례는 어떠하고, 우리는 그들의 어떤 것을 배워야 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백년’을 이어가는 가게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의 백년가게는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들면 그저 의병’이었던 사람들이 ‘환하게 피었다 불꽃으로’ 지면서 최선을 다한 결과로 남았다는 것이다. 고통과 아픔의 세월로 찢겨지고 끊어졌지만, 그래도 그 정신이 2018년 대한민국의 우리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그대! 애신이 말 거는 것 같지 않은가.

 

  “잘 지내나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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