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본교 사회학과(BK21 사업팀)와 중앙사회학이 주최하는 콜로키움 ‘사회과학적 인식의 비판적 기초 시리즈’ 중 두 번째 발표가 대학원 403호에서 진행됐다. 이번 발표는 ‘식민지 도시와 근대성의 영화적 재현’을 주제로 ‘기록 영화 <경성>과 식민권력의 자기 재현’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특강의 진행 순서는 우선 <경성>(감독 시미즈 히로시, 1940)을 관람하고, 본격적인 발표가 뒤따랐으며, 질의응답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발표자인 주은우 교수(사회학과)는 이번 발제를 통해 “기록 영화 <경성>은 조선총독부를 위시한 식민지 국가 권력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영화로 재현했는지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설명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권력이 자기 정체를 표현하는 데 문자보다 이미지, 특히 영화 매체를 중시해 이데올로기적 지배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영화가 발명되고 일본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국가 정책과 영화 산업이 상호 교류를 이루며 보완적인 형태를 취했다”고 평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시청각적인 선전 도구로 매우 적합했다고 논했다. 이는 시각 매체를 실재라고 인식하는 성향과 피지배국민들의 문자 해독률이 낮고 이미지가 폭증했던 시류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 카메라를 투입해 피지배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반대로 본토인들에게 식민지의 현황을 알렸다. 일본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영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영화의 제작 편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문화통치의 수단으로서 영화 매체

  주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총독부가 영화를 체계적인 식민 통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3�1운동 직후, 즉 문화통치 기간이었으며 이때 관객 수는 천7백만에서 2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당시 영화 제작을 주관했던 기관은 주로 조선총독부였으나 문화통치기에 이르자 산하 기관에서도 따로 활동사진반을 개설해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기관이 철도국과 체신국이었다. 특히 철도국은 일본 본토와 조선, 그리고 만주에 이르는 ‘대동아공영권’ 여행 루트를 중심으로 일종의 관광 홍보용 영화를 제작했다.

  <경성>은 총 16개의 시퀀스로 이뤄져 있으며 당시 유행했던 ‘도시 교향곡’ 장르에 충실했다. 또한 조선인들의 낙후된 일상을 보여주고 내지인들로 하여금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을 느끼게 하는 데 영향력을 미쳤다. 영화의 시퀀스 구성도 그 맥락에 닿아 있다. 일제가 건축한 조선신궁과 근대적 소비 공간인 미츠코시 백화점의 풍경을 담은 시퀀스가 조선인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는 형국인데, 당시 물리적인 공간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주 교수는 이를 두고 권력의 근대성을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이 깔린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경성>은 선전 영화이나 확장된 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성역과 명동 성당, 미츠코시 백화점 등의 근대적인 풍경들을 만보객, 또는 산책자의 시점과 동선으로 사실적이고 매끄럽게 잡아낸 점으로 미루어보아 일말의 예술성도 담보하고 있다”고 말하며 “<경성>이 단순히 선전 매체로만 기능했던 것은 아닐 수도 있어 흥미롭게 연구해 봐야 하는 지점”이라고 견해를 밝히며 끝을 맺었다.

오창록 편집위원| needyourey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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