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 다큐멘터리 사진가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사진가 김지연이 찍은 정미소,  전북 김제면 이서(2001), 낙수삼거리(2001)
사진가 김지연이 찍은 정미소, 전북 김제면 이서(2001), 낙수삼거리(2001)

  김지연 사진가를 만나기 위해 서학동사진관을 찾았다. 전주 한옥마을 옆에 위치한 서학동 사진관은 김지연 사진가가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다. 사실 작업과 기획을 함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카이빙을 하는 그녀의 작업에서 보면 또 그리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연 사진가는 50대가 되어서야 사진을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지도, 다른 정규과정을 밟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사진은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작가의 뚝심이 담겨서일까, 그녀의 작업에는 소박한 정이 있고, 20대 못지않은 열정도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어떻게 작업을 하고 사진을 찍을까? 김지연 사진가의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사진을 굉장히 늦게 시작하셨네요.
동네에서 사진 강습을 하게 되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갑자기 사진을 배워야겠다 한 것은 아니었고 20대부터 강력한 욕구들이 있었어요.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발견하고 내 안에 있던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표현해야 효과적일까 등의 고민을 하며 서울로 사진을 배우러 다녔어요.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이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맞물려 표현된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뭔가가 발생하는 것 같진 않아요.

  -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작업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말씀드린 대로 늦게 작업을 시작하다 보니 삶의 이야기들에 착안하게 되었어요. 가령 정미소를 촬영하더라도 사진으로 완성도 있게 한다기보단 주변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제 작업이 사진으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보다 우리 시대는 농업이 중요한 시대였고 그 가치를 조망해보고자 했어요.

  - 그중에서도 왜 ‘정미소’를 촬영하셨나요?
정미소라는 가치는 우리 40-50대 이전 세대에게는 각별한 것 같아요. 정미소를 통해 쌀을 빻았고 쌀이 바로 화폐와 마찬가지였고 머슴에게 돈 대신 주기도 했지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쌀과 개념이 달라요. 정미소는 사회적 권력이면서 동시에 농업의 기반이었지요. 정미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농토의 크기에 따라 정미소의 크기도 다를 만큼 논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미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쌀을 먹고 있는 한 정미소가 사라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요. 마침 제가 주로 작업을 하던 2000년도에 정미소가 많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왜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차근차근 정리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 작업기간이 10년이나 되네요.
처음부터 10년을 찍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고향이 전남이다 보니 정미소가 눈에 자꾸 부딪혔어요. 2002년에 97개를 발표했고 그 후 전국적으로 촬영하며 약 5백 개를 찍고 모아뒀어요. 그 후에는 정미소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과연 10년 후에 정미소는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으로 계속 촬영했던 것 같아요. 사실 10년 동안 계속 이 작업만 한 것은 아니고 3-4년 하다 이와 연관된 다른 작업도 했어요. 촬영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한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다른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병행해서 작업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0년이 지났네요.

  - 제일 애틋한 작업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작가는 최근 작업이 가장 애틋한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최근 작업은 ‘낡은 방’이에요. 최근 작업을 시작하면 지난 작업은 조금씩 잊히는 것 같기도 해요. 일관된 흐름으로 맥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가 많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마지막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해요.
 

낡은 방(2012)
낡은 방(2012)


 서학동사진관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 ‘계남정미소’는 성공적이었다. 버려진 정미소 내부를 갤러리로 만들고 지역 주민들과 테마를 잡아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주민들에게 보자기를 나눠주고 본인만의 보따리를 싸보라는 전시가 세계 또 어디에 있을까?
  계남정미소때와 마찬가지로 ‘서학동사진관’ 역시 도전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쉬운 일이 없다. 주변의 지지도 받지만, 이유 없는 비난을 받기도 일수였다. 하지만 지역 기반 작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담겨서일까? 서학동사진관은 지방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진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서학동사진관 작은 마당이 과거 외할머니 뒤뜰과 닮았다. 시간을 모으고 기록하는 곳. 서학동사진관에는 사진전시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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