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점진적 발전은 일상의 편리함을 선물하지만, 우리들의 정신은 점점 지쳐만 간다. 다양한 자극들은 우리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고, 심리적·물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해, 정신건강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이 기획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관해 다양한 학문적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현대인의 정신건강 ② 정신의학 영역: 통섭으로 ③ 신경미학: 새로운 패러다임 ④ 정신건강의 이론과 실제

 

정신의학 영역, 통섭으로

조수철 / 국군수도병원 정신건강증진센터장


  최근 통섭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최재천 등이 번역함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했다. ‘Consilience’라는 단어는 윌리엄 휴얼(W.Whewell)이 그의 저서 《귀납적 과학의 철학》(1840)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 후 에드워드 윌슨(E.Wilson이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1998)라는 책을 발간했고, 이 책의 번역자 최재천·장대익이 《통섭-지식의 대통합》이라고 번역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 분야의 학문을 통합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질문이 야기된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의 목적은 ‘보람된 인간의 삶의 성취’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보람된 인간의 삶의 실천’을 위해서 모든 학문 간의 벽을 없애고 서로 협조해 하나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보람된 인간의 삶’이란 인간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하며 이것은 정신의학에서 ‘Bio-Psycho-Socio-Spiritual Model’의 형태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신체적(물질적)삶, 정신적 삶, 사회적 삶 그리고 영적인 삶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과정을 의미한다. 어떤 학문이나 직업도 이러한 모델에 의해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통섭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의 통섭적 접근


  통섭은 의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의 신체적 질환, 정신적 질환, 사회적 질환 그리고 영적 질환을 이해하고 치료해 줘야 한다. 신체적인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신체적인 면만 보아서는 ‘인간 전체’로 보는 자세가 아니며, 정신적-사회적-영적인 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이 원만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분야 간의 상호작용이 원활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다학제간 상호작용(Multidisciplinary Interaction)은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변화는 전혀 없이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간학제간 상호작용(Interdisciplinary Interaction)은 화학적 반응으로 일부 자신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상호작용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범학제간 상호작용(Transdisciplinary Interaction)은 생물학적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완전한 변화를 전제로 한 상호작용을 의미하며, 진정한 의미의 통섭적 상호작용이다. 즉 학문 간의 벽을 얼마나 완전하게 뛰어 넘을 수 있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학문과 학문간, 분야와 분야 간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통섭의 개념은 정신의학의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정신의학의 분야에서도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영적 모델(Bio-Psycho-Socio-Spiritual Model)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역사적-과학적-예술적-철학적 접근이 시도돼야 한다.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영적 모델

 

  생물학적 접근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뇌의 기질적인 병변으로 보는 견해로 뇌영상(Neuroimaging), 유전학(Genetics), 생물정신의학(Biological Psychiatry),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약물학(Psychopharmacology) 등을 통해 접근하는 방법이다. 치료적으로는 약물치료(Pharmacotherapy), 광치료(Light therapy), 전기치료(EST) 등이 있다.

  심리적 접근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융의 분석심리학이 대표적인 학파인데 정신치료 및 정신분석을 사용해 치료한다. 기본적인 전제는 치료자가 자신의 정신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깊이만큼 타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다. 정신내적 부조화를 고쳐줘 원래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된다. 행동-인지 학파도 이에 속한다. 이들은 행동치료와 인지치료를 주로 사용하는 학파이다. 행동치료는 일차적인 치료의 대상을 행동으로 보는 관점이며, 인지치료는 일차적인 치료의 대상을 사고(인지)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감정-행동의 조화로움을 찾아주는 과정이 된다.

  세 번째의 사회적 접근에는 대인관계학파와 사회학파가 이에 속한다. 이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대인관계의 문제로 보는 학파들로서 치료법으로는 가족치료, 집단치료, 사회성 증진치료(Social Skill Training) 등을 사용한다.

  네 번째의 영적 접근은 종교적, 문학적, 철학적 또는 예술적 접근을 의미한다. 이들 분야에서는 인간의 영성을 다룬다. 이에 대한 치료로는 종교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정신극(Psychodrama), 독서치료, 이야기 치료, 문학치료 등이 있다.


이상적인 통섭적 모델


  위와 같은 치료를 시행하기 전에 기본적으로는 역사적-과학적-예술적-철학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먼저, 역사적 관점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 길게 보는 자세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밟아 왔는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이 역사적 자세에 속한다. 즉 과거-현재-미래를 하나의 축으로 두고 평가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과학적 관점이다. 이것은 수집한 정보에 대한 정확한 판단, 개인적인 편견이 배제된 객관적인 자세를 뜻한다. 즉 연구를 하는 모든 과정이 이에 해당된다. 가설을 세우는 과정,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 정신 병리를 평가하는 과정,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 토의를 하는 과정, 결론을 내리는 과정, 향후의 연구를 계획하는 과정 등 모든 과정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세 번째는 예술적인 관점이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진선미(眞善美)를 발견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는 철학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깨닫고 이에 입각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정신의학에서 역사적으로 제시돼 온 모델과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이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이라 제시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가장 통섭적인 모델은 ‘신체-정신-사회(Bio-Psycho-Social Model)’이다. 그러나 이런 모델로는 인간의 정신병리에 대해 통섭적인 모델을 성취할 수 없다.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영적 모델’로 나아가야 통섭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한 개인 치료자가 모든 치료법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관심 분야에는 전문가가 돼야 하고, 인접 분야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일반화된 전문가(General Specialist) 또는 전문화된 일반가(Special Generalist)가 돼야 정신의학 분야에서 통섭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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