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건 /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한국의 3대 종교(불교, 개신교, 가톨릭)중 비종교인과 타종교로부터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최근 김용민 막말파문의 소재가 됐고, 심지어 이른바 ‘개독교’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듣고 있다.

  개신교는 서구에서 한국으로 전래된 지 백 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중앙교회(설립자 조용기 목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주일 출석 성인 신도수가 1만 명 이상, 매주 헌금액이 1억 원이 넘는 이른바 ‘초대형 교회’가 무려 20개가 넘고, 교인 숫자의 합계만 해도 무려 150만 명 가량이나 된다. 이렇듯 한국 개신교는 지난 1960년대 이후 세계기독교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다. 이번 4․11총선에서 당선된 전체 국회의원 중 무려 약 40%가 개신교 신자라는 통계를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전문직, 관리직 및 고급 관료 등 지도층 인사들의 다수가 개신교를 믿고 있다.

  최근 개신교 외부의 일반 시민과 심지어는 내부의 진보적 신앙인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발전 혹은 건재하고 있는 보수적인 한국 교회의 성장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개신교가 현 한국 사회에서 갖는 기능과 그 성장의 심층 논리와 메커니즘은 과연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 성격과 제반 모순을 규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물음이라 할 수 있다.

샤머니즘과 성령운동

A Shaman-3(박생광 作,1983)
A Shaman-3(박생광 作,1983)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대한 기존 선행 연구들은 문화적 요인으로서 무속신앙과 개신교 내적 요인 사이의 관련, 그리고 개신교 내적 요인과 경제 발전 사이의 친화성에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다. 아래에서는 위의 두 측면이 심층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인식 아래 ‘개신교’와 ‘무속신앙’, 그리고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모두 관통하는 중요한 논리로서 ‘공리주의’에 주목한다.

  종교사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의 종교성에서 가장 심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샤머니즘은 귀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강신술을 중요한 요소로 갖고 있다. 현대 한국인의 내면적, 심층적 의식구조에는 이 샤머니즘으로부터 기원한 관념, 곧 사람이 죽어서 된 ‘인귀’의 관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외에도 암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중 적지 않은 경우에서 나타나는 주술적 치료에 대한 의존 경향 등 현대 한국 사회는 ‘귀신’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회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교 내부의 경우 가톨릭과 달리 선행 같은 행위보다 오직 믿음을 통한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신약성서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내용 속에는 수많은 ‘귀신’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그 같은 악령의 세력들’에 대해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예수의 출현과 3년 동안의 짧은 공생애, 그리고 부활 등의 카리스마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신약시대의 초대교회가 ‘귀신’과 ‘영적인 문제’에 맞부딪쳤던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구상의 인간들도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지 씨름하지 않을 수 없는 공통적 관심사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개신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선교 초기부터 현재까지 귀신의 편재를 믿는 샤머니즘 문화에서 자라난 결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혹은 예수의 영적 속성의 교리를 수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용기 목사가 이끄는 순복음중앙교회의 성령 강림의 체험, 방언, 예언 등과 같은 각종 은사와 치유를 강조하는 오순절적 성령운동(펜테코스탈리즘)은 미국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 외에 전통적인 무속 신앙의 형태 속에 녹아 있는 가장 오랜 ‘한국적인 것’을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지역, 즉 인구대비 전도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전라북도가 순수하게 정령신앙(애니미즘)적인 지역이었다는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자유주의 신학자 하비 콕스마저도 최근 들어 자신의 관점을 크게 바꾼 사실이다. 콕스는 1967년 <세속도시>를 통해 기독교의 소멸을 예측했지만, 최근 오순절적 ‘영성’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특히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의 급속한 성장현상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 결과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 속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오순절적 성령운동’과 ‘샤머니즘’ 사이에 ‘긍정적’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면서 이를 21세기 종교의 새로운 지배적 지형이라 보고 있다. ‘영성운동’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전 세계 교회의 ‘펜테코스탈화’, 특히 한국교회의 ‘펜테코스탈화’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지구적 안목 속에서 최근 서구 기독교계마저 ‘영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중시할 때 한국의 개신교, 특히 그 중에서도 주류를 차지하는 근본주의적인 보수적 개신교 진영이 그동안 이룩한 급속한 성장 현상의 기저에는 샤머니즘과 개신교 사이에 ‘제신의 위계질서관’, ‘강신술’ 혹은 ‘접신’, ‘귀신관’, ‘축사’, ‘치유’ 등의 측면과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개신교와 경제발전 에토스 사이의 친화성

  다음으로 한국 개신교의 성장을 설명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은 개신교와 자본주의 혹은 경제 발전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이다. 격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 무속신앙의 ‘공리주의 정신’을 일정 정도 공유한 대다수의 개신교회는 상승적 계층 이동과 물질적 수준의 상승을 추구하는 모든 요소들과 힘을 맞잡았다.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제신들에 대해 공리주의적 태도를 갖는 유교에서는 신이 사람들을 해방시키지 못하거나 구출하지 못하면 그 신은 강등된다. 그런데, (필자가 개신교의 평신도로서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성령’은 신자들의 눈으로 볼 때 건강과 부의 차원에서 정말 ‘해방’을 가져다 줬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따라서 그런 성령은 장려됐다.

  이렇듯 개신교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간 전통적 ‘기복신앙’은 신자 편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물질적 축복’을 제공하는 신의 능력 쪽으로 초점을 모으도록 이끌었다. 또한 일찍이 막스 베버가 강조했듯이 그 같은 ‘물질적 축복’을 소유하는 것이 신앙의 ‘가시적’ 완성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기복신앙에 젖은 신자가 주로 물질적 축복을 위해서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은 개신교가 전통적 종교문화에 대한 ‘적응’을 이룬 것들 중 부정적 측면이라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개신교의 발전은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시기에 이뤄낸 경제 발전과 유사한 양상이었고, 한국의 개신교가 그 자체의 기적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재벌기업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주도한 양상과 매우 흡사하게 개신교의 경우도 ‘성공의 복음’을 강조한 초대형 교회가 한국의 기독교 성장을 거의 독점적으로 선도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초대형 교회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영국의 저명한 종교사회학자 데이비드 마틴의 주장을 따라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소비자 자본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 윤리는 한 때 비즈니스를 도와주는 것으로 여겼으나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의 사례에서는 역으로 ‘비즈니스 정신’이 효율적인 조직과 소비자(즉 신자)의 만족을 보장하는 교회를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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