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인 커뮤니티 게시물 제재 논란

 
 

  무언가를 말하고 쓴다는 건 듣고 읽는 행위를 동반한다. 따라서 이는 혼자만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타자의 존재를 염두에 둔 ‘쌍방향’ 소통행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무언가를 말하거나 쓴다는 건 상호간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란 단지 언어 해석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해는 더 나아가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행위 또한 동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호간의 올바른 이해란 동등한 위상의 전제로부터 가능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권력에 의해 위계가, 구조에 의해 강압이, 권위에 의해 명령이 담긴 상태로 의미가 전달될 수밖에 없고 결국 소통과 이해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중앙인’ 청룡광장 게시판에 <청소미화원 노조와 임금협상>(ID: strangen)이란 글이 게시됐다. 이 글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최고공감 게시판에 올랐다. 그런데 두 주 후 서울행정지원처장 명의로 된 두 개의 글이 공지 형태로 게시판에 게재되며 문제가 벌어졌다. 이 글들은 최초 글이 허위사실 유포라며 문제 삼았고, 글 작성자에게 ‘신분을 밝힐 것’과 ‘어떠한 근거로 글을 작성했는지 오늘 중(10월 30일)으로 해명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납득할만한 해명이 없으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하여 학칙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다음날 이에 대한 최초 글 게시자의 답변 글이 올라왔다. 그는 답변을 통해 ‘신상을 밝히고 오늘 중으로 소명을 하라’는 요구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몇 차례의 글이 오간 후, 최초 글 게시자의 사과문이 올라옴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판단과 처벌의 주체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4. 용역업체 선정에의 검은문제..도 있지 않을까 근거 없이 의심해봅니다 하하...)”란 항목이다. 이 말 앞에 나열된 1-3의 항목들과는 달리 괄호를 친 말이고, ‘근거 없이’란 표현이 있으며, ‘하하...’ 같이 장난기 어린 말투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상식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한 진술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판단을 뒤로 한 채, 행정지원처 측은 이를 명예훼손과 관련시키고 법적 절차라는 말로 당사자에게 실명공개라는 압박을 가했다.

  중요한 점은 부적절한 게시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에 있다. 공지로 게시된 <청룡광장 이용수칙 준수에 관하여>, <청룡광장이 모두의 광장이 되길 바라며> 등의 글엔 단순히 ‘과격한 표현을 통해 다른 이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나 ‘고의성이 있거나 악의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혹은 ‘근거 없는 심각한 비방이나 상대에게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는 심한 모욕이라고 판단되는 내용’과 같은 모호한 언술들만 제시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기준에선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효과에 있다. 청룡광장이 자유로운 게시판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판단되고 이에 따른 처벌이 가능한 공간이라면, 나아가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난 판단에 입각해 있다해도 이의제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면, 이는 분명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경우를 보며 학생들은 자신의 표현에 대해 무언의 압박을 느끼거나 처벌에 대한 공포를 미리 갖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허울 좋은 자유게시판은 홍보성 글이나 찬양으로만 가득 찬 ‘홍보용 커뮤니티’로 전락하게 되고, 자유로운 표현과 소통의 공간이란 이상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여기에서만 멈추지 않는다는데 있다.
 

 
 

거꾸로 가는 시계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의 자정작용과 그 폐해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끊이질 않고 있다. 양자 간의 긴장은 팽팽할 때도 있고, 한쪽으로 다소 기울어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전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해 국가기관의 개입과 법적 판결, 그리고 이에 대한 처벌이 늘어나며 사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바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입 닫는 법을 터득하던지 아니면 눈과 귀를 막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능한 대응이란 그저 의견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고, 물리적 폭력 수단을 보유한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촛불을 드는 정도의 퍼포먼스일 뿐이다. 반면 상대방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를 학습해왔다.

  이는 결국 용산과 부산, 강정 그리고 국정원 선거개입 등에서 발견되는 ‘상식을 넘어선 판단’, ‘정도를 넘어선 개입’,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점점 더 극심해지는 모습을 목도하게 만든다. 특정 대상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이를 본보기로 삼아 다른 이들의 입을 막는 방식. 시계를 돌려 3-40년 전의 공안정국으로 회귀하는 듯한 이 역주행은 전보다 더 은밀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이 결국 공동체 전체를 과거로 회귀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은 균열이 도처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신호다. 이것이 중앙인 내에서의 ‘표현과 소통의 자유’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