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곤 / 광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기억의 기능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개인적 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기억을 재구성해 새로운 사유를 발굴해 내는 데 있다. 이러한 기억행위는 과거의 기억을 문화적 장치를 통해 재현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다. 대항기억 역시 기억이 갖고 있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

  대항기억은 푸코로부터 나온 개념이다. 그는 국가나 지배집단에 의한 공식기억이나 공식역사와는 다른 기억을 대항기억으로 간주했다. 한 사회의 공식기억으로부터 배제된 개인들의 사적 기억은 공식기억과 경합하며 자신들의 기억을 인정받기 위한 기억투쟁을 전개한다. 이처럼 대항기억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공식기억에 반대하여 그것에 거친 균열을 내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공식기억과 대항기억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대항기억의 기본 전제들을 암시한다. 푸네스는 낙마 사고 이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기억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억들을 개념적으로 분류하고 기억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사고 능력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가 기억을 현실의 맥락에서 새롭게 재구성해 낼 수 없다는 말이다. 푸네스는 기억의 다른 측면인 망각의 능력도 없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기억능력에 반하여 망각능력이야말로 능동적인 능력이며, 망각능력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대항기억은 이처럼 현재를 과거에 붙들어 놓는 단선적 기억에 대항해 새로운 것이 기억될 수 있도록 특정 기억을 지우는 망각의 작용을 거친다. 여기서 망각은 기억의 상실이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 것을 지워내는 기억의 의식적인 선별 작업이다. 기억의 선별을 통해 기억은 새롭게 재구성된다. 따라서 대항기억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기억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는 미래지향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기억은 표상 전체, 즉 하나의 통합 이미지처럼 새겨지지 않는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고도 사람마다 상이하게 기억하고, 새로운 상황에 따라 과거의 기억은 재배열되고 재기록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대항기억은 누구의 기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를 요네야마 리사의 주장을 빌어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대항기억은 ‘무엇을 생각해낼까 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어떠한 위치에서 생각해낼까를 둘러싼 싸움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항기억이 구성되는 세 가지 지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대항기억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대항기억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배제되고 주목받지 못한 소수자의 기억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변화된 기억을 끌어내어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주체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곧바로 공식화된 기억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대항기억의 주체를 소수자로 환원하는 것은 특정 기억집단으로 정체화될 수 없는 다양한 기억주체들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 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논의돼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미니크 라카프라가 <치유의 역사학으로>에서 제안한 두 가지 기억을 주목해 보자. 그는 기억을 일차기억과 이차기억으로 구분한다. 일차기억은 어떤 사건을 몸소 체험하고 그 사건을 특정한 형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차기억은 일차기억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쳐 형성된 것으로, 사건 당사자와 기억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은 특정 기억이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정치적 삶에 어떤 적실성을 갖는지 토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억은 일차기억과는 다른 근거에 입각해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검토된 이차기억을 통해 구성된다. 그만큼 어떤 기억도 순수하게 일차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과 기억을 구성하는 주체는 단일하고 선험적으로 고정된 실체로 미리 설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억의 문화적 재현과 대안가치의 결합

  둘째,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에서 ‘현재에 의해 현재 자체의 관심사로 인지되지 않는 과거의 이미지는 모두 회복할 수 없이 소멸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를 대항기억이 집중해야 할 지점으로 확장시켜 해석해 본다면, 대항기억은 국가의 공식기억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구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를 지향하며 현실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의미나 가치들과 결합됨으로써 대항기억의 형성 기반은 시공간적으로 확대된다. 또한 대항기억의 역동성은 새로운 기억의 발굴이라는 측면을 넘어 발굴된 기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돼 개인의 일상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재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를 위해 대항기억은 특정의 주체나 공식기억에 반하는 단일한 의미체계로 설정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치와 인간의 감성을 재조정하는 보다 근본적인 영역으로 넓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항기억이 문화라는 맥락과 깊은 연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의 진전 이후 대항기억이 공식기억화되면서 나타난 역사창출력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해 준다.

  셋째, 대항기억을 어떻게 확대·재생산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은 천황의 기억을 구축하기 위해 천황과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기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신사를 통폐합했다. 또한 천황에 대항했던 반역자들의 신사는 대항기억을 남긴다는 이유로 없애거나 지위를 강등시켰다. 이처럼 상징과 장소는 대항기억 형성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주요 영역이 돼 왔다. 대항기억은 문화적 재현을 통한 기억의 복원, 제도화되지 않은 기억의 장소의 보존과 활용 등을 통해 국가의 공식기억을 넘어 새로운 기억 형성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아스만은 기념행사, 기념공간의 조성 등 문화적 장치를 통해 매개되는 기억을 ‘문화적 기억’이라고 했다. 이 문화적 기억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즉자적으로 촉발되고 또 쉽게 사라지는 ‘의사소통적 기억’과도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반복적 사용이 가능한 텍스트, 이미지, 의례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억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전승할 수 있게 한다. 기억은 기념비나 건축물, 도서관, 아카이브, 박물관, 문화예술적 매체 등을 통해 ‘저장’되기도 한다. 공식기억이 담아내지 못한 개인의 기억과 대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은 새로운 기억을 낳기 위한 기억의 창고 기능을 한다. 이는 대항기억을 후대에 전승할 수 있는 지속적인 학습의 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기억의 공간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남산의 안기부 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민청원운동은 국가폭력의 기억을 대체하는 대안적 기억문화 공간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광주에서는 1980년 5·18 항쟁의 주요 사적지에 ‘5·18 아카이브’와 ‘민주인권평화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공간은 기억의 보존과 창조를 통해 새로운 기억문화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기억공간이 곧바로 대안적 기억문화를 형성시켜 줄 것이라는 공간결정론적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 기억의 공간화 혹은 공간적 재현은 새로운 기억을 담는 그릇이지만, 기억의 역동성을 감금하고, 기억의 확장성을 제약하는 물리적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대항기억이 국가화·제도화되면서 새로 건축된 기념공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는 대항기억의 새로운 창조성이 극도로 제약된다. 반면, 권력집단은 의례적인 기념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정체성을 포장하는 장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안적 기억문화는 과거의 기억을 드러내는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현실의 시점에서 미래의 삶을 열어가는 의식적 기억작업이다. 따라서 대안적 기억문화 형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적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기억이 지향하는 가치를 공감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신의 삶에서 이 대안가치를 일상의 문화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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