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기를 꿈꿔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루키아노스에 의해 달 여행에 대한 공상적인 이야기가 쓰였으며, 동양에서는 당현종이 도술을 이용해 월궁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아득한 밤하늘과 달은 인류에게 오랫동안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낭만과 환상의 은유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이런 인류의 꿈이 2차 세계 대전 직후, 이른바 냉전시대에 실현됐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우주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냉전시대의 일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의 원리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목적은 군사적 이용에 있었다. 이를테면 장거리 정찰기보다는 정찰용 인공위성의 효용이 더 높다는 점, 또 당시 미개발의 영역을 선점했을 때 얻을 수 있을 전략적 가치 등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한편 당시 냉전 체제였던 미·소 양 진영 간의 국가적 위상 경쟁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후, 이를 두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다”라고 강조하였던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급격하게 촉진된 우주개발의 움직임은 냉전 체제 하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던 대리전이 우주개발 경쟁이라는 측면으로 나타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쟁의 초반에는 소련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와, 최초의 우주비행사 가가린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을 압도했다. 이를 만회하고자 미국은 막대한 자원과 인재를 투입해야 했다. 그 결과 최초의 달 표면 착륙은 1969년 7월, 미국의 몫이 됐다.

양 진영 간의 경쟁으로부터 촉발된 우주개발 경쟁은 이후 프랑스, 일본, 중국 등으로 번져나가며 종래의 양극 체제를 무너뜨리고 우주개발의 다극화 체제로 전이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인도, 중국 등의 개발 진척이 미국과 러시아를 바짝 따라붙는 상황에 이르렀다.

황인찬 편집위원 | mirion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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