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파시즘의 폭력을 고발한 그림이다. 그래서 폭력의 섬뜩함을 느끼게 하며, 이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그림이 파시즘 고발의 의미로는 좋지만 내 마음 속의 폭력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싫다. 시대가 파시즘적이라고 느끼는 동안 그 그림을 걸어놓고 매일 몇 번이나 봤지만 언젠가 내가 폭력적으로 변할 것 같아 떼어버렸다. 

  나는 스페인을 좋아하지만 투우를 비롯한 폭력적인 점들은 싫어한다. 최근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는데, 한때 그곳에 살면서 투우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피카소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게르니카>의 소는 독일군 폭격으로 죽어간 소를 말하지만, 동시에 투우장에서 죽어간 소이기도 하다. 피카소에게 투우장의 소는 게르니카의 소와 달리 아름답게 죽어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모두 같다. 아니, 전장에서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소보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한다고 일부러 죽이는 소가 더 싫다. 

  <게르니카>는 물론 바르셀로나 창녀들을 그린 <아비뇽의 처녀> 등이 서양미술의 전통을 파괴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력 예찬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서양전통 속에 있다. 서양의 폭력성은 그리스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창조신인 가이아를 비롯해 타이탄이나 제우스 등의 신들과 영웅들은 물론 그들이 처절하게 죽이는 수많은 괴물들까지 오로지 폭력적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청춘이 노년에게, 후세가 조상에게, 백인이 비백인에게, 제국이 식민지에게 서슴없이 노골적인 폭력을 가한다. 

  스페인은 제국 폭력의 선구자였고 유럽에서 마지막 봉건의 반민주 파시즘 국가였다. 피카소가 스페인 시민전쟁 때 프랑코를 도운 나치의 게르니카 폭격에 저항해 <게르니카>를 그린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정부가 그에게 박람회 전시용으로 그림을 의뢰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그렸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게르니카>가 수많은 전쟁화처럼 기념적 기록의 의미로 그려지긴 했지만 평화의 이미지나 반전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호소하는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콜비츠의 흑백 데생인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이 더 강렬한 반전의 계몽에 유효하다. 

  피카소 개인도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그가 사랑했다는 수많은 여인들은 물론 남성들까지도 그에게는 지배의 대상이었지 사랑이나 우정의 관계를 맺는 대등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그 주변의 남녀들이 남긴 회상록이나 평전류의 기록들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을 예술가 특유의 독선이나 독재의 기질이라고 변호하거나 미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정치가가 본래 그렇다는 식의 호도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게르니카>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지양돼야 한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수많은 유럽 미술관에 수없이 걸려 있는 영웅적 전쟁 예찬화와 마찬가지로 <게르니카> 같은 반영웅적 전쟁화도 찬양할 그림이 아니다. 게다가 그림 속 모델들이 화가가 개인적으로 폭력을 가한 희생자들의 모습이라면 너무나도 황당한 아이러니다. 그런 피카소보다는 차라리 루오나 자코메티가 더욱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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