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호 /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근대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들 중 보수주의처럼 버크라는 한 사람의 사상과 프랑스혁명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이토록 깊숙이 의존한 정치사상은 없었다. 버크는 무엇보다도 프랑스혁명이 표방한 평등과 인민지배의 원리에 대해 분노했다. 이러한 인식은 프랑스혁명을 이끈 급진세력, 즉 자코뱅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자코뱅의 행위는 평등이란 이름의 평준화, 자유라는 이름의 허무주의, 인민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권력일 뿐이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프랑스혁명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 가운데 가장 경악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버크는 프랑스혁명의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인 성격이 전통적 사회질서를 폐지하거나 치명적으로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백을 혁명정부의 새로운 무기인 임의적 법률이 차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공포정치가 아니라 혁명의회에 의해 통과된 수많은 법률이라고 지적하면서, 유럽 차원의 반혁명이 즉시 착수돼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프랑스혁명과 계몽주의에 대한 버크의 신랄한 공격은 훗날 다음과 같은 보수주의의 5대 교리로 발전했다. 첫째, 보수주의는 전통․관습․역사를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이것들을 강조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연이 질서를 갖고 있으며, 질서란 모든 선의 근원이라는 믿음이 내재하고 있다. 즉 혁명적 변화와 혼란보다는 질서의 안정적 성격과 규칙성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 변혁이나 개혁을 통해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려는 급진주의자들의 노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판됐다.

  둘째는 종교와 도덕의 강조다. 보수주의는 종교를 국가와 사회의 초석으로 보고, 좋은 사회에서 종교의 필수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버크는 종교가 수행하는 두 가지 기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하나는 국교의 제도적 측면이다. 이는 사회의 유대감을 강화시킴으로써 통합적인 정부와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국가 권력 및 통치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종교 권력의 강력한 견제기능이다.

  셋째, 보수주의는 자유와 재산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자유에 대한 보수주의의 강조와 이해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귀족적 자유주의자였던 토크빌이다. 그는 근대사회의 평등한 시민은 개인의 허약함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껴 국가의 강력한 힘에 의존하게 된다고 봤다. 결국 자유보다는 평등에 대한 애착이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키며 동시에 중앙집권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버크는 모든 인간은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소유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을 옹호했다. 보수주의의 사유재산권 이론에는 로마법적 요소, 즉 문명시대에 재산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격을 보증하는 수단이자 조건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넷째, 보수주의는 인간의 자연적 불평등을 인정해 대중에 대한 불신과 엘리트의 적극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에 해당된다. 버크는 대중이 윤리적으로 훈련된 상류계층에 복종해야 하며, 가족과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귀족에 의한 정치가 바람직하다는 가부장적 지도자론을 전개했다.

  끝으로 보수주의의 또 하나의 방점은 자유방임 및 분권화, 그리고 각종 결사체에 대한 강조이다. 실제로 지난 2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현실 정치에서 보수주의가 갖는 특징은 사적 영역, 가족 및 지역공동체, 경제와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보다 작은 단위의 단체적 권리를 존중하고, 국가의 간섭과 규제를 억제하는 조치들을 유례없이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특히 현대에 이르러 효율성을 강조하는 ‘작은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네오콘의 등장

  독일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전범 재판에도 회부됐던 칼 슈미트는 2차 대전 이후의 신보수주의 운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슈미트에 따르면 적과 동지의 구분은 모든 정치행위와 동기들을 환원할 수 있는 합당한 기준이며, 전 사회를 포괄하는 일반 원칙이자 본질이다. 슈미트의 우파적인 개념은 미국으로 건너와 레오 스트라우스와 얼빙 크리스톨을 거치면서 네오콘의 이념적 요체인 절대주의적 도덕관으로 정립됐다. 이러한 도덕관은 부시의 ‘악의 축’이 여실히 보여주는 것처럼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현실 세계를 화해할 수 없는 절대적 선과 악의 대결로 인식한다. 당연히 네오콘은 균형과 협상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을 유약한 사변가라고 비판하면서 적의 완전한 박멸을 선호한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진화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중동 민주화와 선제공격독트린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선언하고 이에 입각해 중동의 민주화를 위한 영구적인 노력을 천명한 것이다.

  또한 신보수주의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삼고 있다. 이는 남부의 침례교회를 모태로 하며, 앵글로색슨족의 청교도 윤리를 극단적 형태로 밀고 나간 것이다. 특히 이것은 1960년대 이후 확산된 대학가의 낭만주의적 자유지상주의와 문화적 다원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대두됐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과거와 다른 점은 공화당의 중앙은 물론 지역 수준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30년 동안 종교적 보수파는 대체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면서 간접적인 후원자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교단과 지역 조직을 기반으로 당 내부는 물론 말단 선거구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과거 노조와 흑인들이 민주당으로 모였듯이 이제 기독교 우파는 급속하게 공화당으로 집결하고 있다.
 

건강한 보수주의를 위한 제언

  여전히 민주주의가 과제인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주의와 관련해 두 가지 오해를 교정해야 한다. 첫째는 보수주의가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일련의 이념체계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경향이나 기질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버크 이래로 보수주의는 장구한 생명력, 핵심 사상과 신조, 체계적인 관련 제도를 갖춤으로써 지난 2세기 동안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와 더불어 서구의 3대 정치 이데올로기로 발전해 왔다. 둘째는 보수주의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없는 개념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인 집단으로서 자유주의자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바보들의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보수주의 자체가 민주주의의 반명제로 이해돼서는 안된다. 질서와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주의는 사회의 안정적 유지와 순차적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또 다른 토대로 작용했다. 건강한 보수주의가 없는 사회는 건강한 진보주의가 없는 사회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한국의 현대 정치사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침해할 요소 또한 내포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질서․도덕․가치․종교․엘리트․국가 등 보수주의 정신의 극단적 편향은 극우주의․인종주의․근본주의․국가주의 등 반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양산해 왔다. 미국의 네오콘이나 한국의 뉴라이트와 같은 사조들은 민주주의와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같은 거대 담론을 선호하고, 이론적 확실성을 갈망하며, 정치가 지향해야 할 분명한 이상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이성과 사회공학을 불신했던 전통적 보수주의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는 디즈테일리가 보수주의의 건강함으로 이야기했던 두 가지 덕목, 즉 교조주의를 견제하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 의문을 제시하는 건강한 회의주의와 정책 결과의 불확실성이나 과격하고 광범한 변화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진주의의 신중함으로부터 많이 이탈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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