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조 / 사회학과 석사과정

[원우발언]

혐오의 시대, 반(反)지성주의

정성조 / 사회학과 석사과정

 혐오는 본능적인 감정에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많은 경우 지식의 언어에 기대고 있다. 이를테면 이주민의 강력범죄가 매우 심각하다거나, 문란한 동성애자가 사회 질서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그들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식이다. 현실을 왜곡하는 많은 혐오는 ‘그들’을 혐오해도 마땅한 존재로 이미 단언하면서 사후적으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를 동원해낸다. 지식의 이름으로 둔갑한 혐오표현은 끊임없이 자기복제하며 무수한 억견을 진실인 양 유통시킨다. 과연 ‘그들’은 정말 혐오해야 마땅한 자들인가.

 이른바 혐오의 시대다. 김치녀, 맘충 같은 표현은 물론이고 동성애자,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편견과 차별이 노골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이 조금은 부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마치 이전에는 그러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의 시대라는 담론은 여태껏 은폐돼왔던 기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이 반동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현상을 일컫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혐오가 노골적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너는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실질적으로 경제위기는 여성에게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옴에도 남성은 ‘가장의 위기’ ‘남성성의 위기’ 등으로 격려의 대상이 되는 반면, 여성은 맘충이나 김치녀로 호명되는 현상은 이미 정치적 지형이 기울어진 상태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혐오는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그들’에 대한 기존 질서의 반동으로서 나타난다.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우리’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그들’을 타자화하는 혐오의 이미지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는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기승을 부리는 증오 정치를 비웃을 것도 없이 우리 사회도 이미 오랫동안 좌파,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효과적으로 배제하면서 유지돼 오지 않았던가. 국가를 전복하려는 ‘빨갱이’, 가정과 국가를 파괴하는 ‘꼴페미’와 ‘종북게이’라는 낙인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면서 국민과 국민이 아닌 자를 나누고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든다. 그들은 과연 무엇에 위협이 되는가. 반지성주의와 공명하는 혐오의 정치는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오롯이 ‘그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편견과 차별을 영속화할 뿐이다.

 혐오의 시대에 비판적 지식의 개입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지성의 장이라는 대학은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우울하게도 세월호 희생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여성, 중국인 등을 향한 혐오 발언이 강단에서 나오며, 심지어 “정치국제학과의 수업인 점을 고려하면 정치적 이슈를 다룰 수 있고 교권 보호의 측면도 있다”는 이유로 경징계 처분된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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