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국 /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9/11 사태에 이어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감당해야 할 중동의 범위를 넓혔다. 이전의 중동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걸프만 지역과 시리아·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포괄하는 마쉬리끄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제리·리비아·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 마그립 지역부터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을 포함한 ‘확대 중동’으로 개념이 확장됐다. 세계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지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처한 중동 분쟁의 수렁이 더욱 깊고 넓어진 것이다.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정책을 앞세운 오바마 행정부이지만,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의 이상이 적용되는 데 넘기 힘든 장벽이 된다.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 앞에서는 현장 정치가가 행할 수 있는 운영의 폭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란 민주화 운동과정을 애써 외면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증강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중동 정책의 한계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됐다. 2010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중동 민주화 시위는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집트와 리비아 시위에 직면한 오바마 행정부의 달라진 대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한적 인도주의적 개입’ 혹은 ‘제한적 자유주의적 개입’이다. 그러나 이들의 민주화 시위는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의 제한적 자유주의적 개입, 오바마 행정부 내의 혼선 그리고 중동에서의 영향력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중동’은 하나의 통합된 사회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아랍만 하더라도 그 안에 22개의 국가가 있다. 그리고 최근의 중동사회 변동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각각의 국가와 지역은 매우 이질적인 자연환경과 경제구조 및 정치구조, 그리고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튀니지는 이집트와 다르며, 이집트는 리비아와 완전히 다르다. 민주화 운동이 국가별로 상이한 전개 과정 및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이와 같은 근본적 이유 때문이다. 중동 각국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중동 정책은 제한적 자유주의적 개입을 각 나라별 맞춤식으로 처방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립된 미국

  그러나 미국은 현재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둘러싼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와 예멘에서는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고 있고,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은 여전히 중동 지역 곳곳에서 불편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불안정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투쟁의 명분과 조직을 여전히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중동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미국이 언급도 못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친미 왕정국가들의 상황은 미국의 입지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최근 리비아의 상황을 보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으로 반군 지원에 주력했고, 미국은 ‘배후에서 이끌기’ 전략을 유지했다. 바로 ‘제한적 개입’이다. 과거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갖고 유엔 동의도 없이 전면 침공했던 것과 달라 보인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개입에 앞서 안보리 결의를 거치고 아랍연맹의 지지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8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리비아 개입은 우리가 하나로 뭉치면 국제사회가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고, 이는 사실상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민주화’를 이야기 하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반군의 트로폴리 점령이라는 ‘성공’이 나토 군사개입의 정당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구를 위시한 외세의 개입은 오히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입지를 넓히는 데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 낸 ‘아랍의 봄’이 민중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경제적 기회를 가져다준다면 아마도 이슬람주의자들의 활동은 한정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발견하고 있듯이 실상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그들의 삶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희생의 대가가 고작 혼란이라면 이슬람주의자들은 보다 큰 영향력을 확보해가기 시작할 것이다.

                                         중동을 둘러싼 국제적 이해관계

  사실 중동 지역 국가들 사이의 갈등 또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중동의 국가들은 단순히 국제정치적 관계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놓고도 경쟁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집트가 리비아의 에너지 자원에 내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 지역의 국제관계적 문제들에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이 여러 차원에서 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오는 9월 2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엔총회에 독립국가를 선언할 예정이다. 서로 국익을 우선하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당연히 반대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이지만, 과반수 이상의 회원국들이 독립을 승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변 중동국가들이야 두 말할 것 없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열망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즉, 팔레스타인의 안정은 주변 전제체제 국가들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찬성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유대인의 이스라엘이 싫어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이야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변 아랍국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고 신뢰하기 어렵다.
  한편,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이권 다툼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중동 지역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나토는 유럽안보를 위해 방어와 억제라는 기본정책을 고수하면서, 에너지 공급 안전성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은 석유개발의 기존 계약관계가 붕괴된 리비아의 유전에서 자국의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리비아 반군 측이 프랑스의 지지를 대가로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35%를 프랑스에 할당하기로 비밀리에 약속한 서한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아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왜냐하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유가 석유를 둘러싼 이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리비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예멘이나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 당시 군중에 대한 발포로 수 백 명의 사상자가 났을 때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던 서구 열강들이, 유독 리비아에 대해서는 군사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잘 설명한다. 특히 적극적으로 리비아 사태에 군사개입을 시도한 프랑스의 태도는 당혹스러울 정도였는데, 이는 유럽의 정유공장들이 리비아 경질유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리비아 석유의 85%는 유럽 국가들로 공급되고 있다. 따라서 리비아 사태가 심각해지면 유럽 국가의 석유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는 군사작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서구 열강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안정적인 석유수급을 넘어 향후 ‘유전과 연계된 패권의 장악’이라는 틀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라크에서처럼 리비아의 국영 석유체제를 와해시키고 민영화함으로써 석유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소유권을 해체해 자국의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이를 장악하도록 만드는 것이 서방국가들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중동 문제는 이토록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니 중동의 미래는 “알라후 아을람(오로지 신만이 아신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들의 미래에 평화와 번영이 놓이길 바란다는 희망의 말에는 “인 샤 알라(신께서 원하신다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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