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미술학부 한국화전공 교수

[교수칼럼]

말없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김선두 / 미술학부 한국화전공 교수

 
  작가로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예술이 쓸모없음의 쓸모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작품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현실에서 작가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작가로서 살아남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적인 고민보다는 작업에 대한 열정과 엄격함으로 무장하고 험한 길을 헤쳐 나가야한다. 혼돈의 대학 시절 작업의 길을 열어주신 선생님이 계신다. 산동 선생이다. 선생과의 첫 만남은 내가 대학 1학년이었던 1978년 여름방학이었다. 어느 무더운 오후 이마가 시원하게 넓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날카로운 눈매의 어떤 분이 학생들을 앞에 놓고 열변을 토하고 계셨다. 나와 선생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창작의 열기가 창밖의 지열만큼이나 뜨거운 가운데 이뤄졌다.
  선생은 엄하셨다. 제자의 작품을 평가할 땐 더욱 그랬다. 학부 4년 대학원 2년을 합쳐 도합 6년 동안 한 번도 칭찬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2학년 봄이었다. 학교 뒷산을 열심히 그려 선생께 보여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 그림을 완성했는데 봐 주십시오”했다가 “야! 녀석아 그림에 완성이 어디 있어! 작가는 자기 작품에 만족할 수 없는 존재야. 만족한다면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 나는 작품을 완성하면 그 작품은 곧 잊어버린다”고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예술가는 완성이 없기에 어느 한 세계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 불완전하기에 완전을 향해 간다는 것, 미완성은 모든 완성의 필요조건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선생의 지도 방식은 늘 이러했다. 추상같은 엄한 평가는 저 바닥에 잠자는 오기와 투지를 불러 일으켜 준 쓴 약이었다.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압박했지만 한편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로마 검투사처럼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됐다. 제자를 칭찬하는 일이 있다면 아무 말씀이 없는 것이 칭찬이었다. 희미하게라도 고개를 끄덕여주면 극찬이었다. 엄했지만 당신 마음에 든 제자의 작품에 대한 칭찬은 다른 선생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선생이 제자에게 혹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졸업 후 10년이 지난 어느 후배의 개인전 뒷풀이에서 들었다. 화단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엄존하는 정글과 같은 곳인데 사자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듯 하지 않으면 제자가 화단에 나왔을 때의 시련과 고비를 넘지 못하고 붓을 꺾는다는 것이었다.
  “참다운 스승은 입 벌려 가르치지 않지만 슬기로운 제자들은 그의 곁에서 늘 새롭게 배운다”는 말이 있다. 참다운 예술가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신 선생의 가르침은 아직도 나와 나의 수많은 제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해 유효하다. 1999년 그 혹독한 병마를 이기고 선생께서 돌아오신 것은 우리 후학들에게 다 못 전한 사랑과 가르침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험한 예술의 정글에서 자신의 예술의 거듭남을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는 제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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