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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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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송형석 /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
박정민 기자  |  narannyo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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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승인 2012.04.26  00: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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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9월 24일 서울잠실종합운동장 메인스타디움에서 남자 육상 100m 결승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벤 존슨은 자신의 종전 세계 기록을 0.04초 앞당긴 9.79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새로운 올림픽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핑 검사에서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돼 기록은 취소되고 금메달은 3일 만에 박탈당했다. 당시 언론과 스포츠단체들은 존슨의 도핑 행위를 맹렬히 비난했다. 비난의 초점은 주로 그의 인격이나 도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논리에 따르면 스포츠가 추구하는 이상은 공정한 경기의 이념, 세계 평화와 공존, 선수의 건강과 복지,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능력의 탁월함 같은 숭고한 가치들과 관련이 있는데, 부도덕한 존슨이 도핑을 자행함으로써 이와 같은 가치들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 언론과 스포츠단체들은 신성한 스포츠 세계에서 추악한 도핑을 몰아내야 한다며,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도핑과의 전쟁은 1999년 세계반도핑기구의 발족을 통해 구체화됐다. 세계반도핑기구가 발족된 이후 도핑 검사 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도핑을 자행한 선수에 대한 처벌규정도 한층 강화됐다. 또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교육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 적발 건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도핑 대상도 프로 선수들에 그치지 않고 아마추어 선수들과 스포츠 동호인들, 그리고 스포츠와 무관한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피로 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이와 관련하여 “약물 금지만으로 몸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가 하나의 성과기계가 되어 원활한 작동으로 최대의 성과를 산출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발전 경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의 원인이 개인의 인격적 자질보다는 성과사회 그 자체에 있다는 말이다. 근대스포츠는 그가 말하는 성과사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스포츠에는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성과 극대화를 요구하는 원리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올림픽 표어가 암시하고 있듯이 올림픽 경기에서는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아니라, 최고 성과를 산출한 선수가 명예와 찬사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공정하게 경기에 임해도 다른 선수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기 갱신과 성과 극대화의 원리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이질적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스포츠 자체에 내재된 원리이며, 체제 강요이다.

  자기 갱신과 성과 극대화의 원리는 근대스포츠가 출현한 19세기 초부터 스포츠를 이끌어온 주요 동력이었다. 당시 사회는 진보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진보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테크놀로지라고 여겼다. 그 결과 테크놀로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로 말미암아 육체가 담당했던 역할이 기계에 의해 대치됐다. 이에 비례해 육체의 실용적 가치는 점점 더 평가절하됐다. 또 기계적인 것만이 근대적이고, 육체적인 것은 근대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스포츠는 바로 이 시점에서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수용해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던 육체를 근대적인 진보의 원리에 종속시켰다.

  전근대적인 육체를 통해 근대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스포츠의 노력은 그 출발점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다윈의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육체 기능의 진화, 육체 능력의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디고 느리게 진행되는 육체의 진화, 가시화되지 못하는 육체 능력의 진보만으로는 스포츠가 진보의 원리를 구현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가속화된 진보, 단시간 내에 가시화될 수 있는 진보의 증거가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는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놀로지는 근대스포츠에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요소이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터하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보장하는 구성적 근거이다.

  테크놀로지는 철저하게 목적합리적 행위 양식이다. 테크놀로지는 육체 능력 향상이라는 목적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개발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놀로지는 가치중립적이며, 탈도덕적 속성을 지닌다. 즉 테크놀로지는 육체 능력 향상을 위해 취해진 조처들이 선한지 악한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능력 향상에 효율적인지 아닌지만 사실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도핑은 테크놀로지가 근대스포츠에 도입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도핑은 자기 갱신과 성과 극대화라는 근대스포츠의 요청을 효율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테크놀로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스포츠단체들과 대중매체의 온갖 추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핑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스포츠는 문제의 원인이 그 자체에 있음에도 그것을 외부로 전이시켜 버렸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유효하다면 도핑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은 바뀌어야만 한다. 도핑에 대한 비판은 도핑을 자행한 선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선수들로 하여금 도핑을 하도록 부추기고 강제하는 근대스포츠의 내적 원리,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성과 극대화 원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어야만 한다. 이 원리에 대한 근원적 반성과 성찰이 수반되지 않은 개혁적 노력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싸워야 할 적은 스포츠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근대스포츠를 개혁하려는 모든 노력은 이러한 명확한 사실의 인식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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