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발전의 썩은 동아줄

 

 법학관을 지나간 적이 있던 원우라면, ‘중앙대 발전을 위한 모임’이 붙인 대자보를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그들은 “학교의 삽질보다 더한 교협의 갑질”이 문제라며, “모교가 처해있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으로는 학교발전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어떤 위험성을 가지는가?


 ‘development’는 한국어로 ‘발전’ 또는 ‘개발’로 번역되고, 이론적으로 ‘근대화론’, 역사적으로 20세기 미국 헤게모니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며 패권을 잡았던 20세기 초반은, 공산주의 운동이 확산되고 제3세계에서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탄생했던 시기였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세계의 자유주의 질서를 ‘보호’하고자 했는데, 그때 중요하게 등장한 개념이 바로 발전이었다. 발전은 경제적으로 국민총생산(GNP)의 증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정체 확립, 사회적으로 시민사회(시장)의 성장을 의미했다. 발전은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에 의거하고, 실질적인 생활의 개선을 보증함으로써 모든 민족국가의 목표로 제시되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너무도 자명했는데, 발전의 최종 단계인 미국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발전 논리가 제3세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궁금하다면, 한국에서 1962-96년에 일곱 차례에 걸쳐 시행되었던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떠올리면 된다. 냉전 하의 분단국가라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 경제에 더욱 깊숙이 종속되면서, 한국은 ‘제3세계 발전 신화’를 이룬 그럴듯한 사례로 전시·선전되었다.

 하지만 미국을 모방한 세계 다수 지역은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정치 불안이 지속되었고 계급불평등이 확대되었는데, 미국의 지배력이 더 높은 국가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개발학자 맥마이클은 그의 저서 <거대한 역설>에서, 발전이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결과 빈곤이 심화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역사적으로 발전 담론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 국가 내겚물?간 계급 불평등과 인종적 계층화를 정당화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발전이라는 단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학평가 순위 상승이 ‘발전’인지, 발전을 지상 목표로 내세우며 양적 지표 성장에 매몰됨으로써 희석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광고되는 소수의 성공 뒤에 실패를 강요당한 다수의 목소리가 묻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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