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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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학술
21세기 비평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이명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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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승인 2016.09.06  17: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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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비평의 얼굴 ① 21세기 비평, 무엇이 문제인가

21세기에 이르러 비평은 ‘대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양태를 보인다. 대중의 가능성을 끌어안으며 ‘비평가’라는 이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또한, 21세기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대중’ ‘예술’ ‘작가’ ‘권력’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 전환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 시대 비평의 위기와 존재 의미, 더 나아가 새로운 ‘비평의 시대’에 비평가는 어떤 책무를 지게 되는지, 비평의 새로운 활로는 있는지를 모색해 보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21세기 비평, 무엇이 문제인가 ② 비평과 권력 ③ 다원예술 비평은 가능한가 ④ 영화비평의 새로운 가능성

 

21세기 비평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명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비평이 제도화된 것은 19세기였다. 그것은 시민혁명 이후 교양이 제도화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문학예술 분야에서의 정전(canon)이 확립되었고, 이에 대한 이해와 감상, 비평과 분석 기술도 체계화되었다. 저널리즘의 대중화는 대학과 공민교육을 중심으로 유통되던 문예비평을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품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는 식의 의미 부여가 가능했던 것은 비유하자면 모더니티에 대한 미적 대응으로서의 모더니즘적 열광이었다.


모더니즘적 열광은 모더니티의 여러 측면들 즉 국민국가·자본제 생산양식·국민주의적 정념에 조응하기도, 반발하기도 하면서 문예비평을 여러 담론 가운데 최상의 것으로 혹은 보편 담론의 수준으로 승격시켰다. 최상의 담론 혹은 보편 담론으로서의 비평의 생산 주체는 일군의 시민적 지식인·엘리트들이었는데, 시민계급 안에서의 지식인의 분화를 반영하듯, 체제 담론과 반체제 담론의 혼재 아래서 20세기 문예비평은 개화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20세기 문학과 비평이 정념의 영역에서 네이션(nation)의 형성과 동일시, 일체화의 몫을 감당하는 체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설사 작품과 비평이 비체제적이거나 반체제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독자들의 수용과정에서 산출되는 국민적·민족적 공동체 의식의 형성은 근대문학을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핵심적 동인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테리 이글턴은 근대문학과 이에 대한 비평적 담론의 규범 또는 해석 척도로서 제시되는 진리, 덕(가치), 객관성 등의 척도들이 1960년대 이후로는 그 가치가 격하되었지만 시민적 정의(justice) 감각과 연관된다는 점을 들어,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위반/전복적 속성이 있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그는 근대 비평/미학의 지배적 감상 태도의 하나인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 역시, 단순히 예술작품을 관조적으로 이해하자는 주장에 멈추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이는 물질적 이해관계만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적 질서에 대한 거부와 상대화를 내포한 것으로, 오히려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한 저항적 태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환기될 필요가 있는 것은 19세기를 기점으로 제도화되고 양식화된 길을 걷게 된 문학예술과 문예비평은 그 담론 출현의 역사적 맥락 탓에 단순하게 미적 향수의 차원만으로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문학예술은 체제를 미적으로 반영/표현하는 양식이었고, 문예비평은 해석과 의미화, 담론적 개입을 통해서 대안적 세계 전망을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정전화된 문학예술과 이에 대한 비평 담론의 또 다른 제도화가 명백한 계급적·계층적·젠더적 분리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부르주아 엘리트 지식인들이 생산하고 비평하는 것이었으며, 부르주아적 교양과 거리를 둔 노동계급의 경험과 의미화를 무시했으며, 젠더적 차원에서는 여성의 목소리를 배제했다. 공평무사함을 강조하는 비평적 담론이 실제로는 권위적·억압적·편파적·식민주의적일 수 있다는 반성에서 1960년대 이후의 비평은 과거의 경향으로부터 일변했다.

   
 

 

문화, 비평적 대상이 되다


문화연구는 ‘의미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대중문화와 일상을 적극적으로 비평적 대상으로 삼아 전개되었다. 문화라는 개념이 ‘의미화된 삶의 총체’로서 확대·적용되자, 대중들의 일상과 계급·계층적 특이성, 이들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의 문화적 실천 행위는 분석과 비평의 핵심적 텍스트로 기능하게 되었다. 문학비평가들 역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문학에서 문화로, 작품에서 텍스트로, 진리/객관성에서 의미화/이론적 실천으로 그 비평적 척도를 이동시켰다. 정전 개념의 해체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문예비평은 문화이론이나 문화비평으로 재빠르게 대체되었다. 거대담론·리얼리티·재현·총체성 등의 비평적 규범이 형해화된 자리에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 “무의식은 언어의 형태로 구조화된다” “글쓰기의 즐거움” 등의 포스트 구조주의적 비평적 인식론과 태도가 1960년대 이후의 반문화 운동의 열기와 결합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첨예화되지만 현실 개입과 변혁의 실천전략으로서는 사실상 냉담해지는 비평의 다원화와 과장된 포스트 담론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서구에서의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1990년대 이후의 비평적 언술은 ‘언어의 감옥 안에서의 몸부림’ 비슷한 것으로 변화해 갔다. 비평적 담론의 차원에서는 발군의 이론적 역량과 수사학을 뽐내는 전문가들이 늘어났지만, 그것이 제아무리 전복적·전위적·변혁적 문제의식과 수사학을 뿜어낸다고 할지라도 매체환경의 변화나 대중들의 비평에 대한 누적된 불신 등 여러 원인과 겹쳐지면서 비평이라는 언술 행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 지평은 사실상 붕괴되거나 희미해졌다.
그러나 비평 담론의 게토화를 전적으로 비평가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실 비평가 개인의 지적 성실성이나 이론적 무장과 무관하게, 현실과 비평적 공론장 전체가 구조적으로 더욱 큰 변화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구조적인 변화가 여러 형태의 비평을 둘러싼 종언 담론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비평 담론의 구조변화 요인


이 구조적 변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첫째, 그 지겹도록 반복되는 신자유주의 교설의 파괴력이다. “사회는 없다. 오직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식의 공동성(共同性)의 압살 및 이윤동기의 전면적 찬양과 구조화 메커니즘은 경제적 교환이나 축적 이외의 모든 것들을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켰다. 작품/텍스트/현실을 대상으로 ‘의미화 실천’을 수행하는 비평은 현실의 장에서 성가신 독백 정도로 간주되어 간단하게 배제된다.


둘째, “분석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라는 냉소주의의 만연도 한몫하고 있다. 정교하게 텍스트와 문화 분석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라는 반문의 힘이 이 시대에는 압도적으로 커졌다. 그것은 인류가 ‘언어’에 대해 지녀왔던 자못 끈질긴 마술적 믿음의 붕괴를 의미한다. 오늘날의 비평뿐만 아니라 언어 일반은 ‘진리’ ‘리얼리티’ ‘공동성’을 중계한다는 식의 초월성이 상실된, 단순한 정보교환의 도구처럼 간주되고 있다. 정치적 언어의 타락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소수집단의 신조어와 은어들은 풍자에서 출발하지만 절망으로 귀착되는 식으로, 의미를 냉소적으로 휘발시키는 기제로 전락하고 있다.


셋째, 비평의 척도 상실과 인터넷 및 SNS 기반의 미디어 진화 과정 역시 비평의 형태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요소다. 인터넷상의 유저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취향과 의미화 역량을 발산하고 있는데, 오늘날처럼 취향과 인식이 다원화되고 미분화되는 추세 속에서 이른바 전문직 비평가의 담론 역시 1/n 정도의 발화로 간주되고 무시되는 것이 당연시된다. 거꾸로 말하면, 21세기는 비평적 척도 구성의 불가능성을 비평가들 자신조차도 자인하고 있는 시대이다. 비평의 생산, 매개, 수용의 구조를 둘러싸고 있는 역할과 위상의 차이를 사이버스페이스는 완전히 해체시켜버렸다. 대중들 그 자신이 담론장의 전면에 등장하고, 그것을 전파·확산시키는 것이 기술적으로 용이해지는 유저의 시대에 비평가의 ‘해석 독점’이나 ‘담론의 권위’는 손쉽게 격파된다. 비평가들 자신도 언어 게임 속의 일개 행위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진정으로 염려해야 하는 것은 비평의 종언이 아니라 유토피아에 대한 세계 감각의 상실이다. 이것이 위기의 핵심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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