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지 / 사회학과 석사과정

‘집’은 단순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자산축적 수단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불안한 내일을 위한 개인화된 복지 원천이 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집’의 소유를 꿈꾸는 시대에, 상품·자산·자본으로서의 ‘집’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주택의 자산화, 주택시장 과열, 자산불평등 심화로 나타나는 주거자본주의는 유럽의 복지국가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의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전 지구적 현상으로만 접근한다면, 혹은 이와는 반대로 한 나라 차원의 문제만으로 간주해 버린다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즉, 주거자본주의의 보편적인 경향 속에서도 각 나라마다 주택 제도와 주택을 둘러싼 사회적 반응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각 사회의 정치와 정책이 가져오는 주거자본주의 체제의 차이는 구조적·일상적 수준에서 서로 다른 사회적·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나아가 정당정치와 정부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국 주거자본주의를 국제비교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주택 문제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차이까지 인식함을 뜻한다. 이를 통해 한국형 주거자본주의의 독특한 제도적·구조적 형태를 포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위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각 나라별 주택 소유 비율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집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반면 한국을 포함해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이는 미국, 영국처럼 주택 금융화의 정도가 높은 사회에서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이 비교적 용이한 반면 한국의 경우 자금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중이 낮은 나라들 안에서도 임대부문에서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국은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민간 임대의 영역에 존재한다. 주거를 공적 문제로 보기 보다는 민간 또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민간 임대 비중이 높은 독일의 경우, 세입자 보호를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가 잘 갖춰져 있다. 또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낮은 임대료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민간임대인에게 정부가 여러 지원을 해서 사실상 비영리 사회임대 기능을 하게끔 유도한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주거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택의 공적 부문, 즉 공공임대 비중이 낮다는 점과 이를 독특한 민간임대 제도인 ‘전세’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공공임대 영역을 비교해보자.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공공주택을 20% 이상 확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2007년도에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 재고의 3.6% 수준에 머물렀다. 입주자 선정 또한 극빈층 위주로 하고 있어 사회적 격리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공임대 비중이 낮다는 것이 단지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문제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주택 소유층/비소유층 간의 사회계층화와 주택 소유에 대한 사회적 관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국처럼 공공주택의 공급량이 적고 주거의 질이 낮아서 사회적 낙인효과가 발생할 경우, 개별화된 민간임대 계약에 의존하는 많은 사람들은 주거에 대한 집단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거나 이를 공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루 빨리 주택을 소유하려는 개인화된 해결방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택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주택 소유층과 불안정한 주거상황에 놓인 광범위한 주택 비소유층 간에 구조적 분리가 강화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덧붙여 주택 비소유층의 취약성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낮은 공공임대 비중을 대체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민간임대 형태인 ‘전세’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입자 관점에서 월세처럼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저축’이라는 점에서 주택 구매를 위한 기초자금으로 기능해온 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전세 제도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세입자의 지위와 권력을 약화시킨다. 앞서 살펴보았듯 집주인의 일방적 계약해지를 방지하는 법적 규제 장치가 없기 때문에 전세 거주자는 주거 안정성 측면에서 열악한 위치에 놓인다. 이와 동시에 주택 가격이 상승할수록 집주인과 세입자의 자산 불평등은 더욱 벌어지게 되며 전세금이 집주인의 투기자금으로 이용되는 제도라는 점에서 사회적 정의를 크게 침해한다. 뿐만 아니라 전세는 철저하게 개인 간의 사적 계약관계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정치 과정과 공론장 내에서 공적인 의제로 제기되지 못한다. 이러한 총체적 취약성으로 인해 주택 비소유 계층은 주거 문제의 공적 해결보다는 주택 소유 계층으로 하루라도 빨리 진입하는 것을 절대적 과제로 삼게 된다. 모든 계층이 ‘주택 소유자 사회’의 이상을 추구하게끔 만드는 구조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주거안정 기반 마련해야
이러한 구조는 각 계층마다 각각의 방식으로 고통을 안겨준다. 최근 전·월세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들의 취약성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세입자는 당장 전세자금 인상분을 마련해야 하거나 더 작은 집 또는 더 먼 집으로 옮겨야 하고, 월세 지출을 위해 소비를 축소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전·월세값 폭등이 건강보험료 폭등으로 이어지는 등 주거문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소득계층이 낮아질수록 상대적인 주거비 부담은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저소득층에서는 ‘자가에서 전세, 전세에서 월세’로 내려가는 주거 하향 이동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은 밖으로, 열악한 곳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또한 이는 뉴타운 사업 등 대대적인 도심광역 개발로 인해 다수의 세입자들을 잠재적인 철거민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과 더불어 불평등의 공간적 구획화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구조적 환경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 구매로 인해 매달 엄청난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의 증가가 단적인 예다. 빚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이 노후 대책일 수도 있겠지만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에게 집은 힘겹게 떠안고 살아야 할 부채일 뿐이다. 이처럼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공유하는 인구는 많지 않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빚에 허덕이거나 불안정한 전·월세 제도에 묶여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즉 주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불평등과 서로 다른 계층에게 미치는 상이한 효과들에 대한 고려 없이 몇몇 단순한 정책만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출규제는 투기와 가계 부채를 억제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자가소유 외의 주거대안과 안정적 소득보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장기적으로 경감시켜줄 수 없다. ‘내 집 마련’ 꿈에 대한 다른 대안, 주거를 사회권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를 조성해야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적 환경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많은 나라들에서 주거와 관련된 공적 안전망이 처음부터 포괄적으로 발전돼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택의 자산화가 진전되는 과정과 동시에 확대돼 온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나 집주인의 시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거 약자들의 연대와 행동, 지식인과 전문가의 지원,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과 여론 조성, 정부·정당의 강력한 정책 추진 등이 모여 사회적인 주거 안정의 기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집을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는 공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집’이 지니는 의미를 바꿔야 한다. 때문에 지금의 현실을 개혁하려는 정치적 기획은 이러한 소유자 중심 사회와 제도적 환경에 저항하고 주거의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견고한 시민사회 기반 위에 서야만 한다. 이를 통해 ‘집’은 주거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불평등을 극복하는 공적 복지의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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