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 / 뮤지션

 
 

  올해 로라이즈, 꽃땅, 대공분실, 컬리솔이 없어졌다. 그 중 로라이즈가 가장 더러웠다. 남자 여섯 명이 공동으로 운영했으니 그럴 수밖에. 어느 조각가의 작업실로 사용되던 문래동의 공간을 우리는 공연장으로 만들어2년 남짓 운영했다. 꽃땅은 멋있는 사람들 네 명이 공동으로 운영했다. 웹브라우저의 창틀너머로 그들의 사진을 접할 때면, 그들은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말 못하는 유기견 페니도 있었다.대공분실은 두리반 승리라는 2000년대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일원들이 절반쯤 관여해 운영하던 공간이었다. 인큐베이터처럼 처음 시작하는 밴드들이 많이 공연했다. 레이블이자 까페이자 공연장이자 주변인들의 안식처였던 컬리솔은 아이스크림과 오챠즈케가 맛있었다. 종종 저녁열한시쯤 들러서 죽치곤 했다. 컬리솔이 없어질 때 주변인들은 그곳 가구를 자기 집에 기념품처럼 가져다 놓았다.

  로라이즈, 꽃땅, 대공분실, 컬리솔 모두 특정한 취향과 정서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이 공간들을 매일 저녁마다 드나들었을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많이 안갔다. 원래 밖에 잘 안 나간다.하지만 나는 일찍이 ‘갈 수 있는데 안가는 것’과, ‘갈 수 없어서 못가는 것’의 차이점을 배웠다. 이는 고등학교졸업 후 바로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던 친구가 말해주었다.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갈 수 없어서 못가는것’은 천지차이다. 

  공연, 파티, 술자리 등은 허망한 매체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기억과 무용담만 남는다. 기억과 무용담은 얼마나 그지 같은가. 곧 출간 되는 『이랑네컷만화』엔 ‘어차피 죽을건데 왜 살지?’ 하는 부분이 나온다. 고등학교 때도 읽지 않고 버텼는데 얼마 전 우연히 참석한 자리의 미인이 권해주어 읽기 시작한 까뮈의 『시지프신화』도 같은 의문으로 시작한다. 어차피 없어질 거 왜 시작하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 CBGB도 결국없어졌는데. 우리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엔딩에 대한 시나리오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시작하는 것 같다. 머리로는 끝이 어떻게든 도래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어느 이유에서건 시작할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잘 안 한다. 그리고, 잘 안 해야한다. 

  요새 몇 년간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팔까 알아보면서 “이 차를 내 손으로 팔면 이 시대도 내 손으로 마감하는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네 공간도 없어지면서 짧은 한 시대가 지나갔다. 이제 기억과 무용담만남았다. 얼마나 그지 같은가.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