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_정신건강의 이해]
사회의 점진적 발전은 일상의 편리함을 선물하지만, 우리들의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간다. 다양한 자극들은 우리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심리적·물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해, 정신건강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이 기획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관해 다양한 학문적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현대인의 정신건강 ② 정신의학 영역: 통섭으로 ③ 신경미학: 새로운 패러다임 ④ 정신건강의 이론과 실제

 

 

신경미학, 새로운 패러다임


손정우 / 충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추구할까. 또한, 우리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체험할까. 미적 경험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은 선사시대부터 늘 지속돼 왔다. 미적 경험의 실체에 대한 탐구는 주로 예술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진행돼 왔으나, 최근 급속히 성장한 신경과학 분야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연구 영역을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이라고 부른다.


신경미학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미적 경험과 뇌 반응 간의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은 세미르 제키(S.Zeki)다. 그는 뇌의 시각 정보 처리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신경미학 연구를 시작했으며 몬드리안(P.Mondrian), 키네틱 아트, 야수주의, 모네(C.Monet) 등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미적 특성과 그 특성들이 일으키는 뇌 반응에 대한 결과들을 발표했다. 신경미학 연구의 초기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시각 자극의 연구에 기반한 신경미학 연구 결과들이 많이 보고됐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이후 연구들의 전개에 대해, 거울 뉴런(Mirror Neuron)을 발견한 연구팀의 일원인 빗토리오 갈레세(V.Gallese)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아름다움과 보상 추구: 미적 경험은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인 ‘보상 추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카와바타(H.Kawabata)와 제키는 피험자가 미술 작품에 대한 아름다움을 평가할 때의 뇌를 촬영했는데, 작품을 ‘아름답다’고 평가할 경우, 보상을 획득했을 때 활성화 되는 영역인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Cortex)이 활성화 됐다.

  ▲ 아름다움과 시각-운동 통합처리: 우리는 왜 고흐(V.Gogh)나 훈데르트바서(F.Hundertwasser)의 작품을 좋아하는가. 이들의 작품은 작품 속 사물이나 배경의 경계면이 곡선으로 처리됐고 뚜렷하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Soft-edge Painting’라고 한다. 컵칙(C.Cupchik) 등은 Soft-edge Painting을 볼 때 뇌가 어떻게 활성화 되는지를 연구했는데, 이런 그림을 감상할 때 시각-운동 통합 처리와 관련이 있는 상두정소엽(Superior Parietal Lobule)이 활성화 됐다.

  ▲ 아름다움과 체화: 미켈란젤로(M.Buonarroti)의 노예상 작품들을 볼 때 느껴지는 노예들의 억눌림, 고통 등이 그토록 생생한 이유는,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공감 혹은 남의 움직임이 마치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체험되는 것, 즉 내가 그 작품을 ‘체화(Embodiment)’해 느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체화의 관점에서 신경미학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앞서 언급한 거울 뉴런 연구팀이다. 이들은 피험자들에게 르네상스 시대 석상들 사진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게 하면서 뇌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전운동영역(Premotor Area)이 두드러지게 활성화됐다. 원래 이 영역은 운동을 계획하고 조정하는데 관련되는 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자기-개념(Self-Concept)’, ‘자기-행위(Self-Agency)’ 등의 핵심 부위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즉, 우리가 이런 작품을 감상할 때는 석상들의 자세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일종의 ‘행동적 공명(Motor Resonance)’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 아름다움과 정서: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때 혹은 어떤 물건의 디자인을 평가할 때, 명확한 판단이 서기 전부터 은근히 끌리거나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반면 유명한 추상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작품을 보는 순간부터 묘한 기분,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 작품 감상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처럼 미적 감정과 관련된 연구는 최근 가장 자주 연구되는 주제 중 하나다. 이 연구 주제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위는 인간의 감정 처리 관련 영역인 뇌섬엽(Insula), 편도(Amygdala) 등이다. 김채연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 사람들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때 뇌섬엽,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등이 활성화되며, 또한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즐거운 감정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의학 영역에서의 신경미학 연구, 자폐 스펙트럼 장애


  정신의학 영역에서도 신경미학 연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심리적 치료를 위해 도입된 음악 치료, 미술 치료, 무용 치료 등의 효과를 보다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신경미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는 특정 정신질환에서 보이는 미적 경험의 독특성에 대한 연구 분야다. 그 대표적인 질환 중의 하나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이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보소(M.Boso) 등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의 뇌에 ‘약한 중앙 응집(Weak Central Coherence)’ 때문이라고 했다. 뇌 내의 부위간 연결 문제가 중앙 응집 문제를 발생시켜 전체 통합 능력이 결여되는 대신 ‘영역-특정 지식(Domain-Specific Knowledge)’이 증가해 이러한 우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번트 특성을 보이지 않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들이 미적 경험을 할 때의 뇌 활성화 패턴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을 것인가. 필자의 연구진은 이에 착안해 서번트 특성을 보이지 않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와 일반인 대조군에게 아름다운 풍경 작품 및 프랙탈 작품을 보여 주고 미적 판단을 하게 하면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에서는 상전두회(Superior Frontal Gyrus) 등 뇌의 전두엽 영역이 상대적으로 활성화가 떨어진 반면 두정-측두 영역(Temporoparietal Area) 및 소뇌, 뇌섬엽 등은 상대적으로 더 활성화 됐다. 즉, 서번트 특성이 없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가 미적 체험을 할 때도 작품 속 자극을 물리적, 시공간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 것이다.

[그림설명] 자폐증 아동인 아이리스 그레이스 홀름쇼우가 그린 추상화의 일부.
[그림설명] 자폐증 아동인 아이리스 그레이스 홀름쇼우가 그린 추상화의 일부.

 

[그림설명]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에게 풍경 작품의 아름다움을 판단하게 했을 때 상대적으로 활성화를 보인 뇌 부위. 두정-측두 영역, 소뇌, 뇌섬엽 등이 활성화 됐다.
[그림설명]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에게 풍경 작품의 아름다움을 판단하게 했을 때 상대적으로 활성화를 보인 뇌 부위. 두정-측두 영역, 소뇌, 뇌섬엽 등이 활성화 됐다.

 

  신경미학 연구는 인간의 미적 체험에 대한 합리적 설명, 정신의학 영역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미적 경험 현상들이나 예술 치료 효과 등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하는 연구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미적 체험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 또한 미적 체험이라는 인간의 가장 심오하고 주관적인 경험을 몇몇 뇌 영역의 활성화만으로 환원해서 설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신경미학 연구는 그 역사가 매우 짧은 편이며, 이제 비로소 연구 방법론 및 연구의 추진 방향에 대해 모색하고 있는 학문 분야다. 향후 전개될 인문학, 예술 분야와 신경미학 분야 간의 성공적인 통섭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