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민주주의> 특집 대담

 

여러 정치·사회적 논란이 잇따르는 요즘,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관련한 논제들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복잡 다양한 쟁점들을 재사유하고 그것의 지평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추구해본다.

■ 대담 일시 및 장소 : 2월 20일 오후 3시, 후마니타스 책다방
■ 대담자 : 박상훈, 정경섭

 

박상훈(좌), 정경섭(우)
박상훈(좌), 정경섭(우)
 

박상훈 - 정치학자이자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만들어진 현실>(후마니타스, 2009), <정치의 발견> (폴리테이아, 2011)등의 정치학 관련 서적들을 집필, 출간했다.
정경섭 - 진보신당 마포구 당원협의회 위원장. 마포 <민중의집>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지역 정당의 활성화를 고민해 지역 사회와의 유기적인 연계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민주주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민주주의의 지향적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의 실생활에는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야 할까요?

박상훈 우선 민주주의는 본연의 모습이 있는 게 아니란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생활에서는 정치 형태에 관한 걸 말할 수 있어요. 정치체제가 자유롭고 평등하다면 개인이 갖고 있는 자산이나 능력 등이 권력으로부터 불이익을 덜 받아야 해요. 그리고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깝게 기능해야 한다는 건 사람들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서 보람을 느끼고 또 평등한 삶을 기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거죠. 그런데 역사를 거듭하면서 그걸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지금껏 민주주의가 발전해온 양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의 이상적 모습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불만을 만들어낸 거죠. 어떤 나라든지 민주화 이후에 모두가 평등하게 되리라는 ‘기대 혁명’을 겪지만 그 기대는 실현되지 않아요. 그러면서 실망을 겪고 민주주의에서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현재는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적 기대가 실현되지 못해서 쌓인 분노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요. 민주주의라는 말도 너무 비대해졌어요. 민주주의 안에 사회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등의 온갖 것들을 쏟아 넣고 있어요. 민주주의가 실천할 수 있는 한계를 인지해야만 다른 가치와 병존이 가능해요. 민주주의의 첫 번째는 참여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공동체를 이끌 적당한 사람을 뽑는 문제, 세 번째는 뽑은 대표의 권력 행위가 해당 공동체에 얼마나 유익했는가, 공동체의 규범과 양식에 얼마나 적합했는가, 즉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참여·대표·책임이라는 세 가지 규범이 조화롭게 적용되는 구조여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어요.


정경섭 민주주의가 실생활에서 잘 작동하려면 토론을 해야 하고, 토론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해요. 제가 2년 전에 스웨덴에 가서 노동자교육협회(ABF)라는 곳을 방문했어요. 예전에 유명했던 팔메 수상이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ABF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다 이뤄졌다고 말했을 만큼 중요한 곳이에요. 전국적으로 ABF에 소속된 3만5천 개의 소규모 토론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발달돼 있어요. 토론자는 20명 내외의 일반 시민이고 스웨덴 국민의 65-70%가 그 모임에 가입돼 있어요. 토론의 주제도 굉장히 다양해서 삶의 모든 국면을 담고 있죠. 그들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토론 공간을 더 늘리고 활성화시키는 게 스웨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핵심이라고 얘기해요. 이처럼 일반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참여하여 자기의 생각을 교류하고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과연 한국 사회, 또는 우리 지역에는 그런 공간이 있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요.


요즘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과연 정당과 대의제, 선거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합당한 제도인가요. 그것들은 필수불가결한 개념인가요.

박상훈
‘대표’는 민주주의의 본질이에요. 공동체를 이끈다는 건 속해 있는 자원이나 영향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에 통치자를 뽑는 건 민주주의의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죠. 모든 인민들이 자신의 삶을 직접 기획하고 온전히 실천할 수 있다면 정치도, 사회도 필요 없어요.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덜 억압받으려 공동체를 꾸리고, 그러다보니 공동체의 영향력과 권력을 어떻게 다루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공동체를 일정한 윤리적 가치에 의해 유지해야 할까 고민하니 대표가 나오는 거죠. 즉 대표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뽑고 통제하느냐 하는 게 민주주의의 관심이에요. 대표를 부정한다면 무정부주의라고 볼 수 있죠. 지금 우리가 다루는 민주주의의 큰 문제는 관료제나 대기업 같은 실제적인 힘에 관한 거예요. 그들에 맞서기 위해선 보통 사람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조직해 그들의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도 보살펴줄 수 있어야 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현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건 정당인 거죠.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필요 여부를 묻는 건 형용모순이에요.

제 생각엔 (특히 좌파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해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재미있을 법한 상상들도 하지만 여전히 다수는 (특히 유럽에서는) 대의제와 선거, 정당에 대한 신뢰가 높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대의제를 제대로 발휘해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이익들을 잘 대표하고 대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게 맞아요.

정경섭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풍조 때문에 정당, 선거, 대의제의 효용성이 의심받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당이 없으면 어떤 걸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상상하기 힘들어요.  대의제나 정당이 과연 필요한지 묻는 지경까지 간다면 다른 유효한 문제들이 묵살될 거예요. 선거에 국한시켜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하루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유권자들이 스스로의 이익이나 가치를 충분히 곱씹어볼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해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죠. 스웨덴은 한 달 가까이 선거를 해요. 모든 공적 공간(민중의 집, 전철역 대합실, 도서관 등)에 투표소가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야 해요.


오늘날 한국 정당 정치의 문제나 한계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상훈
우리 사회의 중대한 논쟁 중 하나가 기존 정당이 문제라서 시민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의 이면에는 시민운동 세력이 정치에 많이 들어오도록 정당이 개방돼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 주장은 불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한국 정치에 악영향을 미쳐요. 이미 엘리트 교체는 많이 됐어요. 그런 주장도 결국 엘리트 순환론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왜 정치가 나빠지는지 생각해야 해요. 정당이 아닌 시민정치의 길은 없어요. 핵심은 아예 종류가 다른 정당(제3정당, 또는 진보정당)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 민주주의의 첫 번째 경로는 대중정당이 기존 정치세력인 부르주아나 귀족 중심의 의회제를 때렸기 때문에 민주화가 시작됐어요. 우리는 그 경로가 제대로 개척되지 못했죠. 한국 정치의 최대 과제는 정당들의 분포가 사회의 갈등 구조와 만나야 하는 거예요.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들어오면서 일으킨 변화는 엄청났어요. 10석 밖에 안 되는 작은 정당이 기존 정당들에게 큰 충격을 줬기 때문에 저번처럼 무상급식을 두고 얘기할 수 있는 기반이 됐던 거죠. 정당이 개방될 게 아니라 정당체제가 개방돼야 합니다. 지금은 양당 중심의 정치 구조가 새로운 바람을 막고 있어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보수적 거대 양당 구조 안에 자꾸만 새로운 조류들이 말려가는 겁니다. 시민세력의 정당 참여나 석패율제도, 모바일 투표 같은 것들은 사실 별 의미 없습니다. 정당의 개수가 많아져야 해요. 정당이 몇 개인가,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의 이념적 거리가 얼마인가를 가늠하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알 수 있어요. 정당이 많아지면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져 정치가 더 피곤해지지 않을까 하는데 그건 주류언론과 지식인이 만든 편견이에요. 다당제인 국가들이 대체로 투표율도 높고, 사회도 훨씬 평화롭고, 불평등지수도 낮고, 여성 정치인들도 많아요.

정경섭 일단 범진보 세력들이 제도권 정치 내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그러기엔 아직 진보파가 담론 형성에 좀 취약한 것 같아요. 담론을 형성하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능력도 부족한 것 같고요. 이를테면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같이 묶일 수 있는 의제인가 자문해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대학은 안 나와도 잘 살 수 있는데 의료는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들을 포함해서, 진보파 안에서 논쟁과 토론을 통해 연대를 느끼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른 진보정당이라도 원내에 많이 진출해야 진보신당도 같이 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2004년에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20%로 나왔을 때 대우(구청장 면담이나 구에 대한 요구 사항 같은)가 엄청 달라지더라고요. 늘 선거로 정치를 할 수 없으니 여론조사가 평가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어떻게 정치 원리로 작동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비판적 지지를 떠나서 선거의 작동 원리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다면 진보세력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에선 민주주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계속적으로 보완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자체로 대체해야 할 대상인가요.

박상훈 민주주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체제입니다. 민주주의 안에서 최대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투쟁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그게 민주주의가 열어놓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고, 또 혁명을 불가능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맑시스트들은 초기에 민주주의가 혁명의 안티테제라는 걸 알고 괴로워했어요. 민주주의는 마치 시지푸스 신화처럼 끊임없이 실수하고 싸우고 교정하고 타인들과 연대하며 성과를 이루고자 해야 합니다. 민주제 안에서 자신의 이념을 다른 가치와 결합시켜야 하는 거죠. 진보와 보수가 선의의 경쟁 관계에 있어야 해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진보도 힘이 세져야 하는 거죠. 진보만 있는 정치체제도 상상이 불가능해요. 어느 민주주의든 평균적으로 보수파가 조금 더 우위에 있어요.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기존에 있는 힘을 부정하지 못하는 체제이기 때문이죠. 진보와 보수가 경합을 통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모습을 교정하거나 투쟁할 수 있는 형국이어야 해요. 민주제 안에서 자신의 정치관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민주제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갖는 것,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경섭 박 선생님 말씀처럼 국가가 있는 한 다른 방식의 정치체제를 상상하기 어려워요. 세세하게 보완하는 방법을 말하자면, 일단 진보정당 의석을 늘리는 거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보완책들이 필요해요.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대안적 민주주의(또는 민주주의의 대안)는 무엇인가요.

박상훈
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한 생각은 많지 않아요. 지금 인류 최대의 고민은 자본주의를 수정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본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어요. 자본주의 대안에 대한 모색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이 고민을 한 뒤에 재벌 개혁 같은 걸 주장해야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성과를 나쁘게 만드는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문제와 그 대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겁니다. 지금 나와 있는 건 온정주의 밖에 없어요. 멘토-멘티라는 개념도 결국 온정주의죠. 사람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해줘야지 그저 위로해주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어요. 경제주체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경제체제의 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더 많이 연구해야 합니다.

정경섭 두려워 말고 정당에 많이 가입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당 안에서 활동해보는 것을 금기시하는 건 좋지 않아요. 늘 하는 말이지만, 참여하는 게 중요해요. 자신의 지향점이 어디와 맞는지 찾아내는 과정들을 겪는 거죠. 설령 자신과 맞는 정당이 없다고 답을 내리더라도 그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정리 오창록 편집위원 | needyourey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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