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연 / 미술비평가

 
 
 

  미술시장과 관련해 흔히 듣게 되는 제목의 질문은 답변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좀 더 부연하자면 분명 미술시장에서 공신력 있는 상업화랑이나 경매에서 오랫동안 거래 되고 기록이 많이 남은 작가들에 한해 가격을 정하는 다양한 기준들은 분명 존재한다. 작품에 대한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작가의 미술사적 가치, 기여도, 해당하는 작업의 미술사적, 비평적 가치, 매체, 작품의 희소성, 작업의 보존상태, 이전 컬렉터들의 구입경로 등에 대한 자료가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특정한 작업이 왜 10억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미술시장의 여건상 객관적으로 많은 정보를 투명하고 총괄적으로 축적하고 기록하는 일이 여의치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작업은 희소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토대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가격을 정하고 논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미술시장 관련 이론들은 미술작품의 가격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와는 달리 매겨진다고 설명한다. 원가에 대비해 가격이 결정되는 제조업이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고급 상품과 서비스업의 가격 결정 방식과는 달리 미술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원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술시장의 새로운 가치 창출, 엄청난 부가가치의 창출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현대 미술시장의 탄생과 아방가르드 미술


  현대미술은 이해하긴 어렵지만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분야란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만약 미술시장에서 작업의 가격을 형성하는 첫 번째 요소를 꼽으라면 그것은 ‘실험성’일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미술시장 또한 실험성을 강조하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흔히 현대미술의 주요한 시발점으로 삼는 인상파 이후의 아방가르드 계보는 그들의 실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온 초기 화상들, 이후 미술시장의 발전 등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서 아방가르드 미술이 미술시장과 만나게 되는 과정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에서 강조된 실험성은 서구 사회에서 이제까지 미술이 수행해 온 기능성이나 단순한 사회적 역할을 부정하면서 대두됐기 때문이다. 즉 아방가르드 미술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수단이나 정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신들의 실험성을 인정해 줄 소수의 부르주아 컬렉터들을 새로운 후원계층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현대미술은 보다 광범위한 대중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근본적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지되 대중들에게 널리 이해되기엔 앞선 것, 실험적인 것이어야만 하는 비극적인 소명을 가지고 생겨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해해진 현대미술은 실험성을 무기로 미술시장의 발전을 이끌었고 부르주아 계층 중에서도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자본을 지닌 이들이 주요 후원자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근자에 목격하고 있는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방식은 단순히 작가의 실험성에만 근거하진 않는다. 물론 새로운 것, 기발한 것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실험성은 현대적인 미술시장의 지속적 평가기준이 되고 있으나 60년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발전된 미술시장, 그리고 80년대를 통해 본격적으로 규모가 확장된 전지구적 미술시장에서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양식적 실험성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활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60년대 팝아트, 80년대 이후 네오 팝아트, 혹은 개념미술로 통칭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실험성 자체가 아니라 실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은 것을 새롭게 포장하고 전시하면서 생성되는 독창성이 평가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게 됐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 발명가들이 20세기 전반기의 주요 컬렉터 층을 이루어왔다면, 이후 팝아트를 선호하던 서비스업이나 운송업계 출신으로부터 80년대 금융계 출신들과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끈 광고업계 출신 찰스 사치 등이 미술시장의 주도적인 컬렉터층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87년 증권시장이 몰락한 이후로 증권가의 많은 인물들은 화상으로 업종을 전환했고, 미술계에서도 주로 금융계 출신 인사들이나 기업 미술컬렉터 자문위원들이 미술관의 관장이 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80년대 이후 최근 미술시장의 주요 컬렉터 층이나 새로운 주류는 더 이상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는 실험성이 아니라 기존의 양식, 이야기, 심지어 일반 물건들을 재활용하고 포장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를 통한 실험성’이 그 가치를 창출해내게 됐다.


미술계에 대한 항변


  하지만 아직 ‘왜 그리도 작품 가격들이 비싼지’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작품 가격만 놓고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21세기 미술시장은 20세기 초에 본격화된 현대적인 의미의 미술시장과 규모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더 이상 객관적인 비평적 기준이 작동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미술시장과 미술비평은 거의 따로 작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시장에 비싼 작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오해는 대부분의 경매가 가장 고가작업들 위주로만 발표를 하고 대중매체들이 가십거리처럼 이를 인용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미술시장과의 연관성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는 못한다. 두 번째로 미술시장에서 전시되는 작업들 이외에 일반 미술관, 대안공간, 카페, 인터넷을 통하여 활동하는 작가들의 양식과 내용이 급격하게 분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술계에서의 성공을 단정짓기도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 기준이 미술시장에서의 성공과는 별개인 경우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미술시장은 더 이상 20세기 초 엘리트 계층이나 1960년대 이후 서비스업이나 금융업 같은 특정 직종에 위치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육수준이 전 세계적으로 향상되고 문화향유의 열망이 인류역사상 가장 보편화된 우리 시대에 컬렉터가 아닌 일반인들도 간접적으로 미술시장의 판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중매체들이 본격적으로 미술시장의 각종 사실들을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나 여론이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연예인들이 앞다퉈 아트 페어에 차출되고 방송사가 미술계의 각종 주요한 행사를 후원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기인한다. 또한 과거의 엘리트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강했던 컬렉터층과는 달리 현재의 컬렉터층은 예술작업을 투자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대중적 인지도를 세심하게 고려해 작업을 구입한다.

  따라서 앞으로 미술시장과 관련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실험성이나 아이디어 기준이 전적으로 부재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시장의 ‘미친’ 가격은 단지 미술계 내부의 일만은 아니다. 제대로 된 항변이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술시장의 현상을 다른 사회적 현상들과 분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술계는 잘못된 가십으로 인해 미술시장이 다른 방향으로 나가거나 실험적인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매장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중요한 의무를 짊어지게 됐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