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응/ 영어영문학과 교수

  해적학술지 ‘와셋’에 관한 보도는 대학과 학문장에 어떠한 물음을 던지는가. 학술지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나, ‘철저한 관리’같은 즉각적 대답은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들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가짜 학회라고? 뭐가 어때서?

 

고부응/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 글을 읽을 마음이 있다면 <뉴스타파>가 보도한 ‘가짜학문’ 제조 공장의 비밀(2018.7.19)을 우선 보시기 바란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공중파 방송에서 별 재미를 못 주고 있는 요즘 진짜 웃기는 코미디가 대안 방송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이 보도는 입증한다. 이 보도는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 보도, 진짜 웃긴다! 안 보셨으면 꼭 보시라. 그 보도를 보지 않으셨으면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제발!

  이 글은 <뉴스타파>가 가짜라고 비난하는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이라는 학문 사업체를 위한 글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학문이나 대학에 대해서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 의견이 이 글의 의견과 같다면 칭찬을 부탁한다. 다르다면 반론을 해보시라. 칭찬이나 반론의 방식은 <대학원신문> 기고일 수도 있고 대학본부나 대학원 총학생회 주최의 토론회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을 이끌어가는 이사장이나 총장의 칭찬이나 반론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연구 관리 책임자인 연구지원처장의 의견도 좋겠다. 대학원생이나 학부생의 의견도 좋다.

학회가 가짜라니!

  <뉴스타파>는 와셋이라는 사업체가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가짜라는 이유로 발표 신청 논문에 대한 검증 과정이 없다는 것을 꼽는다. 가짜 논문에 최우수 논문상을 수여하기도 한다고 비난한다. <뉴스타파>팀이 이 학술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논문 작성 프로그램을 돌려 1초 만에 만든 논문을 제출해 이 학술대회에 참가한 것을 보면 이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논문 작성 프로그램으로 만든 논문이 SCI급 학술지에 게재된 적도 있다고 한다! SCI급 논문이 1초면 완성된다. 이용해 보시라고 권한다.) <뉴스타파>팀은 학제간 연구나 융합이라는 말을 모르는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학술대회를 하는 것을 전문성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뉴스타파> 보도는 이 가짜 학회에 한국의 명문대 연구진이 참가하고 그 참가비용을 정부나 대학의 연구비에서 지출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뉴스타파>에 이어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연루된 교수와 대학원생들, 억울하지만 진짜 쪽팔릴 것 같다. 안타깝다.

  <뉴스타파> 보도는 와셋과 같은 가짜 학회가 학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공적 학술 기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노벨상 수상자 등 학문의 권위자들의 입을 빌어 이런 가짜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연구자들의 학자적 자질을 문제 삼기도 한다. 양적 기준에 의해 평가받는 현재의 학문 평가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며 질적 제고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진짜 학회는 따로 있나?

  자정 능력이 없는 대학을 대신해 <뉴스타파>가 옳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따져 보자. 와셋과 같은 사업체를 가짜 학회라고, 와셋이 발간하는 학술지를 가짜 학술지라고 단정할 수 있다면 소위 ‘진짜’ 학회나 학술지는 정말로 와셋과 다른가? 발표 신청 논문에 대한 와셋의 심사 과정이 부실하다고? 나는 소위 ‘진짜’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수많은 학회나 단체가 발표 신청 논문을 제대로 검증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학술대회 발표용 논문은 까다로운 심사 과정 없이 통과된다. 학술대회 주최 측이 하는 일이라면 주제에 따라 학술대회 프로그램 일정과 시간표를 짜는 정도다. 와셋 학술대회에서 활기찬 지적 토론이 없다고? 학술대회에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특히나 규모가 큰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학술대회에서 발표 논문에 대한 진지한 논평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큰 규모의 학술대회에는 진지한 학술 토론을 가질만한 시간이 아예 없다. 시간이 있더라도 발표자를 우쭐하게 하는 칭찬이나 맥락이 닿지 않는 질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와셋과 같은 사업체의 학술지 관리가 허술하다고? 와셋이 운영하는 학술지는 한국의 많은 학회지가 기를 쓰고 한 자리 차지하려는 Scopus에 등재된 적도 있다. 브라질의 교육부 산하 기관이 작성한 추천 학술지 목록에는 와셋 학술지가 들어 있다는 말도 있다.

 

 

 

어차피 다 돈벌이인데

  와셋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영리를 목적으로 학문을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학문이 영리에 이용되면 학문의 본질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비난이다. 학문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 뭐가 문제인데? 대학 교육 자체가 상품이고 지식 자체가 상품이지 않은가? 교수는 교육 상품의 생산자이고 판매자이며 학생은 구매자이지 않은가? 법인이사회는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이사회와 같고 총장은 대학이라는 기업의 CEO이지 않은가? 상품성이 있는 지식은 생산을 독려해야 하지만 수익과 관련 없는 지식은 모양을 갖추기 위해 판매대에 전시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지식 상품의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와셋을 비난하는 것은 대학이라는 지식 사업체에 속한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나는 말이다. 와셋의 진짜 잘못은 기득권이 있는 기존의 학문 조직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와셋이 학술대회나 학술 지식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기존의 학술 조직을 끌어들였어야 했다. 국제회의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컨벤션기획사는 학술회의를 이용해 수익을 얻지만 누구도 이런 사업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사업체는 전면에 공식적인 학술조직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컨벤션기획사는 여러 학회가 큰 규모의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려면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마운 존재가 돼 있다.

  SCI니 SSCI니 A&HCI니 하는 JCR(Journal Citation Reports) 목록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지식정보회사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ytics)는 비난 받기는커녕 학문을 데이터베이스로 체계화하고 표준화시켰다는 칭찬을 받는다. 중앙대의 경우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없었다면 임용, 승진, 성과급 연봉제 등 교수를 관리하는 현재의 제도를 만들지도 못하고 이를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게재료나 구독료, 또는 개별 논문 판매로 수익을 확보하는 학술지들이 학문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학술지들은 돈을 더 많이 받을수록 권위를 더 인정받는다. 일반적인 저명 SCI 학술지들이 대개 2~3백만 원 정도의 게재료를 요구하지만 최고의 학술지로 치는 <Nature>는 게재료가 5백만 원이 넘는다. 학문의 공적 역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학술지 논문들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런 말은 들을 필요 없는 헛소리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술지나 학술 논문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공짜로 얻는 물건은 가치가 없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상품을 얻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좋은 물건이 비싸듯이 좋은 지식은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와셋이 유명 관광 도시에서 학술대회를 여는 것 역시 다른 학회와 차이가 없다. 해외 학회에 가는 중요 목적이 관광이지 않은가? 학문을 이용해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와셋이나 컨벤션기획사, 정보회사, 상업적 학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 자체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학문 사업을 창업해 보시지요

  정부는 와셋, OMICS, SCIRP 등 해적 학회라고 의심되는 조직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학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연구비 회수 조치나 징계가 있을 것이란 말도 있다. 안됐지만 언론에서 가짜라고 규정한 이상 와셋이 진짜 학회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 와셋이 잘한다고 악다구니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와셋이 없어져도 비슷한 학문 사업체는 여전히 있고 또 계속 생겨날 것이다. 지금 세상은 모든 물건, 모든 관계, 모든 생각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세상 아닌가? 상품이 되기를 거부해왔던 재화에 지식도 들어가겠지만 이제는 지식의 상품성을 의심할 자 아무도 없다. 자본주의의 완성 단계에 등장한 신상품인 지식, 여기에 자본주의의 마지막 축복이 있다. 이제 지식 사업은 전도유망한 사업이 됐다. 석사가 되고 박사가 돼도 마땅한 자리 하나 얻기 쉽지 않을 것 같은 대학원생 여러분께 권한다. 이 학문 사업을 창업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어째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럼 제대로 된 말 좀 해 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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