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음 / 과학저술가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돼지와 닭이 산 채로 혹은 커다란 자루에 담겨 땅에 묻히는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많이 걸러낸 영상이라도 상상을 자극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더한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전염병은 인간의 심리적 한계선을 넘어선다.

    최근의 전염병은 국경도 넘고, 기후에 따라 정해지는 분포 범위도 넘고, 생물학적 종의 경계도 넘는다. 그리고 인류가 인위적으로 나눈 수많은 경계선을 넘나든다. 신종플루나 구제역은 전염병을 다루는 역학이나 가축을 다루는 축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사회, 문화, 정치, 무역, 교통, 국제관계 등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뒤얽혀 있다. 따라서 역학, 바이러스학, 세균학, 조류학, 수의학, 생태학, 의학, 동물학, 미생물학, 농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가 하나로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전염병이 통섭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전염병의 원인

   연구자들은 지금이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라고 말한다. 광우병,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구제역 등 최근에 전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들을 떠올리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전염병의 새 시대를 연 요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대규모로 일어나는 빠른 이동과 세계화를 들 수 있다. 전 지구적으로 상품과 사람의 이동이 너무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한 곳에서 발생한 질병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는 것이다. 사스도 신종플루도 구제역도 발생한 것을 알고 격리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병원체를 지닌 사람이나 화물이 이미 국경이나 검역소를 넘었던 것이다.

    가축을 대규모로 밀집시켜 사육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비좁은 곳에서 북적거리며 자라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원체에 저항력이 떨어진다. 또 어느 한 동물이 감염되면 순식간에 전파된다. 이런 문제를 잘 알기에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가축에게 항생제를 대량으로 투여하지만 항생제는 내성을 띤 새로운 병원체를 출현시키며,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여러 종류의 동물을 한곳에 모아 키우는 행위도 전염병의 출현과 확산에 기여한다. 중국 광둥의 야생동물 시장은 사스의 진원지로 여겨진다. 수백 종류의 동물들이 한곳에, 또는 옆 우리에 갇힌 채 복작거리고 있는 그런 곳에서는 종 사이에 새로운 질병이 옮겨지거나 병원체가 서로 섞이면서 유전자 조합으로 더 강력한 균주가 생길 수 있다.

    지구 온난화도 전염병을 확산시킨다. 기후는 병원체가 특정한 기후대 밖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천연 검역소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온난화로 기후가 변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갇혀 있던 병원체가 바깥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모기가 옮기는 질병들이 한 예다.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일본뇌염은 모기가 옮긴다. 온난화로 모기의 분포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 전염병들도 확산되고 있다. 숲 같은 야생 환경의 파괴도 한몫을 한다. 인류가 야생 지역으로 점점 더 침입할수록 우리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가축, 애완동물이 야생동물과 접할 기회는 점점 늘어난다. 숲을 거닐다가 진드기에게 물릴 수도 있다. 고양이나 개가 야생에 사는 동물들을 사냥하기도 하고, 야생에 사는 동물이 가축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기생충이나 병균이 옮을 수 있다.

    이 요인들은 대부분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새로운 전염병은 세계화, 환경 파괴, 가축 사육 방식 등 인간 활동의 산물이다. 과거에 없던 이 새로운 조합은 병원체들이 번성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 여러 종들을 한데 몰아넣고 계속 부대끼도록 한다. 그러면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일어나기 마련이며 돼지, 사람, 조류를 넘나드는 독감바이러스 같은 것이 출현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전염병을 환경 전염병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니다.

    야생생물 보전 전문가인 윌리엄 카레시는 지난 30년 동안 사람에게 발견된 새로운 전염병 중 4분의 3이 동물과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닌 것이라고 말한다. 에이즈, 광우병, 신종플루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염병들은 동물에게서 유래했다. 반대로 인간의 질병이 동물에게 퍼지기도 한다. 결핵, 홍역 같은 인간의 질병은 아프리카의 고릴라를 비롯한 유인원에게 퍼져서 그들을 죽이고 있다. 인간은 자기 위주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다가, 세계의 모든 전염병까지 한 울타리에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구제역, 조류독감 같은 가축 전염병은 우리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인구가 도시로 몰리면서 인류는 전염병에 취약해졌다. 반면에 농촌은 텅 빈 듯했다. 하지만 이 가축 전염병들은 농촌이 비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가축들이 더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고 말이다. 서식지 파괴로 머물 곳이 점점 줄어드는 철새들도 한 곳에 더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까지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새 전염병이 출현했을 때 비난을 받을 대상은 철새도 돼지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국제수역사무국은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가축을 살처분할 때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권한다. 한 마디로 끔찍한 광경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급박하고 힘겨운 상황에서 그런 원칙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몇몇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은 공황 상태를 일으키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책은 격리시키는 것이다. 즉 전염병에 걸린 쪽을 우리가 아닌 남으로 여기고 멀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지금은 집단 따돌림을 시키거나 가축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하지만 신종플루나 사스, 구제역, 조류독감 사례에서 계속 보듯이, 그런 대책은 이제 효과가 떨어진다. 어제 미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 이미 그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며칠 전부터 우리 곁에 와 있기 마련이다. 남과 우리를 편 가르는 대책이나 태도는 점점 더 효용성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 인간과 가축, 인류와 자연, 숙주와 병원체를 구분하고 격리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환경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해일처럼 연달아 밀려들고 있는 전염병은 우리가 일으킨 환경 파괴에서 비롯된 결과이므로, 원망의 대상도 대책도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겉으로는 남과 우리를 계속 나눠 왔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구의 모든 존재를 우리라는 범주 안에 넣어 왔다. 신종플루 같은 전염병은 우리가 동물들과 전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줬다. 우리는 돼지, 닭, 오리, 철새와 병원체와 유전자를 섞는 존재였다. 그것은 전염병을 박멸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세계를 떠도는 철새에게 철마다 독감 백신을 맞힐 수는 없다. 우리는 전염병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남과 우리가 하나라는 인식은 전염병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자연 환경을 파괴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니파 바이러스는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니파 바이러스는 원래 박쥐에게 감염된다. 인간이 숲을 불태우고 기후 변화를 일으키자 박쥐가 먹을 과일이 없어졌다. 박쥐는 과수원으로 진출했다. 과수원 옆에는 돼지우리도 있기 마련이다. 니파 바이러스는 돼지를 감염시키고 돼지는 인간을 감염시켰다. 그 결과 백여 명이 뇌염으로 사망했다. 자연 생태계와 그곳의 생물들이 우리와 남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우리는 자연 환경과 사람이 병원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병원체가 함께 진화하고 있으며, 인간의 환경 파괴가 병원체의 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새로운 병원체가 언제라도 출현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니 전염병이 발생한 뒤 호들갑을 떨기 전에 우리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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