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 이해 ④ 정신건강의 이론과 실제

  사회의 점진적 발전은 일상의 편리함을 선물하지만, 우리들의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간다. 다양한 자극들은 우리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심리적·물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해, 정신건강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이 기획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관해 다양한 학문적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정신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지경주 / 이야기&드라마치료 연구소 소장


  필자는 정신건강증진, 정신장애예방, 인권 보호 및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포함해, 개인과 사회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이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구성돼 있다. 필자의 경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서 이야기치료와 드라마치료라는 비약물(非藥物) 접근을 시도한다.


정신건강 이론의 역할

  정신건강과 관련된 주요 이론들을 나열해보면 의학적 모델 혹은 질병 모델이라고 부르는 생리학적 모델, 정신분석 모델, 행동주의심리학적 모델, 통계학적 모델, 인본주의심리학적 모델, 실존주의심리학적 모델, 대인관계 모델, 사회문화적 모델이 있다. 이러한 이론은 내담자(來談者)가 처한 독특한 상황에 맞춰 내담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최선의 접근 방법을 찾는 지침이 된다.

  예를 들어 드라마치료 진행 전, 다른 전문가가 작성한 생리학적 모델이나 정신분석 모델에 입각한 내담자의 정보를 참고할 수 있다. 통계학적 모델을 고려해 진단명을 참고하면 내담자의 독특한 언행을 이해하고 돌발적인 변수를 다루는데 도움이 된다. 드라마치료를 진행하면서 인본주의심리학 모델을 고려하면, 비참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담자에게 안전하게 실제 경험을 인지하고, 현실 그대로의 자기를 지각하고, 가상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해, 자신의 가치를 충족시키도록 진행할 수도 있다. 실존주의심리학 모델을 고려하면, 힘든 삶을 살아가는 내담자가 모순투성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진행할 수도 있다. 대인관계 모델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대인관계로 상처받은 내담자에게 원활한 의사소통과 바람직한 대인관계를 연습해보도록 할 수 있다. 사회문화적 모델을 고려하면, 내담자가 속한 환경문제를 탐색하고, 개선 방법을 찾도록 진행할 수도 있다. 이야기치료는 내담자가 다루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해체해보고, 재구성해보고,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최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지속적으로 드라마치료를 경험 중인 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의 경우, 환자 본인의 욕구와 인본주의심리학 모델을 반영한 치료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약물치료와 상담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드라마치료를 통해 말하면서 조금씩 문제를 풀어가는 것 같다는 내담자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치료진들의 의견을 반영해, 최선의 접근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론은 실제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는데 영향을 준다. 실제적인 접근은 이론을 검증하고 보완하는데 영향을 준다. 좀 더 검증되고 보완된 이론은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한 실제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는데 영향을 준다. 이론과 실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호보완 관계다. 키이스 스타노비치(K.Stanovich)의 《심리학의 오해》(제10판, 2013) 제2장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론의 평가를 자주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이론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일반적 오해를 불식시켜야만 하겠다. 그 오해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니, 이것은 단지 이론일 뿐이잖아.”라는 표현에 반영돼 있다. 이 표현은 일반인들이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흔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 단순한 추측, 또는 육감 등을 의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과학에서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과학자들이 이론을 지칭할 때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신건강 이론은 정신건강 문제에 개입하기 위한 치료(실제)적 토대이면서,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한 예방(실제)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정신건강 증진과 유지를 위해, 검증된 이론과 실제를 선별하고 전달하는 것은 전문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현실과 과제

  매년 통계청에서 발행하는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소개된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보면, 한국은 OECD 선진국들과 비교해 우울감 경험률이 높은 편이다. 행복지수 1위 스위스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사회적지지, 생애선택자유, 부패인식 등의 많은 문제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울감 면에서는 스위스 4.0%, 29개국 평균 10.7%임에 비해 한국은 13.2%를 기록했다. 자신감 상실 면으로는 스위스 1.7%, 29개국 평균 7.3%이지만, 한국은 11.1%를 나타내며 더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의 이런 통계 결과는 지나친 경쟁, 적성·소질·역량을 고려하지 않는 비자발적인 직업선택, 사회전반에 만연한 부패의 영향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개인과 집단의 정신건강 문제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의 손실과 연결된다.

 

 
 

  내담자와 가족에 한정된 예방과 치료를 소극적인 개입에 가깝다고 가정한다면, 적극적인 개입에 해당하는 것은 사회전반에 노출된 정신건강의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기 위해 정신건강 관련 정책에 의견을 모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 때, 내담자 혹은 서비스 사용자(Service User)가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보다 의미 있고 적극적인 개입이 되리라 생각한다.

  2002년 어느 정신과병동에 근무하면서, 한시적이었지만 월드컵 대회가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체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정신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종사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실제’이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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