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근 /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

중동이란 지리적으로 고정된 범위를 가진 공간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를 중동으로 받아들인다. 이 중동 지역의 주민들 대다수는 이슬람을 믿는다.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이 출현한 이후에 가장 먼저 이슬람이 확산된 곳이 중동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코란의 언어인 아랍어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이 아랍 국가들이다. 중동 주민의 60% 이상이 아랍인이며, 그 나머지 주민들은 터키인, 페르시아인이 다수를 이루고 그 이외에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등이 있다. 이러한 다민족 사회 속에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우위를 확보한 가운데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와 다른 여러 종교 공동체인 밀라 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공존을 유지해 왔다. 이 사회에서 한 인간의 사회적 지위에는 민족이나 국가보다도 그가 무슬림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훨씬 큰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일부 아랍 기독교도에 의하여 민족주의가 제창됐으나, 중동 사회의 종교 우선의 분위기로 인하여 그 호응도가 미약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오스만 제국이 사라지고, 그 영토에 영국과 프랑스의 신탁통치가 시행되자, 이슬람이 기독교 국가의 통치에 저항하는 중요한 구성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에서 물러나게 됐으나,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을 몰아내고 건국되자 민족주의는 중동 혁명의 물결에 주도적 흐름이 됐다. 그리고 중동 각 국가들은 그들보다 앞선 서구를 따라 잡기 위하여 세속지향적인 민족주의를 지향했다. 외세에 저항하는 나세르의 등장과 함께 세속지향적인 민족주의는 구 서구 열강들과 가까웠던 중동 제국 정부들을 흔들었다. 이런 정치적 흐름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좌파적 사회주의와 함께 중동 지역을 움직였다.

그러나 1978년 호메이니 주도 하에 이란 민중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자 종교적 성격을 띤 이슬람주의 세력이 중동 지역의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변했다. 1978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 종교적 성격을 띤 집단의 활동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민중의 손에 의하여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후에 이슬람주의 조직들이 학생, 전문가 단체, 도시 빈민가 등에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혁명 추구 세력의 변화와 상관없이 정권을 쥔 세력은 여전히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장기 집권을 하면서, 정권을 세습하는 것이 일반적인 중동의 정치 흐름이었다.

중동의 국가들은 독재 정권 하에 전반적으로 약간의 총체적 생산의 증가를 이루기는 했으나, 부패한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자들의 집단에 부가 쏠리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국민들의 고통과 불만이 증가해 왔으며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급격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불만은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 위성 TV, 휴대폰, 블로그 등에 의하여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이겨내고 조직화된 분노로 사회에 표출됐다. 튀니지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은 튀니지 대통령인 벤 알리 가문의 횡포와 탐욕에 대한 분노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2011년 1월 14일 벤 알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고, 중동 각국의 민중 혁명을 부추겼으며, 2011년 1월 25일 이집트에서는 혁명의 불길을 당겼다. 2010년 내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권력세습 시도와 모든 야당 정치 세력이 거부한 채로 자행된 부정 선거, 마약을 나누어 갖는 경찰들의 모습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가 체포되어 살해된 칼리드 사이드 사건 등은 1�25혁명이 튀니지 혁명의 성공과 함께 기름을 부은 불과 같이 타올라 결국은 군부가 민중 편을 들게 만들고, 2011년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중동 각국에서는 시위와 반정부 투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상황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민주화 시위와 투쟁의 원인에는 비슷한 측면도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종파 문제, 종교적 사고의 차이, 민족적 갈등 등 여러 가지가 원인이 되고 있으며, 그 반응과 결과도 다 제각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비교적 평화롭게 국가지도자의 교체가 이뤄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부족주의나 종파주의가 강하여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내란 상태 속에서 민주화의 길을 걸어가는 나라도 있고, 전혀 집권층의 흔들림이 없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이번 중동의 민주화 혁명 물결에는 과거와는 다른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1978년 이후 중동 혁명의 물결은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력이 주도를 했다. 현재 이들은 민주화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집권층과 협력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은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주장하고는 싶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젊은 세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현대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 위성TV, 휴대폰, 블로그 등을 이용하여 알리고, 스스로의 힘을 조직화하고 있다. 오늘날 중동 각국은 어느 나라보다 젊으며, 그 나라의 젊은이들은 과거의 세대에 비해 더 배웠지만, 만족할만한 일거리, 의식주를 위한 생활환경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이전보다 중동 이외의 세계에 대해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혁명을 이끌었던 과격 이슬람주의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카이로 타흐릴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모습과 구성에서 잘 나타난다. 그 안에는 많은 젊은 여성들과 기독교도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과감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외치고, 기독교도들도 무슬림들과 같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무슬림들이 예배를 볼 때 기독교도들은 그들의 예배가 방해되지 않도록 손에 손을 잡고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도와줬다. 무슬림 대중들은 기독교 찬양대가 찬양을 부르도록 장소를 제공했고, 목사가 무슬림을 향하여 설교를 하도록 허락했다. 시리아, 리비아의 혁명의 물결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수염을 기른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라 여느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중동의 민주화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들의 역사 속에 지켜져 온 이슬람공동체인 움마가 국가의 바탕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수의 시민들이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들의 이런 힘과 행동은 정부의 탄압을 이기고 중동을 좀 더 자유로운 나라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위에서 강요하는 혁명이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혁명이며, 중동 사회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민주사회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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