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 / 사회학과 박사수료

 평가와 책임

이지원 / 사회학과 박사수료

  지난학기 처음 강단에 서면서 나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20여 년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역할과 상반되는, ‘강사’라는 역할이 그것이었다. 학생에서 강사로의 역할 이동은 단지 몸의 위치가 강의실 책상에서 강단으로 옮겨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아직 내 몸에 잘 맞지 않는 듯한 이 새로운 옷은 그에 걸맞는 책임을 요구했는데, 바로 학생들에 대한 ‘평가’였다. 학기말 채점을 끝낸 후에 나는 쉽사리 성적 입력창을 닫을 수 없었다. 상대평가 제도로 인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성적을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기는 성적이 누군가에게는 장학금 수혜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 다시 일상생활을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평가 결과를 모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한 가지였다.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거해 산출한 결과인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수를 받은 학생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의신청을 해올 것이고, 나는 그에 대해 충실하게 답변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강의평가를 통해 교차 평가를 해올 것이었다. 서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나는 어떤 ‘권위’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학생들이 자신들에 대한 평가 결과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제각기 사정들 속에서 서로 다른 학점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덜 미안해지고, 한 학기 동안 맡아온 수업에 대한 내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중앙대에 소속된 이래 요즘만큼 학교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도 드문 듯싶다. 09년에 이어 다시금 불거진 학사 구조조정, 전직 총장의 비리의혹과 검찰의 압수수색, 그리고 내 얼굴까지 민망하게 만든 막말 파문과 재단 이사장의 교체까지. 바람이 잠잠해질 만하면 더 큰 벼락이 몰아닥치는 형국이 벌써 60일 가량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항의성명서와 질의서가 수차례 쏟아졌고, 심지어 본부에 대한 사법적 고발까지 이루어졌지만, 변명이 아닌 충분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웠다. 사실 학교는 끊임없이 학생과 교수에 대해 평가와 책임을 요구해왔다.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받을 만한 자질이 있는지, 강사에게는 계속 강의를 할 만한 자질이 있는지, 교수에게는 연구비를 받을 만한 자질이 있는지 말이다. 평가를 통해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했다. 그렇다면 학교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지고, 상식을 벗어난 사건들에 여론의 비판이 들끓는 현 상황이 중앙대에 대한 작금의 ‘평가’라면, 학교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평가의 내용을 면면히 파악하여 사실관계를 밝히고 학내 구성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해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책임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고, 지금까지 학내 구성원들이 제기해 온 수많은 질의들에 대해 충실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사과나 역할에 대한 옷을 벗기 이전에, 평가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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