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 연극학과 박사과정

이양구 / 연극학과 박사과정
이양구 / 연극학과 박사과정

  지난 달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다. 서울시내 초등학생 전부에게 무상급식, 서울시립대의 등록금 반값 실행, 서울시 산하기관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등이 실시됐거나 곧 실시될 예정이다. 당연한 일들에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일까.

  이번 서울시장 선거 기간에 나는 주변 연극계 사람들과 선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선거에 무관심 하거나 그다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단순한 무관심,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선거를 하지 않겠다, 선거를 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므로 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의견까지 이유는 다양했다.

  대화를 통해 나는 플라톤이 철학자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를 주장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민주주의는 불행하게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비율의 의사 결정 권한을 주는 매우 ‘이상한’ 정치체제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주권자가 마땅한 관심과 책임감을 기울이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난파당한 선박에 불과하다.

  연극이 제의에서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신이 인간사를 주관한다고 믿었던 시대에 제의는 재앙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중대한 역할을 떠맡았다. 특히 테베에 밀어닥친 재앙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했던 오이디푸스 왕의 일화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이디푸스처럼 주권자가 공동체의 정치적 운영에 대해 책임감있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스 비극은 가르친다. 이는 민주주의가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그리스 비극이 가장 성대하게 시연됐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때 연극은 시민을 교육하는 정치학교가 된다.

  오늘날 한국연극의 위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한국연극이 정치적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도 그 중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극장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연극은 사회가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 연극인들이 작업을 통해 현실과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 안에서 아늑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은밀히 숨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아무튼 나는 평소 애정이 많은 나의 대학 후배들에게 선거 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거면 어디 가서 연극학과 나왔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게 어떻게 남에게 하는 소리일 수만 있으며 그저 선거에 대한 얘기일 수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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