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문화심리학박사

세대별 게임 이해 : 재미와 불안의 경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제 게임은 가정, 학교, 버스, 전철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올해 1분기 2조 9천억 원의 매출액과 8천500억 원이 넘는 수출액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런 수출액은 문화콘텐츠 산업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대표 한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게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닐슨 코리아 클릭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게임 이용자 수는 2014년 6월 말 기준 2천1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용자당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62분으로 조사됐다. 또한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실시한 2013년 모바일인터넷 이용실태조사에 의하면, 남성 모바일기기 이용자의 74.3%, 여성 이용자의 69.5%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 나이별 모바일게임 이용률은 10대가 89.2%, 20대 84.7%, 30대 76.5%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40대와 50대도 각각 63.2%와 54.2%로 40~50대 중년층의 절반 이상이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은 어린아이부터 대학생까지 청소년 시기에 잠깐 즐기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남녀노소와 장소를 불문하는 대세 문화로 등극한 것이다.
  영화, TV, 록 음악,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적으로 급격한 문화변동은 세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현상은 동일한 문화적 활동이라도 세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게임도 세대별로 세분화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 이해가 가능해질 수 있고 소모적인 대결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게임이 대세가 되었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 변동을 읽는 것은 게임이 세대별로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해석되는지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 시기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컴퓨터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효율성과 생산성의 극대화는 예전보다 사람의 필요성이 현격하게 줄어 이른바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비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났는데, 이들이 그나마 즐길 수 있었던 값싼 놀이는 PC방, 즉 컴퓨터였다. 그리고 이 시기 싸고 오랫동안 놀 수 있는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와 같은 MMORPG 게임과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한 RTS 게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너도나도 PC방 창업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내가 게임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먹고살기는 하지만, 내 아이만큼은 게임보다 공부를 더 해서 안정된 직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 태어난 아이들, 대략 지금의 20대들은 부모들의 마음과는 다른 심리를 가지게 된다. 우선 이들 세대는 형제가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다수다. 그만큼 부모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위태로운 ‘집중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학교 공부는 물론 학원까지 다니다 보니 낮에 친구들과 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집에 와도 함께 놀 형제가 없는 이들에게 네트워크 PC 게임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 시기에 초등학생들을 사로잡은 온라인 게임은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게임들이었다. 이들에게 게임은 자신의 자율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자, 친구들과 사귀는 디지털 시대의 놀이터의 역할로 의식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심지어 부모에게까지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공간으로 말이다.

게임세대, 왜 두려워하는가?

  이런 기술의 변화는 2010년대를 전후하여 스마트 폰 환경으로 급격하게 바뀌게 된다.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스마트 기기는 또 다른 게임 환경을 제공했다. <앵그리버드>로 대표되는 모바일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모바일 게임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이전 시기의 게임들과 달랐다. 우선 조작이 매우 간편하고 게임 구조가 비교적 단순했다. 그래서 나타난 양상이 ‘국민게임’이다. 즉 유치원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같은 게임을 즐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게임의 순위는 어릴수록 잘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문화계승의 법칙이 더는 통하지 않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소셜 게임’의 등장이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따분한 시간을 보내거나, 기분전환 혹은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지인들과 선물을 하고, 내가 요즘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교의 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동안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지위 구분의 경계선은 점차로 희미해져 간다.
  불과 30년도 안 된 사이에 우리도 인식하지 못했던 인류사적 환경변화와 생활혁명이 나타났다. 그런 현상의 가운데에 바로 게임이 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게임이 이런 당황스러운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이런 변화들을 반영해주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게임의 시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 역시도 게임의 논리에서 찾아야 성공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페이스북을 타고 전 세계에 인기가 있는 ‘아이스 버킷’은 기부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재미’라는 요소를 부각함으로써 성공한 캠페인으로, 본질에서 게임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게임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엄마들은 더욱 그렇다. 불안의 극단적인 형태인 공포의 심리적 근원은 ‘알지 못함’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알지 못하는 대상은 그 자체로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수용성 여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데, 수용할 수 있는 무지는 바로 호기심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수용성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나이가 된다. 대략 35세 이후의 기성세대는 기술적 혁신에 대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인식한다. 즉, 그들에게 게임은 질서를 거스르는 존재인 것이다. 
  불안이라는 정서는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 현상이다. 왜냐하면, 불안은 불쾌감을 유발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업과 늘 함께한다. 아이가 엄마 젖 대신 낯선 이유식을 먹는 것이나, 비틀비틀하며 걷는 것을 연습하는 것 등 온통 세상을 산다는 것은 불안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세상이 바뀌다 보니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불안한 세상이 됐다. 이제 어른들 차례다. 불안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맞서서 이겨내는지 젊은 세대에게 몸으로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그 시작점에 게임이 버티고 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내가 가르쳐줄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중일 거야!!” 게임에 열광하는 초등학생 셋을 둔 아빠로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필자가 외우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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