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 / 음악평론가

 
 



어느 종족이나 자신들의 독특한 미학이 담긴 음악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대, 지역, 역사적 배경이 작용한다. 그러나 지역을 초월한 음악이 있다. 바로 집시음악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집시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생활방식을 지녔다. 이들은 한 지역의 춤과 노래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집시 스타일’이라는 고유한 문화를 창조했다.

집시들은 오랜 세월 이집트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지로 쫓겨 다녔다. 그 가운데 흩어진 부류가 이베리아 반도로 흘러들어 15세기에 스페인 남부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아랍의 지배하에 있었다. 스페인이 아랍으로부터 독립전쟁에 돌입하자 집시들은 스페인의 편에 선다. 이후 800년 간 아랍 지배를 받던 스페인이 독립하자 집시들은 큰 탄압 없이 스페인에 거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집시들은 정열적인 플라멩코를 만들어낸다.

집시, 그들은 누구인가. 정확한 혈통은 알려져 있지 않고 언어학적으로 산스크리트 계통임이 밝혀졌다. 다만 11세기 인도 북부에서 이슬람의 침략을 피해 고향을 떠난 종족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어느 지역에서도 정착민들은 집시들을 반기지 않았다. ‘우물에 독을 넣는다’, ‘아이를 유괴한다’는 소문들은 그들을 괴롭혔으며, 그들은 정착하려 하면 재산을 빼앗기거나 추방당했다. 심지어 기독교 사회에서는 악마의 상징이나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몰려 화형당하거나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던 집시들은 한 지역의 물품을 다른 지역에서 파는 떠돌이 박물장수가 됐다. 이들은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모으고 물건을 팔았다. 절도는 물론 매춘도 서슴지 않았다. 삶이 어려워지면 예술문화는 내면적 성숙을 가져오는 법. 집시들은 유랑민 특유의 향수어린 정서와 멜랑코릭한 음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정착한 집시들은 손가락을 퉁겨 소리를 내거나,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 박자를 맞추는 기교적 성향의 즉흥적인 춤과 음악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스페인에 만연한 아랍문화와 가톨릭,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주했던 유대인들의 문화가 융합되고 화려함이 더해져 플라멩코가 완성된다. 집시들은 강렬하고 역동적인 춤인 플라멩코에 삶의 애환과 분노를 녹여냈다.

플라멩코에는 기타가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플라멩코는 플라멩코 칸테(노래), 플라멩코 바일레(춤), 플라멩코 토게(기타 연주) 등 세 가지를 통틀어서 이야기된다. 플라멩코에서 기타 연주자는 주어진 주제에 의하여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는데 이를 ‘팔세타’(Falseta)라고 한다. 여기에 내적으로 플라멩코를 지배하는 강력한 ‘기’인 ‘두엔데’(Duende)가 작용하여 깊고 감정적인 플라멩코 토게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플라멩코 음악을 흡인력 있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 관중들의 ‘올레’(추임새)와 춤꾼들의 다양한 동작과 연기가 곁들여지고 ‘센티미엔토’(위엄있고 슬픈 표정)가 어울려 플라멩코가 완성된다. 집시의 한이 만들어낸 플라멩코는 이제 집시만의 문화를 넘어 스페인이 자랑하는 민속 예술의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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