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원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클로드 르포르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급진 좌파 정치 집단을 이끌다가 맑스주의에 본래적인 전체주의적 한계를 절감하고 반-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애쓴 정치철학자다. 따라서 그는 7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사회당과 공산당의 공동 강령 정책에 맞서 프랑수아 퓌레, 피에르 노라, 마르셀 고셰 등이 주도한 반전체주의적 자유주의 운동의 일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의 이론적 지향은 이들과 구별되는 독특성과 급진성을 지니고 있다.
 

클로드 르포르, 정치적인 것의 발명


  그의 민주주의 해석의 독창성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프랑스어에서 ‘정치’를 가리키는 단어는 라 폴리티크(la politique)이며, 르 폴리티크(le politique)는 원래 ‘정치가’를 뜻하는 말이다. 반면 르포르는 경제나 사회 또는 문화와 구별되는 인간활동의 한 영역을 지칭하는 정치와 구별되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 곧 어떤 사회를 하나의 사회로 성립하게 해주는 상징적 차원을 가리키는 말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특히 ‘정치적인 것’은 정치적 근대성 및 그것을 창설한 프랑스 혁명의 새로움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고안됐다.

  르포르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그것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하나의 사회로 성립하게 해주는 상징적 장소를 지닌다. 근대 이전에 이러한 상징적 장소가 우주론적 질서나 관습적 의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절대주의 시기에는 현실적인 왕의 신체와 구분되는 영구불멸한 상징적인 신체에 놓여 있었다. 실제 왕이 죽거나 대체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징적인 왕의 신체, 주권-이는 원래 ‘지고한 힘’을 뜻한다.-의 장소가 보존되는 한, 사회의 통일성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설립된 근대성의 특징은 이처럼 사회의 통일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징적 중심의 자리를 비워버렸다는 데서 기인한다(왕의 머리 베기). 혁명을 통해 비워진 자리를 둘러싸고 근대의 두 가지 정치 체제인 전체주의와 민주주의가 각자 상이한 해법을 제시한다. 전체주의는 이 자리에 왕을 대신하는 새로운 통일체, 곧 주권적 인민을 위치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상의 인민은 다양하고 분할된 집단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통일성을 부과하기 위해 폭력과 억압을 수반하기 마련이며, 더 나아가 당이나 수령 같은 또 다른 유사 초월적인 통일체로 인민을 대체하게 된다.

  반면 민주주의는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고 그대로 비워둔다. 민주주의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및 원칙들은 이러한 상징적 통일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지만 그 어떤 집단이나 원칙도 이 자리를 영원히 차지할 수는 없다. 특정한 행위자나 집단이 내세우는 원칙은 이런 빈자리를 메우는 상상적인 봉합물일 뿐이며, 비어 있는 상징적 중심과 현실적 분할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없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특징은 권력의 중심을 비워둠으로써 어떤 사회가 고안해내는 자기 재현의 통일성과 그것의 현실적인 다양성 사이의 간극을 계속 유지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한편으로 꽤나 자유주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상당히 비관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르포르의 후계자 중에는 마르셀 고셰 같은 자유주의 이론가나 피에르 마낭 같은 보수주의 이론가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르포르 이론의 독창성은 자유주의적인 전유로만 소진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보여준 사람이 바로 에티엔 발리바르다. 발리바르는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발표된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라는 글에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1789)>(이하 <인권선언>)의 독창성을 재해석하면서 르포르의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봉기적 시민권 개념으로 정정/확장한다.
 

 

 
 

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적인 것에서 봉기적 시민권으로


  발리바르는 르포르와 마찬가지로 근대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환원하려는 맑스주의적인 해석을 비판한다. 맑스는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간과 시민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괴리에서 찾는다. 곧 민주주의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고 있지만 현실에서 인간들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소유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한 정치적 권리란 현실적인 사회/경제적 모순을 은폐하는 기만이거나 수사법에 불과하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르포르를 좇아 <인권선언>에서 제시된 권리 개념의 새로움을 강조한다. <인권선언>의 권리 개념은 고전적인 자연권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계보학적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가령 에른스트 블로흐). 하지만 고전적인 자연권 이론과 달리 <인권선언>의 권리는 사회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적 인간의 본성’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성원인 시민에 근거를 둔다. 곧 인간이 지닌 본래적 권리란 시민들이 서로에게 부여하고 서로 인정해주는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인간과 시민은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존재자가 아니며, 맑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현실과 가상의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양자는 정확히 동일한 존재자를 가리킨다. 이를 발리바르는 인간=시민이라는 등식으로 표현한다.

  또한 발리바르는 근대의 인민주권이란 절대주의 시기의 초월적 주권의 모방물에 불과하다는 마르셀 고셰의 테제를 반박한다. 인민 주권은 주권자와 신민 사이의 위계적 불평등에 기초를 둔 고전적인 주권 개념의 관점에서 보면 용어 모순적인 평등한 주권을 가리킨다. 정치 공동체의 궁극적인 토대란 자연적인 것도 초월적인 것도 아니며,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공동의 선언에 있다. 이러한 권리를 지키고 확장하려는 시민들 자신의 행위에 있음을 뜻한다. 곧 인민주권이란 근대 정치의 최고 원칙으로서 시민들의 평등한 자유이다. 이를 발리바르는 ‘평등자유(equaliberty)’라는 신조어를 통해 표현한다.

  따라서 르포르가 상징적 통일성과 현실적인 분열 사이의 괴리를 강조할 때 염두했던 것은 <인권선언>에서 표방된 권리가 제도화된 법적 틀을 넘어선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법적/제도적 틀을 기초 지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틀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권리의 창조를 촉발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적 원천을 가리킨다.

  발리바르는 르포르의 주장을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정정/보충한다. 우선 발리바르는 <인권선언>이 혁명적인 선언이고, 봉기적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봉기’는 단순한 반역이나 반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헌정과 단절하고 새로운 헌정을 창조하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모든 헌정은 이러한 봉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로부터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을 얻는다.

  둘째, 발리바르는 정치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봉기의 정치’와 ‘헌정의 정치’의 관계로 재규정한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르포르와 달리 봉기를 통해 형성된 헌정의 정치, 제도적인 정치를 가리키게 된다. 이로써 봉기와 헌정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셋째, 발리바르는 르포르와 달리 ‘정치적인 것’을 위해 사회적인 것, 또는 계급투쟁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에 의한 노동 계급의 지배(및 인간학적 차이에 근거를 둔 다른 지배)를 정치를 규정하는 조건으로 간주한다. 정치는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자율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물질적 조건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물질적 조건들 속에서 정치를 이해할 때에만 정치의 쟁점과 그 주체 또는 주체화의 문제가 보다 정확히 규정될 수 있다. 르포르는 정치의 자율성과 근대 민주주의의 새로움을 이해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했지만 정치를 지배의 문제와 연결했고, 주체화의 쟁점과 관련짓는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발리바르의 이론적 독창성(중 일부)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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