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섭 / 이보섭융연구소 소장

 

[우리 민담으로 읽는 분석심리학]
 
  (지난 호에 이어서)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나무를 하러 간 차복이는 잠깐 쉬는 동안 주변에 탐스럽게 벌어진 밤송이들을 발견해 아내에게 주려고 한 보따리를 챙겼다. 그때 지나가던 노인이 자신의 부싯돌과 바꾸자고 하자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번엔 포수가 와서 부싯돌을 노루와 바꾸자고 제안했다. 차복이는 또 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탐탁찮게 생각하던 어떤 노인이 간청하는 바람에 또다시 노루를 말과 교환했다. 마지막으로 그 말의 가치를 알아본 한량이 찾아와서 황소 한 마리와 금 열 냥으로 말을 사갔는데, 차복이는 그 돈으로 생전 처음 농토를 갖게 됐다. 황소로 밭을 갈아 매년 농토가 배로 늘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갑부가 됐다. 그새 아들과 딸도 얻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웬 거지 부부가 동냥을 왔다. 아내가 만삭의 몸인데 제대로 먹지 못해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을 따뜻한 방에서 쉬게 하고 맛난 음식을 대접했다. 거지 아내는 다음날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들이 아이 이름을 석숭이라고 짓는다는 말에 차복이는 깜짝 놀라며  거지 가족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 석숭이가 일곱 살이 되자 차복이는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재산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석숭이 부모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차복이가 복을 돌려주지 않으면 제명에 살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난처해했다. 그러자 석숭이가 나서서 재산을 받는 대신 차복이 부부를 수양부모로 모시겠다고 했다. 타고난 복이 얼마나 컸던지 사방에서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무의식 세계로의 여행, 자아(ego)의 죽음과 재생, 즉 입문의례를 거치는 것은 전체적인 삶을 향해 펼쳐지는 개성화 과정의 시작이다. 이때 자아는 지금까지의 자아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기(self)의 인도를 따르면서 삶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는 일터로 가는 차복이의 태도에 잘 나타난다. 예전처럼 오직 부자가 되겠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 즉 자아를 비움에 따라 전체를 살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간다. 그래서 욕심에 눈이 어두웠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밤송이가 눈에 띄고, 그것을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 밤송이는 사랑의 매개물을 상징하며, 우연히 밤송이와 바꾸어 얻게 되는 부싯돌도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분석심리학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음과 양이라는 대극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합일을 통한 새로운 의식의 탄생이 이뤄지는 것을 상징한다. 모든 대극 합일의 이면에는 자기 원형이 작용한다. 예전에 아내의 말을 무시했던 차복이는 아내로 상징된 자신의 혼(anima)을 진심으로 존중하게 됐다.
 

  인간의 건강과 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신의 본능, 즉 무의식의 에너지(libido)에 대한 정확한 감지와 인지, 적절한 적용과 문화화가 이 민담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본능이 노루, 말, 황소라는 동물들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차례대로 이 동물이 교환되는 과정은 그들이 상징하는 무의식의 에너지가 의식으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황소와 함께 얻게 되는 금은 단단하고 빛나는 성질로 최고의 가치를 의미하는데, 이것으로 차복이는 농토를 구입해 경작함으로써 문화를 창출한다. 이 민담은 물질문화뿐만 아니라 정신문화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면서 전체성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준다. 정신문화의 풍요로움은 차복이, 석숭이 부모, 석숭이가 보여주는 어려운 이에게 베푸는 자비심,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유감없이 놓을 수 있는 지혜, 배타적이지 않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열려 있는 마음, 복을 나누는 마음으로 이뤄진다. 물질문명과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이 병들어 가지 않는 방법은 바로 이러한 정신문화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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