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혜 / 한예종 영상이론학과 석사

절멸과 신발에 대한 기록
 

  프랑스계 유대인인 클로드 란즈만 감독이 만든 <쇼아>(1985)는 장작 9시간 30여 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유대인이 아니면 유대인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만큼 피해자로서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이 영화를 위해 11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1,000시간가량의 인터뷰를 필름에 담았다. 또한 그는 번제 혹은 희생양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홀로코스트라는 말 대신, 지상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인 쇼아(SHOAH)를 영화의 제목으로 택한다. 영화는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들에서부터 당시 방관자적 위치에 있었던 폴란드인들, 가해자인 나치에 속해있었던 이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인터뷰와 함께 수용소를 향했던 열차의 재연, 수용소와 가스실이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허허벌판이 된 폴란드의 지역들을 몽타주하는 것으로만 전개된다. <쇼아>에는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1955)에 등장하는 수용소의 끔찍한 기록사진들은 등장하지 않으며 사건에 관한 설명적 내레이션 또한 부재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 방식은 얼핏 클로드 란즈만이 사건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하지만 9시간 30여 분이라는 러닝타임과 영화 안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그의 강경한 태도는 영화의 기획 의도와 그가 하고자하는 것이 결코 객관적인 무엇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에 대해, 이성의 의지는 상관없이 온 몸이 거부상태에 이른 인터뷰이들 앞에서도 “우리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며 다그치고 카메라를 켜 놓은 채 기다린다. 이러한 집념에 의해 완성된 <쇼아>는 상업영화의 정형화된 러닝타임에 맞춰진 현대의 영화관객에게, 차원이 다른 관람체험을 선사하며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깊숙이 초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란즈만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제수용은 물론 ‘대량학살을 위한 가스실’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와 이를 마주해야만 한다는 그의 근본적인 입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인터뷰이들을 대하는 란즈만의 태도에는 피해자의 입장을 넘어 단죄자의 태도가 느껴졌고, 이러한 분노의 감정은 종종 인터뷰이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감정을 가리기도 했다. 
  반면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에 대한 첫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같은 피해자임에도 다른 자세를 취한다. 이 책에 쓰여진 레비의 글에서 독일인에 대한 증오나 원한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 책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수용소에서 경험한 일화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본인을 비롯한 수용소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신체의 변화 및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고 분석한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밝히고 있는 레비에게, 일반적인 글쓰기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문체의 고려, 게으름과의 사투 등은 하등 문제가 아니었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수용소 내부에서 목숨을 담보로 기록한 메모와 그의 초인간적인 기억력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한 단 1년 만에 <이것이 인간인가>로 완성된다. 이렇듯 나치에 대한 분노보다 체험의 증언과 묘사가 주된 내용으로 드러나는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까닭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유대인 수용소에서 개별 인간과 무리 인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생생히 추체험(追體驗) 하게 만들고, 유대인 수용소가 가진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의미를 고발한다. 나는 레비의 이 글을 읽고, 비로소 노예의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 새벽이 되면 우리는 사방이 아직 어둑어둑한데도 따뜻한 계절을 알리는 최초의 흔적들을 찾아보려고 동쪽 하늘을 자세히 살핀다. … 두 달 후, 한 달 후, 추위가 휴전을 선포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적이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수용소는 그곳에 머무르는 이들로 하여금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싸워야 했던 것은 추위, 배고픔, 맞지 않는 신발(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채 행군하고 나면 발은 짓물러 감염되고 부어오르는데, 그럴수록 신발과의 마찰이 심해져 병이 깊어지고 수용소 내부에서 고칠 수 없었던 이 병을 가지게 된 이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의 불행은 자유로운 인간의 소유인 삶에 대한 믿음의 상실, 살아있을 리 만무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식사 배급 줄을 앞에 서게 되는 바람에 묽기만 한 들통 위부분의 수프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실수와 불운이, 죽음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라는 사실이 그들 몫의 불행이었던 것이다. 프리모 레비가 쓴 아우슈비츠는 그 자체로 인권의 절멸이었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가스실로 대변되는 죽음보다,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바로 그러했으므로, 죽음만도 못한 삶,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에 응당한, 아우슈비츠가 제시한 또 다른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보기: 전쟁은 노예제의 충분조건이다

 
 
  ■두개의 탄광굴뚝(pier)만 묘비처럼 남기고 수많은 이들을 삼킨 쵸세이 탄광.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재갑의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中.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던 시절, 할아버지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1942년 2월 4일, 일본 야마구치 현 우베 탄광 중 해저탄갱인 쵸세이 탄광에서 바닷물이 유입돼 183명이 수몰된 것이다. 이 중 134명은 당시 조선에서 강제징용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유해는 아직도 해저탄갱에 남아있다. 
  전쟁과 노예제의 발생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노예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구성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엔세계인권선언문을 통해 노예제를 금지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현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노예제도가 확장되는 현상의 정확한 이유는 경우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법의 질서가 파괴될 때 노예제도가 급속히 발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면 노예 제도는 급속도로 확산된다. 전쟁이 노예제도를 조장하는 매우 선명한 예를 1990년대에 해체된 유고슬라비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한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현대적 의료시스템과 교육체제를 갖춘,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부유한 국가였다. 냉전이 끝나고 외국의 투자 자본 유입이 가능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주변 서유럽 국가들처럼 큰 발전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종 간 내전이 일어나 국가가 붕괴되면서 파괴된 마을과 도시에 노예시장이 나타났다. 난민이 된 여성들은 아주 쉽게 생포되어 매춘을 강요하는 노예주들에게 팔렸다. 
  전쟁 노예와 아동을 병사나 종으로 부리는 노예화는 최근의 시에라리온, 스리랑카, 버마, 우간다, 중앙아메리카 일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년병으로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끔찍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다 살아남은 아동들은 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1980년대에 시작되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수단 내전은, 특히 다르푸르 지역에서만 수천 명의 여자와 아동을 노예로 만들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에서는 인신매매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예화를 미국 정부의 청부업자들이 주도했다. 2년 후 15살의 이라크 소녀 마리암이 겪은 고통은 우리에게 노예제의 위협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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