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 일본 바이카여대 강사

  2001년 9월 11일, 미국 국내선 항공기 네 대가 공중에서 납치돼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뉴욕을 상징하는 세계 무역 센터 빌딩과 펜타곤 등에 잇달아 충돌했다. 승객 266명과 90여 개국 3천500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이 충격적인 테러는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에 보도됐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이날 발생한 테러는 전세계인들에게 놀라움과 공포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주범을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 카에다’로 지목한 후, 세계적인 규모의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후 부시 행정부는 테러 조직의 근절이 최선의 방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각국에 ‘테러와 자유 간 양자택일’을 촉구하며 함께 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의 적대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이후, 부시 정부는 2002년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의 3개국을 국제 테러 지원과 대량 파괴 무기 개발, 민중 억압을 자행하는 ‘악의 축’이라 규정하며 반테러 전쟁의 다음 표적으로 삼겠다고 표명했다. 특히 미국은 이라크가 IAEA(국제 원자력 기구)의 사찰을 무시하고 유엔의 결의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숨겨놓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전쟁반대운동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결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미국과 영국군에 의해 이라크 전쟁은 시작됐다. 이는 테러 조직과 그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을 주장하는 부시 독트린이 적용된 예로 판단할 수 있다. 훗날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한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적인 정권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이후 세계 각지에서 무차별적인 테러의 발발과 무장 반미 투쟁이 확산하게된 계기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라크의 정세는 더욱 혼란스러운 와중으로 몰아넣어지게 되었다. 사실 이라크에 대한 미국 전략의 핵심은 세계 매장량 2위인 풍부한 석유 자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석유 개발권을 획득함으로써 기존의 사우디와 OPEC이 중심이 돼있는 석유 독점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차후 에너지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려는 계획 또한 세우고 있다.

변화된 미국의 중동 정책

  9·11테러 이후 10년이 지난 올해 5월 초, 미국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을 기점으로 새로운 중동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중동 국가 내에서 미국의 이미지 향상을 꾀하는 동시에 미국이 기존의 이스라엘 친화적인 중동 정책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했음을 드러내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알 자지라와 AFP통신은, 미국이 최근 불고 있는 아랍 민주화 운동 열풍에 힘입어 중동 국가에 경제적 지원을 함과 동시에 막대한 재정 적자를 안고 있는 군사비용의 절감과 에너지 확보라는 미국 내 국익을 우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난 5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 연설을 통해 아랍 세계에 불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변화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는 그간 미국이 취해왔던 대 중동 정책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아랍 일간 알 하야트 지의 마흐무드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민족의 편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지금이야말로 아랍 세계의 평화를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연설이 중동 국가의 민중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내세운 정책은 철저하게 현실성이 결여돼 있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아랍 민주화 성취를 위한 젊은 세력, 리얼리즘에 충실한 이스라엘 정치 세력, 그리고 스스로를 젊음과 변화의 상징으로 포장한 오바마 대통령, 이렇게 삼자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구도 속에서 단순히 오바마의 연설을 근거로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서 아랍 민족 편으로 돌아섰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이번 연설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무래도 ‘아랍의 봄’에서 분출되고 있는 민주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혈기 속에 오바마가 내세우는 ‘변화’의 이미지를 편승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의 노력을 통해 빈 라덴을 비롯한 일부 테러리스트들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중동 국가와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9·11 테러를 일으켰던 알 카에다는 현재 예멘과 중·북부 아프리카까지 조직을 확대시켰으며 세계 곳곳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랍세계 내에서의 반미감정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아랍 민주화 혁명의 불씨를 제공한 이집트에서조차 미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70-80%를 넘는다고 한다. 그동안 유지해 온 미국의 중동 정책의 결과물이 아랍 민족의 반미 감정을 고취시킴과 더불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규모와 활동 범위를 넓히게 만든 것이다.

민주화 혁명과 중동 정책의 미래

  지금까지 미국이 취했던 중동 정책을 살펴보면 크게 1)테러 조직의 완전 근절, 2)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통한 에너지 자원의 확보와 통제, 3)이스라엘에 대한 안전 보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현재의 미국 정부는 국익을 위해 지금껏 취해 왔던 이러한 정책들이 아랍 전역에 걸쳐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은 중동 국가들의 정권에 “언론의 자유,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법 아래에서의 남녀평등,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개혁과 민주화의 이행’이라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새로운 정책의 이면에는 현재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로서 중동 국가들을 가운데에 놓고 친미 세력과 반미 세력을 저울질하며 더 높은 실리를 추구하려는 속셈이 있는 지도 모른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이집트, 그리고 최근 리비아에서 발생한 사태까지. 아랍 세계는 현재 ‘대규모 시위’의 물결 아래 미국과 중동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 대학교의 이케우치 교수에 의하면, “중동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운동은 ‘정권’으로부터 ‘국민’으로, ‘안정을 우선시 하는 정책’으로부터 ‘공정함을 전제로 하는 안정화 정책을 모색하는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오바마 정권이 과거 부시 정권이 취했던 중동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 그친다면 미국의 중동 정책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진다. 현재 중동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랍 민주화의 물결이 지속되는 한 미국의 중동 정책의 방향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롭게 정립된 중동 정책에 대한 미국 정치권 내의 대립, 이스라엘과 다른 중동 국가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 그리고 중동 국가들의 민심을 잡기 위한 실질적인 협력 방안 등이 제시되지 않은 지금, 앞으로 미국의 중동 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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