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 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글 싣는 순서] ① 뇌과학, 인간을 바라보다 ② 사회의 가치를 구현하는 뇌과학 ③ 현대 뇌과학의 동향 ④ 뇌과학, 치료·윤리를 말하다


신경(형)법학의 남은 과제


신동일 / 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뇌과학이란 단어가 유행한 지도 2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뇌과학은 법학에서는 여전히 겉돌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개념적으로 다른데, ‘과학’이란 보편적 진리를 체계화한 지식을 다루는 학문적 특성을 말하고, ‘기술’이란 (과학)이론을 적용해 유용한 방식으로 실현되도록 한 결과다. 뇌과학이란 뇌에 대한/또는 뇌를 이용한 보편적 진리의 체계적 설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뇌과학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성과란 과학적 설명이라기 보다는 뇌현상의 측정과 응용 가설에 치우쳐 있다.


뇌생리 기술을 응용한 법이론: 신경법학

  뇌과학의 붐은 주로 SPECT, fMRI, EEG 등 새로운 기기의 출현으로 뇌신경체계에 대한 이전 가설들이 결합되면서 만들어졌다. 한동안 신경외과 전문의들에게나 익숙하던 뇌하수체나 변연계, 아미가달, 시상하부, 뇌간, 해마 등 전문용어들은 최근 중고등학교 수업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뇌 안에서 어떤 생리적 현상이 진행되는지를 아는 것과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는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다르다. 뇌생리 현상이 곧 마음이라는 믿음은 오래된 철학적 주제이기는 하지만 쉽게 결론내릴 단계는 아니다.

  신경법학(Neuro Jurisprudence) 내지 신경형법학이란 분야는 199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서 시작됐다. 뇌의 기능과 신경체계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법 정책과 이론체계를 탐구하는데 집중했다. 그동안 연구 방향은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판례들이나 2000년 초반 독일의 논쟁 주제인 변연계 중심의 책임이론 등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등장한다. 일부는 마케팅 등과 같은 상업적인 이유, 다른 한편 선거 전략과 예측과 같은 정치적 목적에서도 제안됐다. 법학에서 이 논의가 촉발되는 원인도 다양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사항은 역시 사건과의 관련성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케네스 팍스 사건(R v. Parks [1992] 2 S.C.R.871)이 있다. 1987년 피고인은 수면 중 상당한 거리의 장인·장모 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장모를 타이어 교체용 철봉으로 살해하고, 그 후 장인을 목졸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다. 그는 다시 차를 몰고 경찰서로 가서 자신이 방금 누군가를 살해한 것 같다는 진술을 한다. 변호인은 ‘몽유병 기질에 의한 살인’을 진단한 뇌파측정기록(Electroencephalogram, EEG)을 증거로 제출했다. 피고는 수년간 몽유병 관련 증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력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살해 동기가 없었다. 1992년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피고에게 살인과 살인미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다.

 
 

  볼프 징어(W.Singer)와 게하르트 로트(G.Roth)는 2000년 초반 획기적인 저술들을 연속 발표한다. 인간의 의사자유란 뇌 안의 변연계(Limbic System)의 생리적 조건에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의사자유에 따른 행위는 뇌생리 현상에 따른 자동화된 결과라는 도전적 제안이었다. 독일의 지성사회는 격한 논란에 휩쓸린다. 특히 형사법학자들은 이 논의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의사자유와 이성적 결정은 헤겔(G.Hegel) 이후 중요한 이론적 근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보다 형법은 이성적 판단을 범죄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형사법적으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과 같이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이성적인 판단은 구조적이기도 하고, 기능적으로 결함을 가질 수 있다. 법에서는 이를 착오로 설명하고 일부는 제한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행위자의 의사자유와 그에 따른 자유로운 결정이 형사법 판단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에 로트와 징어의 주장이 근대 형사법의 기본 원리를 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등장했다. 일부는 이 견해에 따라 새로운 형법관을 주장하기도 했다. 함부르크 대학은 독립적인 연구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대략 2-3년을 지속한 이 논쟁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싱어와 로트 교수 주장의 근거인 1984년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 실험이 과다하게 해석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를 부정하는 새로운 실험 결과(예를 들면 Christoph S. Herrmann 등의 2005년 실험)가 연이어 소개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르크하르트(B.Burkhardt)의 언급처럼 형법에서 의사자유란 그다지 중심적인 요소가 아닌 것으로 판단 되고 있다. 변연계이건 인격이건 뭐가 결정하든 그 사람의 행위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찻 잔 속의 폭풍’(Sturm im Wasserglas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Thomas Hillenkamp의 표현)으로 끝났다.

기술의 가능성과 이론의 한계

  뇌과학과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될 전망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통섭(Consilience)의 방식으로는 진행되지 못할 수 있다. 근대 이후 각 학문은 외형이 아니라 그 사태를 이해하는 인식틀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즉, 뇌과학과 법(과)학은 소재의 특성이 아니라 이해의 방식에서 다르다. 법학은 소위 현상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현대 법학은 과학적 환원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과학이론에 대한 존중은 하지만 이를 법적 판단의 직접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증거법칙상 실증과학적 자료들은 감정이나 의견증거와 동등하게 취급되며, 직접 증거로는 평가하지 못한다.

  게다가 근대 법학은 행위자의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대상을 ‘고정적 실재’로 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소송은 범죄자의 의도(고의)와 목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다. 근대 법은 각 행위 주체들의 판단(뇌생리과정)에 따른 외적 표상(행위나 언어)에 대한 객관적 진술구조(법률)의 공동체 규약과의 일치성을 통해 평화를 유지시키는 하부체계다(Niklas Luhmann의 체계이론). 최근에는 법체계적 정합성이 법 효과를 자동적으로 완성시키는 일종의 컴퓨테이션 과정(Autopoiesis)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는 각 주체들의 결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날 신경과학적 결정론(Neurodeterminism)이란 한편으로는 소박한 경험적인 근거에서 비롯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법론적인 오해를 반복하는 순환 속에 갇혀있다. 각 하부체계는 각자의 인식방식과 수용과정이 있다. 뇌과학이나 기술의 성과가 다른 하부체계에서 인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증명된 제안으로 해당 분야에서 승인되고 또한 다른 하부체계의 승인을 받아야 전체 사회체계로 확산될 수 있다. 뇌 기능의 연구과정과 그것이 갖는 인간 행위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연구된 것과 연구될 수 있는 것은 승인과 수용이라는 별개의 문제영역이다.

  뇌과학 연구자들은 현재 우리사회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법은 과학기술을 과대포장해서 부당하게 이익을 편취하거나,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이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생활권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공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사생활권은 기본권의 핵심적 영역에 속한다. 이 영역은 심지어 범죄자의 경우도 절대적으로 보호받는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유명한 일기장 판결(연방헌법재판소 판결집 제80권, 267 이하)에서 “형사절차에서… 핵심영역이란 그 자체, (불가침의) 인격권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책임원칙을 피고인의 결정에 따라 정해지는 필요에 따라 준수한다면, 결국 책임원칙이 인간의 존엄성을 도구화(훼손)시키고 만다.”고 선언하고 있다. 적어도 법학은 뇌과학의 연구에서 타인의 ‘인지적 자유권(Cognitive Liberty)’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하이데거(M.Heidegger)가 설명하듯이 인간의 현상학적 행위는 감각(Befindlichkeit)과 이해(Verstehen)의 중간쯤에서 이뤄질 수도 있다. 이해 개념은 그동안 상당히 구체화되고 있지만, 감각은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진지하게 성찰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의 뇌는 두 가지 모두 관여하고 있다. 다른 생리적 조건(예를 들어 호르몬이나 신경 작용)을 제외하더라도 뇌를 이해하는 과정은 굉장히 멀고 오래 걸릴 목표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