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숙 / 첨단영상대학원 박사과정

 
 

  <본격영화수다잡지 녹록지X>(이하 녹록지X)는 2012년 7월 창간호를 발행하고 이번 3월에 제3호 발간을 앞두고 있는 독립잡지로, ‘씨네말(cimemaL)’이라는 이름의 정기모임 내용을 녹음하고 이후 최소한의 편집만을 거쳐 전달하는 일종의 녹취록이다. ‘씨네말’은 영화세미나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영화가 직조한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녹록’이라는 단어는 각각 다른 한자를 가진 동음이의어로 첫 번째 단어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다’거나 ‘만만하고 상대하기 쉽다’는 뜻이며 두 번째는 ‘수레가 굴러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지칭하는데, <녹록지X>라는 잡지이름은 이 두 뜻의 교차로 ‘만만한 것들이 수레바퀴를 굴리면서 가는 소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미지수(X)’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 잡지는 어떤 권위나 권력이 달라붙은 담론 또는 전문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말들을 모아 함께 생산해가는 비평을 지향한다.
  비평은 어떤 대상을 둘러싸고 생성되는 문제나 범주를 읽고 생산하는 작업이다. 어떤 대상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관계적이거나 공통적인 것이며, 비평은 이러한 장(場)을 포착하는 노력이 된다. 이처럼 비평이란 본질적으로 공통적인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비평이 어떤 이론이나 담론에 대한 적용으로써 대상을 대할 때, 대상이 형성하는 공통성 자체를 주목하지 못하고 고립시키기 십상이다. 이렇게 고립된 대상은 특정한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혹은 그런 작업주체에 의해 도구화되거나 사유화된다.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비평문화는 이처럼 이미 필터링이 선행된 시선으로 대중 혹은 작품을 대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잡지에 종종 등장하는 비평대담 지면은 보통 전문가로 지칭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며, 이때 형성되는 담론 역시 거의 자동적으로 어떤 작품이나 문화를 대하는 시선에 있어 권위를 부여받고는 한다. 그런데 ‘씨네말’ 세미나에서 형성되는 통찰들 역시 그 자체로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통찰은 과거의 행적에 기인한 권위가 아니라 현재에 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논쟁하거나 공감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위엄을 통해 성립하기 때문이다. <녹록지X>는 이처럼 미리 정해진 시선이 점하는 지면과는 다른 영화비평의 분위기와 장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본지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권위가 없다는 것이 미숙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독립잡지 지형이 돌파해야 하는 것 역시 스스로가 일기장처럼 사적인 것으로 남을지 아니면 소통을 이루는 작업이 될 수 있을지에 있는 것 같다.
  현재 독립잡지 제작은 꽤 활발하며 다양한 이슈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생산되고 있다. 홍대와 합정 일대에는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점이 네다섯 군데에 이른다. 한 달에 10권 이상 새로운 잡지가 입고될 정도로 많은 잡지가 제작되지만 이중 2호가 발매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독립잡지들이 지속의 문제를 겪고 있다. 정기간행물의 장점은 현재의 이슈들과 호흡하면서 개별적인 리듬을 형성해가는 데에 있다. 잡지는 일기장이기보다는 동네 친구와 자주 들르는 단골 까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보기에 현재 독립잡지는 공통적인 이슈의 리듬 생산과 포트폴리오 제작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유통과 관련해서 극복해야할 과제들도 많다. 독립잡지는 보통 자유로운 자기 리듬을 가지고 제작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업 시스템을 갖추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대형서점 등에 유통 가능한 구조를 갖기가 쉽지 않다. 또 제작자가 애초에 생산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서 일반 판매처를 염두하지 않거나 잡지가 순환 가능한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방만하고 순진한 생각도 유통구조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가지는 태도일 수 있다. 독립출판물 전문서점의 경우에는 정산시스템이나 전반적인 운영에 있어 체계적이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서 판매된 잡지 수입의 정산이 불규칙하거나 온라인 입고 요청이 바로 반영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독립잡지 시장은 아직 주먹구구식이지만 서울뿐 아니라 전주, 대구, 부산 등지에도 속속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등이 생겨나고 있으며, 서서히 독립잡지 유통을 체계화시키려는 노력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독립잡지 제작자들은 많은 경우 다른 직업을 병행하면서 500부 이하의 소규모 제작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각자 자신의 유통경로를 만들고 그때그때 판매수입을 회수하기란 쉽지가 않다. 또 서점 입장에서도 작은 잡지 제작자들을 일일이 상대한다는 것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번거로움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로 독립출판물유통조합을 결성하여 소규모 출판물들을 한 번에 유통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독립잡지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판매되는 경우는 북페어 등의 문화행사인데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지역별로 돌면서 정기적으로 독립출판물 북페어를 기획하여 독자들과 독립잡지가 만나는 계기를 넓히고자 하는 방법이 구상되기도 한다. 이런 노력들은 ‘독립’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독립잡지의 지향이란 메이저 잡지에 대한 안티보다는 ‘자율’에 있다. 자율은 대척점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성립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독립잡지가 스스로의 지속을 발명해나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때의 지속은 또 다른 자본의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소통구조를 모색하는 노력 속에서 읽혀야 할 것이다.  

‘녹록지 X’의 주변 이야기

  우리는 왜 출판 잡지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경험에 따르면 웹진이 네트워킹의 잠재성 측면에서 많은 의의를 갖는다면, 출판 잡지는 좀 더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 같다. 예를 들어 독자들을 직접 만나는 북페어 등의 경우에 느끼는 친밀감이나 기쁨은 인터넷 공간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의 동시성과 공간감을 제공해준다. 출판 잡지가 갖는 촉각성 역시 공간 경험을 북돋는 것 같다. 잡지를 만지며 읽어 내려가는 시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단골 까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공간감을 제공하곤 하는 것이다. 이런 출판 잡지의 의의를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 10여년 넘게 발간되고 있는 잡지 <싱클레어>와 ‘헬로 인디북스’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및 오프라인 서점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은 장(場)으로서의 독립잡지와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대표적이다. <싱클레어>는 사람들의 글을 모아 내는 잡지로, 10년이 넘게 독립잡지로서 살아남아 독립잡지의 역사를 쓰고 있으며, 신촌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에 작고 정겨운 서점을 가지고 있는 ‘헬로 인디북스’는 판매나 홍보를 우선시 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써 독립잡지 제작자들을 연결하거나 판매하는 기획들을 통해 자율적인 독립잡지 문화리듬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독립/출판/잡지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아마도 오롯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장소를 제공하는 데에서 그 힘과 의의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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