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대중화, 그 정당성과 그늘 -


  [문화] 기억을 향한 여정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을 통한 산업화·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 대도시로 인구 및 산업의 집중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도시의 팽창을 부추겨 도시공간의 확산을 가져왔고,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역사적 문화 환경이 도심화 돼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아 많은 문화재가 약탈·훼손 당했고, 내부적으로는 서구 열강들이 주도하는 근대사회에 주역으로 발돋움 하지 못하자,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평가 절하한 측면도 있다. 문화면을 통해 역사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우리의 역사성을 인식하고자 기획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역사대중화와 현재 ② 문화재 환수, 기억을 찾는 여정 ③ 역사와 함께 하는 백년가게 ④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과 문화 정체성

 

 

호모-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

- 역사대중화, 그 정당성과 그늘 -


오항녕 /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대중화에 대한 두 견해


  내가 보기에 학문의 대중화라는 말에는 좀 상반된 느낌을 주는 두 가지 시각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대중화란 진지한 학문이 갖는 위대한 휴머니즘적 전통의 일부분이지, 단순히 즐거움이나 이익을 위해 쉽게 고쳐 쓰는 훈련이 아니다.”라는 관점(《인간에 대한 오해》 (2009))이다. 이 견해는 학문의 자부심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단순한 즐거움이나 이익’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쉽게 쓰는 대중화’에 방점이 놓인 것이 아니라, ‘진지한 학문의 위대한 휴머니즘적 전통’에 방점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역사가들이란 여러 가지 문제를 조사하는 데 자신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별 특별할 것 없는 기술을 사용한다”고 전제하고, “저널리스트나 정치가, 방송 해설가나 영화감독, 미술가는 역사가 특유의 ‘기술’이나 ‘방법론’ 없이도 그 나름대로 방식을 만들어 ‘과거’에 성공적으로 접근해왔다”고 보는 견해(《역사를 소비하다-역사와 대중문화》(2014))가 있다. 비전문가들도 별로 특별하지 않은 역사가의 ‘기술(技術)’ 없이도, 과거 사실에 다가가 이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대중화란 학계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호모-히스토리쿠스


  적어도 역사학과 관련해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첫째, 역사는 인간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전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여기의 역사’를 한쪽으로 밀어놓은 데서 역사공부가 편협해진다. 과거와 현재를 대립시킴으로써 역사의 단절을 가져오고 대칭성을 붕괴시킨다. 이는 곧 ‘역사 그 자체인 인간’, 즉 호모 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의 자기분열을 의미한다.(《호모 히스토리쿠스》, (2016))
  둘째, 역사적 사건이라고 하면 종종 뭔가 대단한 사건을 떠올린다. 나랏일은 큰일이니까 역사적 사실의 가치가 있고, 우리네 일상은 소소하니까 그런 가치가 없는 듯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무리 큰 사건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과연 일상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 있기는 한가. 6.25 한국전쟁의 경우 그 일을 겪은 부모님의 하루하루 삶을 통해 실체와 아픔이 드러난다. 21세기 한국사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해야 하는 친구의 일상에서 드러난다. 언제나 역사적 사건과 현실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오롯이 구체적인 인간의 경험에서 나타난다.
  쉽게 말해 ‘인간=역사적 인간’이라는 말이다. 내 일기가 역사이고, 역사학의 대중화 이전에 이미 역사는 대중인 나와 붙어 있다는 뜻이다.

 
 

팩션: 네모난 원!


  대중화의 양상으로 팩션이라는 말을 쓴다. 팩트(사실)과 픽션(허구)의 합성어다. 역사의 이야기와 팩션이 다른 점은 이렇다.


   사실 + 추론 + 사실 = 이야기
   사실 + 허구 + 사실 = 팩션


  추론은 사실에 기초하지만, 허구는 없던 사실을 지어낸다. 그런데 상식에 입각해 정의하면 역사 또는 역사학은 지어낼 수도 없고 지어내서도 안 된다. 공자는 ‘있는 대로 기록하고 지어내지 않는다(述而不作)’는 명제를 세웠다. 이것이 역사학도로서 공자가 지닌 원칙이었고, 지금까지 역사학의 최소 기준이기도 하다. 역사를 어떻게 활용하고 소비하든 그것은 다음 문제다.
  당연히 영화나 게임에서 허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즐기는 놀이의 영역에서 흥미를 더하기 위해 허구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노는 인간(Homo Rudens)’은 분명 인간의 특성 중 하나다. 즐거움, 놀기는 역사대중화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던가.
  추론 역시 사실에 기초하지만 사실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또한 사실에 기초한다. 추론이 허구일 수 있다. 둘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사실과의 관계에서 추론이나 허구가 사실에 기초한다면 상상력이지만, 추론이나 허구가 사실을 부정하거나 파괴한다면 왜곡이 된다. 뒤의 경우라면, 추론은 학문적 정당성을 잃고, 허구는 역사와 결별한다. 이 경계를 혼동하면 그때부터 팩션은 위태로워진다. 그 경계를 혼동해 나타난 병폐의 사례가 《사도세자의 고백》(1998), 《조선 왕 독살사건》(2005) 따위의 ‘대중서’다.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언젠가 ‘모든 역사는’이라는 검색어로 포털에서 검색을 했더니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표제어가 제일 먼저 검색됐던 기억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승자의 관점에서 왜곡되기 마련이라는 관념이 의외로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역사 또는 역사 기록의 한계를 언명하는 가장 소박한 형태의 냉소(冷笑)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가 승패로만 이뤄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거기에 내면화된 선정주의의 토대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승패로 나뉘는 세상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평범한 진실에 더해, 또 승패가 있다는 사실과 승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평범한 이치에 더해,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관점이 갖는 함정 하나를 지적하고 가야겠다. 이 견해에는 무엇보다도 일부에 대한 진실로 전체를 덮어버리는 지적 게으름이 숨어 있다. 원래 게으름은 모든 냉소의 공통된 속성이라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냉소만큼 비생산적인 감정도 없다. 어쩌면 냉소는 신(神)이 없거나 신이 인간을 미워한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관점의 차이는 역사공부의 출발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과거를 재현할 수 없고 남아 있는 기록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오류의 가능성이 역사탐구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서로 다른 관점과 해석은 역사탐구의 숙명이다. 꾸준히 자료를 검토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의도적인 경우는 사사로운 이해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경우에 주로 발생하는데, ‘콩쥐팥쥐론’이나 ‘당쟁론’으로 빠지면 그 왜곡이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패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특히 식민사관이나 전체주의 같은 방식으로 국가가 역사탐구에 개입하면 정치가 역사를 먹어버리거나 헤집어버린다. 이는 ‘국사=국민 국가사’의 슬픈 운명이기도 하다.
  ‘여러 역사’ ‘작은 역사’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인간의 역사는 국사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여러 차원과 영역의 역사가 인간을 형성하고 또 인간이 그런 역사를 만들어간다. 둘째,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여러 역사’와 ‘작은 역사’는 자칫 권력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국사의 횡포를 막아낼 댐이나 저수지가 된다.
  ‘너는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나대로 생각할 테니!’ 하는 태도는 역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제일 저급한 태도다. 역사학은 ‘원래 사람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 거기서 출발해 사실을 탐구하면서 ‘아! 저 사람은 저래서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해가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탐구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를 증진시킨다. 그것은 자기-이해의 출발이며, 소통-공감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역사 ‘대중’에서 역사 ‘주체’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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