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 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수석프로그래머


 

영화의 오래된 정의 중 하나는 기술복제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카피의 예술이다. 하지만 영화의 ‘카피’는 그림과 달리 모사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이미지는 사물과 현실의 흔적을 간직한다. 세트 또한 연극과 달리 현실의 일부이며, 인물은 배우의 물리적 현존에 근거한다. 60년대 고다르가 일찍이 보여준 것처럼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 배우와 인물의 분리불가능한 결합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오리지널/카피’의 대립을 넘어선 다성성의 밀도를 지닌다. 최근 개봉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2011)도 이와 같은 역설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이란 감독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처음으로 모국인 이란을 떠나 만든 영화다. 이탈리아 토스카니 지방의 위조 그림을 둘러싼 예술적 논의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지그재그로 흥미롭게 직조된다. 알게 된지 얼마 안된 두 남녀가 부부를 흉내내는데(어쩌
면 이들은 원래부터 부부였을 수도 있다), 수수께끼에 쌓인 남녀는 영국의 오페라 가수 윌리엄 시멜과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다. 한국 제목은 실망스러운데, 원제를 그대로 옮기자면 ‘인증된 카피’에 가깝다. 오리지널과 카피가 착종하는 미로와도 같은 이야기의 세계에서, 영국인 작가 제임스(윌리엄 시멜)는 강연차 들린 토스카니에서 ‘카피는 오리지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으로써 가치를 지닌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의 책에 매료된 프랑스 여인(줄리엣 비노쉬)은 그런데 다른 입장을 내비친다. 카피와 오리지널의 구분은 없으며, 각각의 카피는 고유의 오리지널한 대상을 지닌다는 것이다. 둘의 예술관의 차이는 영화의 테마와 형식에도 영향을 주는데, 눈이 밝은 관객이라면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3)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1996), <비포 선셋>(2004)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적인 세트에 픽션의 이야기를 결합하는 방식이 그렇다. 두 남녀가 극의 인물이지만 배우로서(각각 뮤지컬 배우와 영화배우) 고유의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인물과 배우, 픽션과 현실의 상호교환과 자기반영성을 시도한 60년대 고다르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영화는 심플하지만 오리지널과 카피가 착종된 세계에 너무 많은 거울이 숨겨져 있어(이 영화에서 거울들과 창문, 혹은 그런 기능을 하는 카메라의 역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밀도가 꽤 높은 편이다. 영화에 허위, 속임수, 술책, 다성의 담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지극히 로메르적이기도 하다. 마술적 걸작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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